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 ‘현감 최경회의 비석’ 선정비 안내판 수정

장수군, 확인 과정 거쳐 안내판의 명칭 ‘현감 최경회의 비석임’으로 바로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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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전북신문] <속보> 장수군이 본보가 보도한 '장수군에서 최경회 장수현감 선정불망비를 찾다' 기사와 관련, 확인 과정을 거쳐 안내판의 명칭을 ‘현감 최경회의 비석임’으로 바로잡았다.<관련 기사 본지 9월 1일자 10면>

지난 13일, 의암 주논개 의사 탄신 452주년 기념식 참석차 장수군을 방문한 해주최씨 종중 회장단이 군청을 찾아 뜻깊은 확인과 협의를 진행했다.

장수문화원이 1999년 11월 30일 발행한 ‘장수지방 금석문화’에 ‘현감최공경회선정불망비(縣監崔公慶會善政不忘碑)’가 나온다.

‘장수지방 금석문화(長水地方 金石文化)’는 장수 지역에 분포한 비석, 벽화, 바위 글씨 등의 금석문 유산들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정리, 발간한 학술 조사 보고서이다.

이 책을 보면, 조선시대 장수현감을 지낸 '최경회'가 백성을 가엾게 여겨 선정을 베푼 공덕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백성들이 세운 공덕비(선정비)이다. 주소는 장수읍 중동으로 나오며, 크기는 가로 46cm × 세로 96cm × 두께 21cm로 돼 있다.

학술 조사 보고서 ‘장수지방 금석문화’엔 탁본 조사를 통해 이 비석이 "현감 최공경회 선정불망비(縣監崔公慶會 善政不忘碑)"라는 명확한 사실이 이미 밝혀져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동안 이 비석은 ‘현감 아무개의 비석임’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다.

중동에서 현재의 의암공원으로 이동하면서 비석의 글귀를 못 알아본 채 옮겨놓았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 공산이 커보인다.

이 문중은 해당 비석은 역사적·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소중한 유물인 만큼, 비석을 새로 제작하는 문제는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거쳐 향후 조치키로 했다.

이와 함께 선정비석군의 배치와 관련, 최경회 현감 선정불망비를 가장 우측으로 옮겨 달라는 요청도 전달했다.

오랫동안 제 이름을 찾지 못했던 비석이 마침내 충의공 최경회 선생의 역사적 흔적임을 확인하고, 안내판의 표기를 바로잡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작은 비석 하나의 안내판을 바로잡는 일이지만, 그 안에는 선조의 이름과 역사, 그리고 후손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이 담겨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장수에 남아 있는 최경회 선생의 역사적 흔적들이 하나하나 제 이름을 되찾고, 올바르게 보존·정비되어 후대에 길이 전해지기를 기대한다는 시각이 많다.

류정훈 화순향교 청년유도회장은 “무엇보다도 이 소중한 사실을 처음 알려주신 최산두 해설사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면서 "또한 장수군청을 직접 방문, 사실을 확인하고, 최경회 선생의 역사적 흔적을 바로 세우기 위해 애써준 해주최씨 종중 회장단과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어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의 손에서 다시 살아난다"면서 "충의공 최경회 선생의 이름과 역사를 바로 세우는 뜻깊은 발걸음에 함께해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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