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전북신문] 전주 '조경단비각재실도형'과 '적상산성 선원록 봉안형지안'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갖는 2026년 장서각 기획전 ‘선원(璿源), 조선 왕실의 보첩’을 통해서다.
◇ 조경단 비각 재실 도형(肇慶壇 碑閣 齋室 圖形)
'조경단 비각 재실 도형(肇慶壇 碑閣 齋室 圖形)'은 1899년(광무 3)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명으로 전주 건지산에 조선 왕실의 시조인 사공공(司空公) 이한(李翰)의 묘역(조경단)을 정비하고, 비각과 재실을 조성하면서 함께 제작한 일종의 회화식 건축 도면 및 지도이다.
화면 오른쪽에 둥글게 곡장(담장)을 두르고 잔디를 입힌 제단과 문이 묘사되어 있다. 조경단은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의 묘소로 전해지는 자리 인근에 조성됐다.
조경단 바로 근처에 고종 황제의 친필로 '대한조경단(大韓肇慶壇)'이라 새긴 비석을 보관하는 푸른 기와지붕의 비각이 세워져 있다.
화면 왼쪽 상단(건지산 자락)에는 제사를 준비하고 관리들이 머무는 10칸 규모의 재실과 부속 건물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다.
묘역으로 진입하는 입구 길목에는 신성한 구역임을 알리는 붉은색 홍살문이 뚜렷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산수화가 아니라 건축 목적의 도면 역할을 겸했기 때문에, 건물의 위치, 정방향(좌향), 주요 시설 간의 거리와 높이·너비 등이 먹글씨(묵서)로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다.
화면 왼쪽과 주요 건물 주변에 종이를 덧붙인 첨지가 보인다. 여기에는 비석의 크기와 모양, 그리고 도면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비각의 전면 모습 등을 추가로 그려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자료는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 황제가 왕실의 뿌리(시조 묘역)를 공고히 하고 황실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한 국가적 중수 사업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핵심 기록물이다. 현재 이 원본 격인 도형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보존되고 있다.
◇ 적상산성 선원록 봉안형지안(赤裳山城 璿源錄 奉安形止案)
'적상산성 선원록 봉안형지안(赤裳山城 璿源錄 奉安形止案)'은 적상산사고에 보첩을 봉안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646년(인조 24) 2월 9일에 종부시주부 이욱(李旭)은 을유식년(乙酉式年)인 1645년(인조 23)에 수정한 보첩을 적상산사고에 봉안하기 위해 선원록청을 출발했다. 과천, 수원을 거쳐 2월 24일 무주에 도착했다. 적상산에서 하루를 머문 뒤, 26일 선원각에 나아가 보첩이 담긴 궤를 열었다. 궤에 있는 책들은 흙비가 스며들어 변색되거나 습기를 머금은 상태였다. 이 책들을 온돌방에 옮겨 포쇄하면서 기존의 장을 빼내어 고쳐 쓴 부분과 교체하는 등 수정 작업을 진행했다. 선원각의 비가 새고 퇴락한 벽체를 보수한 뒤, 보첩을 원래대로 봉안했다.
형지안의 목록에 따르면, 『열성어첩』은 자물쇠가 있는 작은 궤에 별도로 담아 다시 천자天字의 큰 궤에 봉안했다.
이는 다른 보첩과 구별되는 위상을 보여준다. 『선원선계록』과 태조부터 인조까지 『종친록』·『유부록』 등이 지자(地字)부터 황자(黃字)까지 3개의 궤에 봉안되었다. 병오식년(1606)부터 을유식년(1645)까지 제작된 『가현록』과 『병오식년형지안』 등이 우자宇字 궤에 봉안됐다.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기획전 ‘선원(璿源), 조선 왕실의 보첩’
한국학중앙연구원이 19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연구원 장서각 전시실에서 ‘선원(璿源), 조선 왕실의 보첩’을 갖는다.
