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이성부 시인의 <봄>이라는 시의 첫부분이다. 여기서 ‘봄’은 꼭 계절의 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권위적 정권 시절의 ‘봄’은 함의적 의미가 강했다.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봄'도 마찬가지다. 꼭 저항시인이 작품이 아니더라도 많은 시와 노래에서 봄은 자유와 정의, 그리고 희망과 열정의 시대로 그려져 있다.
봄의 어원은 원래 ‘보다’에서 왔다. 봄은 정말 볼 것이 많은 계절이라는 뜻이다. 꽃이 피고, 잎들이 피어나고, 여기저기 움트는 생명의 소생을 보는 계절이 봄이니 그럴 만도 하다. 우리는 봄을 이렇듯 관조하는 자세로 맞이하지만, 영어의 봄은 '솟아난다(Spring)'는 역동성을 지닌다. 단순히 바라보기만 하는 입장이 아닌, 스스로 솟구치는 힘을 서양에서는 표현하고 있다. 자연을 바라보는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단어들이다.
유난히 춥고 힘든 겨울이어서 봄이 올 것 같지 않더니, 벌써 꽃들이 지고 있다고 아쉬워 한다. 흥청망청 시끄럽던 벚꽃잔치도 대부분 끝이 났다. 잔치는 끝났어도 가절은 가절이다. 사실 요즘 같은 날은 연중에 며칠 되지 않는다. 난방이나 냉방을 안 해도 되는 쾌적한 날씨도 그렇고, 피어나는 꽃은 물론 연초록으로 덮여가는 숲을 보는 것도 호사 중에 호사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처럼 봄이라고 모두 좋을 수는 없다. 이 찬란한 계절에도 꽃그늘 아래에서 우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봄이 오는 길목에서 지진과 가공할 쓰나미를 만난 일본의 봄은 그야말로 실종된 계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봄은 희망이나 평화가 아닌 처절할 만큼 끔찍한 시간이다. 화려함 속에 아픔은 더 처량하기 그지없다.
우리 지역에도 봄이 봄 같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자연은 그렇게 꽃이 사태를 이루고 있지만, 전혀 눈길을 줄 수 없는 이들이다. 3개월을 훌쩍 넘긴 파업으로 인해 지칠 대로 지친 전주시내버스 노동자들은 지금 공중 망루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버텨간다. 그들에게 꽃 이야기는 먼 나라의 풍경일 뿐이다.
여기저기 만장처럼 현수막이 내걸렸다. 문구들을 보면 섬뜩하기까지 하다. 모두 LH분산 배치를 주장하는 목소리이다. 김완주 지사와 도의회 유창희 부의장, 그리고 국회 장세환 의원 등이 삭발을 했다. 도의원들이 서울까지 마라톤을 벌이고, 청와대 앞에서 일인 시위까지 벌였다. 서울과 전주에서 대규모 궐기대회도 열었다. 그러고 보면 진정한 봄이 왔던가 싶다. ‘꽃잎 한점에도 봄이 가는데, 바람에 만점 꽃잎이 진다’는 두보의 <곡강>이 생각나는 시간이다.
/김판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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