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나그네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슬픔과 절망을 안고 초인적인 힘을 내 살아간다. 숨 막히는 고독 속에서도 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샤를 보들레르는 떠도는 것이 ‘그들의 기질’이라 했다. 그러나 현실의 속박에서 떠나고 싶은 이방인의 시간도 운명이라는 가혹한 틀이다. 이 구속을 허물고 세상을 떠도는 아티스트가 있다.
보따리 작가 김수자(1957-)는 세계적인 개념미술가다. 대구에서 태어난 김수자는 서울에서 파리, 뉴욕으로, 인도의 야무나강 강가에서.... 그녀는 조용히 서 있다. 천천히 걷다가 시선을 고정한다. 김수자는 회화, 바느질, 설치, 퍼포먼스 등 작품의 경계가 없다. 보따리를 가득 실은 트럭, 자유로움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정적이다. 이동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눈물 나게 슬프다. 보따리가 주는 내러티브다.
작업 초기, 평면 회화와 예술의 구조적 관계성을 고민하던 그녀는 바느질을 시작한다. 여성의 가사 노동을 동시대 미술로 끌어들이며 영상과 설치를 통해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허문다.
1997년 ‘떠도는 도시: 보따리 트럭 2,727km’는 작가 김수자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이불보와 천을 꿰매 보따리를 만들고 파란 1톤짜리 용달차 트럭에 가득 실었다. 3차원의 공간으로 떠나는 다차원적 여정이다. 보따리 트럭에 올라앉아 유년 시절 작가가 살았던 동네를 따라간 11일간의 퍼포먼스다.
짐을 싸서 이동하는 동물은 유일하게 인간이다. 삶의 보따리에는 자신이 깊이 묻은 총체적인 것들이 들어 있다. 찐득한 기억과 흔들리는 질서, 지저분한 정열들을 보따리에 한데 묶였다. 저 유명한 ‘길 떠난 보헤미안들’은 ‘사라진 환영을 쫓는 서글픈 미련으로 무거운 눈을 하늘 쪽으로 보낸다.’ 이중섭의 명작, ‘길 떠나는 가족’의 소달구지에는 새들이 지저귄다. 김수자의 덜컹거리는 트럭에는 고요가 흐른다.
김수자의 작품에 공감하는 것은 관객의 내면 깊이 숨어있는 무의식적 기호들이다. 살기 위해 뭔가 가치 있는 것들이 필요했던 당신에게 보내는 침묵이 그 기호들을 마구 흔들어댄다.
2000년 김수자는 'A Laundry Woman'(빨래하는 여인)을 비디오 작품으로 제작한다. 그녀는 인도 델리의 야무나강 강가에 섰다. 강 건너에는 여인들이 빨래하느라 분주하다. 삶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면 한 소식 한 것이다. 소시민적인 세계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죽을 때나 가능할까? 김수자의 뒷모습은 우리 모두의 뒤꼍이다. 우리는 쉬지 않고 말한다. 씻어서 정화 시키고 소멸하라. 삶을 예술로 이렇게 처연하게 우리 앞에 이끌고 온 김수자의 질문이 가상된 허구를 넘어 처연함으로 우리를 울린다.
김수자의 작품은 시대를 읽는 거울과도 같다. 우리의 일상은 과거를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 미래로 흐른다. 매 순간 찾아오는, 다양한 서사를 품은 존재의 고독은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런 당신을 위로하는 건 저마다 간직한 보따리들이다. 그 보따리마저도 강물로 흘려보내는 용기가 살아생전 필요한 듯하다./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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