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 모악산의 푸른 자락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김제 금산사 황금모악길을 걸었다. 나뭇잎 사이로 부는 서늘한 바람 속에서 은은한 먹향이 배어 나온다.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는 우리 글자 한글의 아름다움과 서예술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특별한 예술 전시가 전북에서 막을 올린다.
전북한글서예협회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 세 번째 전북한글서예협회전인 ‘김제 금산에 한글이 날다’를 개최한다. 전시는 3일부터 18일까지 김제시 금산면 금산사 황금모악길 일원에서 펼쳐진다.
기존의 정형화된 실내 전시장을 벗어나 모악산의 자연과 어우러지는 야외 공간에서 진행, 깊어가는 가을날 현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더욱 색다른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하나의 작품당 60cm ×150cm의 크기로, 전체 130m다. 임성곤 회장 등 모두 89명이 참여했다. 협회는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 기존 실내 전시에서 벗어난 야외 깃발전을 갖고 있다. 상징성 있는 공간에 한글서예 작품을 깃발 형태로 설치해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한글서예의 조형미와 다양한 필체를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했다.
이번 정기전엔 도내 각지에서 묵묵히 붓을 잡으며 한글 서예술을 연마해 온 회원들의 삶의 철학과 혼이 담긴 작품들이 출품됐다. 전시작들은 전통 서예 기법을 충실히 따른 고문 작품부터 현대적인 감각과 정취를 살린 현대 서예, 그리고 먹빛과 채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문인화 및 시 서예 작품까지 폭넓게 구성,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감상할 수 있다.
출품작 중에는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명언을 단단하고 정갈한 필체로 녹여낸 작품을 비롯, 자작시 ‘패랭이꽃’, 류시화 시인의 ‘별에 못을 박다’,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 박서진 시인의 ‘희망의 계절’, 윤보영 시인의 ‘꽃’ 등 주옥같은 글귀들을 각 서예가의 독창적인 서체와 수묵화로 표현해 낸 수작들이 대거 포함됐다.
임성곤 회장을 비롯, 저마다의 올곧은 마음을 지닌 89명의 서예가가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이 아름다운 길 위에 자신들만의 우주를 펼쳐놓았다.
강동숙 강선숙 강소라 강정남 고정숙 김 용 김강주 김금래 김나윤 김난희 김대현 김두삼 김명희 김미자 김민순 김복순 김선자 김수연 김수탁 김진희 김창열 김태성 김태순 나정화 문미정 박노성 박대식 박서연 박숙자 박순애 박영숙 박진아 박천월 배열희 백미임 백찬수 소병숙 송경숙 송서호 송수경 송영기 송옥영 심북돌 안정숙 안중식 안진상 양미숙 오성옥 오홍숙 왕기월 유영숙 윤은하 이무림 이병길 이상건 이선화 이수경 이영순 이은영 이은정 이정숙 이현희 이화봉 이화진 임성곤 임원택 장 민 장은애 장현영 전태영 정성려 정옥현 정창화 정해숙 정해자 정화자 정희광 조중선 주기숙 차윤아 최경남 최성룡 최순자 최연희 최용모 하숙희 한명희 한은주 홍승률 서예가가 참여했다.
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한 글씨들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았다. 어떤 글씨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길처럼 따스하게 가슴을 쓸어내렸고, 어떤 글씨는 모악산의 굳건한 바위처럼 묵직한 울림을 주기도 했다.
먹을 갈아 흰 종이 위에 점을 찍고 선을 긋는 행위는 마음을 다스리는 수행과도 같다. 스물네 개의 자음과 모음이 먹의 어둠 속에서 태어나 자연의 빛을 받아 날아오르는 모습은, 마치 가을 하늘을 수놓는 철새들의 군무처럼 자유롭고 찬란했다.
손끝에서 피어난 서체들은 제각기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한글을 사랑하는 그 깊은 마음만큼은 하나의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전시는 황금모악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고요한 위로를 건넨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내던 우리 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초록과 황금이 교차하는 자연의 캔버스 위에서 날개를 편다.
백 년 전 가갸날을 처음 제정하며 눈물로 지켜내고자 했던 그 온기가 오늘날 이토록 찬란한 예술로 피어났으니, 세종대왕이 보셨더라도 필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으리라. 전시를 한 바퀴 돌아 나오며 다시금 하늘을 올려다본다. 가을 바람을 타고 번지는 먹향이 마음의 때를 씻어내 주는 것만 같다. 금산의 맑은 기운 속에 날아오른 한글의 날갯짓이, 이곳을 다녀간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지 않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남기를 소망하는 오늘에서는.
임성곤 회장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라는 역사적이고 뜻깊은 해를 맞아, 자랑스러운 한글문화를 계승하고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모든 회원들이 여름철 무더위 속에서도 한 획 한 획 정성을 다해 전시를 준비했다”면서 “자연 속에서 펼쳐지는 이번 서예전을 통해 많은 도민들이 우리말과 글이 가진 따뜻한 위로와 멋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했다.
전시의 공식 개전식은 한글날인 9일 오후 3시 전시 현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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