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휴(지은이 정호훈, 펴낸 곳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는 주자학 비판자로서의 윤휴와 경서를 해석해주는 책이다.
17세기 조선의 학자 백호(白湖) 윤휴(尹鑴, 1617~1680)는 오랫동안 위험한 인물, 배제되어야 할 사상가로 기억되어 왔다. 그는 동시대 서인 계열 학자들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 ‘적휴(賊鑴)’, ‘흑수(黑水)’라는 극단적인 낙인을 받았고, 결국 역모 혐의로 처형되었으며 사후에도 오랜 기간 신원되지 못했다. 이러한 배척의 중심에는 주희의 '중용장구'를 따르지 않고 '중용'·'대학'·'효경'·'서경' 등 경전을 독자적으로 해석했다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비판은 주로 ‘주자학을 벗어났다는 사실’에 집중되었을 뿐, 윤휴가 제시한 해석의 실제 내용과 문제의식은 거의 검토되지 않았다. 윤휴의 경서 해석은 단순한 학문적 이탈이나 불손함의 문제가 아니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직면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기존의 주자학적 질서만으로는 부국강병과 국가 재조라는 과제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사유의 결과였다.
윤휴가 '중용'을 새롭게 읽고, '효경'과 '대학'에 주목하면서 독자적인 해석 체계를 구축한 이유는 경학을 통해 당대의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북벌과 복수설치(復讎雪恥)의 논리는 이러한 사유 위에서 형성되었고, 그의 정치 활동과 정책 구상은 경서 해석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다.
윤휴의 사상과 정치적 실천은 동시대에도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고, 과격하고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며 남인 내부에서도 쉽게 동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생애를 따라가면 17세기 조선이 처한 국제 질서의 급변과 그 속에서 국가와 사상이 감당해야 했던 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윤휴는 사상가이자 정치가로서 그 갈등의 중심을 온몸으로 통과한 인물이었다. 그의 사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용'·'대학'·'효경'·'서경' 등에 대한 경서 해석과, 이를 둘러싼 동시대의 비판과 정치적 대응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주자학 절대주의의 실천성과는 다른 방식의 실천성을 모색했던 윤휴 사상의 성격이 드러난다.
그의 사유는 특정 사상에 종속되지 않고 다양한 요소를 적극 활용, 조선을 변화시키는 힘을 마련하려는 시도였다. 윤휴의 생애와 사상을 재구성하는 작업은 한 인물의 복권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17세기 조선 사상계의 지형, 경학과 정치의 결합 방식, 그리고 국가 위기 속에서 사유가 어떤 선택지를 제시할 수 있었는지를 성찰하는 일이다. 윤휴를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오늘날에도 사상과 정치, 학문과 현실의 관계를 다시 묻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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