‘선원(璿源)’은 ‘아름다운 옥의 근원’이라는 뜻으로, 조선 왕실의 계통을 의미한다. 조선 왕실은 건국 초기부터 왕통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왕실의 근원과 친족 관계를 밝히기 위해 『선원록(璿源錄)』을 비롯한 다양한 보첩(譜牒: 왕실 족보)을 편찬했다. 왕실 보첩은 왕과 왕비, 종친과 인척, 그 후손들의 계보를 기록한 공식 문헌으로, 왕통의 계승을 확인하고 왕실의 권위와 질서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는 장서각 소장 왕실 보첩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부터 대한제국기에 이르기까지 왕실 족보가 만들어지고 변화해 온 과정을 살펴본다. 왕실 보첩은 임진왜란 이후 훼손되거나 없어진 기록을 되살리고 내용을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며 체계화됐다.
또, 왕위 계승 원칙과 왕실 친족에 대한 인식, 시대별 정치적 상황에 따라 기록의 범위와 내용도 달라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왕실 보첩의 편찬과 수정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네 개의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제1장 「선원의 탄생, 계보를 기록하다」에서는 조선 초기 왕실 보첩의 편찬과 숙종 대 『선원록』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과정을 살펴본다. 태종은 왕실의 직계후손과 그 밖의 친족을 구분해 보첩의 체계를 마련했고, 세종은 편찬 범위와 수정 주기를 제도화했다. 임진왜란으로 기존 보첩이 대부분 소실된 뒤에는 이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숙종 대에는 왕실 계보를 재정비하는 국가적 사업을 통해 『선원록』 51책이 완성됐다. 주요 자료인 『선원록』과 함께 선원록 표지 제작에 사용된 능화판을 재현해 보첩을 새롭게 복원한 과정도 소개한다.
제2장 「선원의 계승, 종통을 세우다」에서는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강조한 『선원계보기략』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숙종 대에 편찬이 시작된 『선원계보기략』은 왕위 계승 과정을 도식화한 「열성계서지도」와 왕과 왕후, 직계 자녀를 기록한 「선원세계」 등을 통해 왕위 계승 관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후 왕실의 의례와 제도, 정치적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정·증보됐다. 단종의 복위를 반영한 기록과 영조의 기로소 입사 사실을 담은 자료 등을 통해 왕실 보첩이 당대의 변화와 왕권의 정당성을 어떻게 반영했는지 보여준다.
'기로소(耆老所) '는 조선시대에 연로한 고위 관료의 친목 ·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를 말한다.
제3장 「선원의 확장, 인척을 구성하다」에서는 혼인으로 맺어진 왕실 친족의 계보와 이들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을 조명한다. 조선 왕실은 왕비와 세자빈의 친족, 국왕의 사위와 외손 등을 왕실 인척으로 편입했으며, 돈녕부는 이들의 예우와 관리를 담당했다. 15세기부터 편찬된 『돈녕보첩』과 숙종 대에 새롭게 편찬된 『열성왕비세보』는 왕실과 사대부 가문의 혼인 관계를 기록한 자료다. 특히 『돈녕보첩』은 장서각에만 소장된 자료로, 이번 전시에서는 여기에 담긴 인물과 계보를 비롯해 돈녕부의 운영, 세자빈과 부마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왕실 인척의 구성과 역할을 살펴본다.
제4장 「선원의 재편, 방계를 아우르다」에서는 조선 말기 왕실의 여러 갈래 후손을 폭넓게 수록한 『선원속보』의 편찬과 종친부의 변화를 살펴본다. 19세기 후반 흥선대원군은 왕실 후손의 결속을 다지고 왕실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왕실 전체의 계보를 담은 대동보 편찬을 추진했다. 1860년(철종 11)에 시작된 『선원속보』 편찬은 1867년(고종 4)에 완성됐으며, 1900년(광무 4)에는 증보 간행으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에서는『선원속보』와 『종친부 조례』를 통해 왕실 보첩의 수록 범위가 확대되고 왕실 친족을 아우르는 체계가 재편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왕실 보첩은 왕실 구성원의 이름과 계보를 기록한 문헌을 넘어, 왕위 계승과 왕실 질서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다. 장서각에는 적상산사고 등에 보관됐던 다양한 왕실 보첩이 소장돼 있다. 장서각은 이번 전시를 통해 왕실 보첩에 담긴 계보와 친족 관계를 살펴보고, 그 기록이 가진 조선 왕실의 혈통과 인물사를 새롭게 조명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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