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지난 칼럼에서 문화유산은 ‘4년 행정이 아니라 40년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수십 년에 걸쳐 조사하고 연구하며 국가유산 지정과 보존·정비·활용을 준비하는 일은 누가 해야 할까. 최근 충남과 충북의 문화유산 정책을 살펴보면서 그 답은 더욱 분명해졌다. 결국 사람이 하고, 그 사람이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조직이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이 많다고 반드시 문화유산 정책의 경쟁력이 높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문화유산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조사하고 연구하여 가치를 밝혀내고, 국가유산 지정과 보존·정비, 활용사업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지역의 미래자산으로 만들기 어렵다. 문화유산이라는 원천자원도 결국 사람이 연구하고 정책으로 만들어야 그 가치가 살아난다.
충남과 충북은 이미 역사문화 전문 연구기관을 두고 이러한 일을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정책연구부는 국가유산 정책연구와 정비계획, 지정·비지정 유산 조사, 중장기 기본계획, 역사문화권 전략계획, 세계유산 등재와 보존관리 등을 담당한다. 충청북도역사문화연구원 유산정책실 역시 문화유산 기초조사와 정책연구, 기본계획, 역사문화권, 세계유산과 활용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고고학·역사학·인류학·민속학·건축 등 여러 분야의 전문인력이 함께 참여한다.
중요한 것은 기관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연구와 정책이 지속적으로 축적된다는 점이다. 전문인력이 장기간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기본계획을 세우고, 지방정부와 시군의 정책을 지원하며 다음 국가사업을 준비한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고 정책환경이 변해도 전문조직에는 연구자료와 경험, 정책의 맥락이 남는다. 이러한 축적이 지역의 문화유산 정책역량이 된다.
전북에도 역사와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북연구원에 관련 연구자가 있고 한국학미래진흥원도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전북연구원의 관련 연구는 역사·인문과 관광·문화정책 등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한국학미래진흥원 역시 전북학과 고문서 등 자료의 조사·수집, 인문학 연구와 교육이 중심이다. 모두 필요한 기능이지만 국가유산의 조사와 지정, 보존·정비, 활용, 역사문화권과 세계유산, 국가정책 대응까지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문화유산 정책 전담기능과는 차이가 있다.
문제는 개별 연구자의 능력이 아니다. 구조와 시스템의 문제이다. 문화유산 정책은 하나의 사업으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유적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기까지 오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고, 역사문화권 정비나 세계유산 등재는 더 긴 준비가 요구된다. 국가 정책이 바뀌면 이를 분석해 지역에 맞는 사업을 찾아내야 한다. 공모가 발표된 뒤 준비해서는 늦다. 몇 년 앞을 내다보고 자료와 논리를 축적하며 국가를 설득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전북은 마한·백제·가야·후백제를 비롯해 조선과 근현대에 이르는 풍부한 역사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익산의 백제왕도와 세계유산, 전주의 후백제 왕도, 장수의 가야, 고창·군산 등의 마한문화처럼 국가정책과 연결해야 할 자원도 적지 않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그 가치를 누가 찾아내고 어떻게 정책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이다.
따라서 전북도는 문화유산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이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조직체계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 새로운 기관을 만드는 것만이 답이라는 뜻은 아니다. 기존 기관의 기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전문조직을 별도로 구축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고고학·역사학·건축·민속·보존·활용 등 필요한 전문인력을 확보하고, 조사와 연구에서 정책기획과 국가사업까지 이어지는 상시적인 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국가유산 지정과 활용사업은 결국 사람이 한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도 사람이고, 계획을 세우고 국가를 설득하는 것도 사람이다. 원천자원이 아무리 풍부해도 이를 연구하고 정책으로 만들어낼 사람과 조직이 없다면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전북도 더 늦기 전에 이를 뒷받침할 사람과 조직을 갖춰야 한다. 전북 문화유산의 미래를 위한 가장 시급한 투자는 사업 하나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의 사업을 준비할 사람과 조직을 만드는 일이다.
/노기환(온문화유산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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