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창]다시, 황희의 청렴 리더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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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는 계엄 사태를 거치면서 정치권 전반과 고위 관료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부정부패 사건들을 목도하고 있다. 권력을 위임받은 이들이 사적 이익을 앞세우고, 공적 권한을 사유화하는 장면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러한 현실은 시민들에게 깊은 허탈감과 냉소를 안겨주며, 정치와 행정 전반에 대한 신뢰를 잠식하고 있다. 제도는 정교해졌고, 감시 장치는 늘어났지만, 왜 부패는 사라지지 않는가.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청렴’이라는 오래된 덕목을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

청렴은 흔히 개인의 도덕성이나 사적인 결백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청렴을 단순히 “깨끗한 사람”의 문제로 축소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 정치와 행정에서 공허한 이상으로 전락한다. 역사 속에서 청렴이 실제로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이 바로 ‘황희’이다. 그는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재상으로, 오늘날까지도 청백리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황희의 청렴은 미담이나 도덕 교과서 속 일화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 운영의 중심에서 발휘된 실천적 리더십이었다.

황희는 장기간 재상으로 재임하며 외교·국방·제도·민생 전반을 실질적으로 책임진 행정가였다. 그의 청렴은 세속을 떠난 은둔적 금욕이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공적 판단을 가능하게 만든 태도였다. 청렴하다는 이유로 결정을 회피하지 않았고, 갈등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책임을 미루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개인의 욕망을 비워 공적 판단의 자리를 만들었고, 그 위에서 무거운 국정의 결단을 감당했다. 청렴은 그에게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명분’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다.

이 점은 오늘날의 현실과 날카로운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종종 “규정이 허용하지 않는다”,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루는 행정을 본다. 표면적으로는 청렴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책임 회피에 가까운 태도다. 반대로 성과와 유능함을 앞세워 원칙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발, 효율, 실적이라는 이름 아래 특혜와 편법이 정당화되고, 그 끝에서 부패는 반복된다. 이 양극단 사이에서 우리는 청렴과 유능함을 대립적인 가치로 오해해 왔다.

그러나 황희의 삶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청렴과 유능함은 서로를 대체하는 덕목이 아니라, 서로를 완성시키는 조건이다. 사적 이익이 개입되지 않을수록 판단은 명확해지고, 결정은 신속해진다. 공자는 『논어』에서 “이익을 보면 의를 먼저 생각하라(見利思義)”고 했다. 이는 이익 자체를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라, 공적 판단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는 가르침이다. 유능함이 의를 벗어날 때 국정은 위험해지고, 의만을 앞세워 결단을 회피할 때 행정은 정체된다. 황희는 이 두 함정을 모두 경계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청렴이 외부의 감시나 처벌에 의해 유지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맹자가 말한 ‘염치’처럼, 그것은 법과 규정 이전의 내면 질서였다. 오늘날 우리는 감찰, 감사, 처벌을 강화하면 부패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청렴이 내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행정은 규정은 지키되 책임은 회피하는 형식주의로 흐르기 쉽다. 황희의 청렴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는 내적 기준에서 출발했고, 바로 그 점이 그의 결단을 가능하게 했다.

지금의 시대 상황에서 황희의 청렴 리더십이 갖는 의미는 결코 과거 회고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에게 요구되는 청렴은 이미지 관리나 도덕적 포즈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미래를 책임지기 위한 실천적 능력이다. 사적 이해관계를 끊어낼 수 있을 때만이 정책은 특정 집단이 아닌 시민 전체를 향할 수 있고, 행정은 단기적 안전이 아닌 장기적 신뢰를 선택할 수 있다.

부패의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정당의 일탈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청렴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미덕’으로 오해해 온 문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청렴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황희가 보여주었듯, 청렴은 멈춤의 논리가 아니라 책임 있는 결단의 윤리다. 유능하되 위험하지 않고, 청렴하되 무기력하지 않은 리더십. 이것이야말로 오늘의 정치와 행정이 회복해야 할 기준이다.

황희의 이름을 다시 불러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의 청렴은 과거의 미담이 아니라, 현재의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자리에 설수록 더 엄격해져야 할 자기 통제, 그리고 그 통제를 통해 가능해지는 공적 결단. 부패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황희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박용근 전북특별자치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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