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올해 첫 전시로 9일까지 운보 김기창(베드로, 1914~2001) 특별전 ‘한국의 색을 입은 그리스도’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는 과정을 한국적 아름다움으로 재해석한 김 화백의 '예수의 생애' 연작은 한국 성미술 토착화의 대표작품 중 하나로 손꼽힌다.
선녀의 모습으로 표현된 천사를 비롯해 아기 예수가 누운 구유 주변으로 보이는 초가집,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등은 한국의 풍속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6·25 전쟁 당시 군산 피난 시절(1952-1953) 젠센 선교사(Anders Kristian Jensen) 권유로 그린 예수의 일대기 30점 연작을 그렸다.
그는 참상을 겪는 민족적 아픔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떠올렸으며, 시대의 상처를 통해 ‘구원’을 바라보고자 했다.
운보 김기창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아내 우향 박래현(1920-1976)의 처가집이 있는 군산 인근의 구암동에 피난짐을 풀었다. 이 무렵 김기창은 조선시대 풍속에 따라 성경을 테마로 한 역사적인 회화작품 30점을 완성하게 된다.
김기창이 어머니 한윤명 여사를 따라 유년 시절부터 신앙의 가정에서 성장했고 기독교 화가였던 스승 김은호(1892-1979) 화숙(畵宿)에서 지도를 받았으므로, 예수의 생애 연작을 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을 터이다.
자신도 그가 제작한 숱한 작품 가운데 '예수의 생애' 연작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장애인 대부로 우뚝 선 인고 80년”, 동아일보,1992. 4. 26)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술 재료를 구하기 힘든 전쟁 기간 중에도 “나는 다른 모든 일을 전폐하고 이 성화 제작에 내 온 심혈을 다 쏟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기창의 예수 일대기는 30점으로 구성돼 있다. 수태고지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 산상설교, 예루살렘 입성, 그리스도의 수난, 십자가 책형, 부활, 승천 등 예수의 생애를 망라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연작은 우리가 종전에 미술책에서 보던 서구의 그림과 사뭇 다르다. 지필묵으로 단련된 동양화가답게 수묵과 채색의 농담이 풍부하고, 능숙한 선으로 인물들의 동작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다. 김기창은 예수의 생애를 복음서에 대한 고증과 연구에 기초하면서도, 기독교 서사에 풍속화 양식을 접목시켰다.
작품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조선이 배경이고,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병사는 ‘조선의 관군’, 마리아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 막달라 마리아는 ‘양반집 규수’, 형을 집행하는 백부장은 ‘사또’, 예수를 시험하는 마귀는 ‘도깨비’, 천사는 ‘선녀’로 각각 표현했고, 예수의 제자들은 대청마루에 둘러앉아 있으며, 갓 쓴 예수는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운보문화재단은 2003년 '예수의 생애' 대중 보급을 위해 종이에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해 판화를 한정 수량으로 제작했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는 2년에 걸쳐 판화본 30점 중 28점을 매입했다 전시에서는 '이집트로의 피신',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심'을 제외한 '그리스도의 탄생', '그리스도의 세례', '물 위를 걸으신 기적', '그리스도의 부활'등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 관장 원종현(야고보) 신부는 “한국의 색을 입은 성미술은 우리가 가진 것과 새로운 것이 조화롭게 섞이어 익숙하지만 동시에 참신한 조형을 보여 준다”면서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시기, 익숙한 일상에 활기를 부여하고 희망의 길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이종근기자

💬 댓글 (0)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