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2025년06월24일 13:56 회원가입 Log in 카카오톡 채널 추가 버튼
IMG-LOGO
Trending Now: 유성엽 전 국회의원 소천 김제시장에 도전한 나인권...그 정치적 셈법은 전북 정치 르네상스 활짝… 정동영 안규백 조현 '발탁' 소음순 비대칭 맞춤 수술, 기능 개선 수요 증가 배경은 몸캠피싱 피해 라인 텔레그램 등 메신저 악용 사건 급증 전주시의회, 의료 사각지대 해소...병원 동행 지원 [메아리]익산과 원광대, 기후인문학 수도를 향하여 익산-남원-장수-순창 부단체장 내정

[전주문화읽기] 달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스승의 날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6.05.11 14:55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태평동에 있던 집에서 지금의 한국은행이 들어선 학교(전주서중)에 오가면서 나는 자주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로 돌아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우리학교 바로 옆에는 중앙여중(지금의 중앙중)이 있어서 등하교길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야 힐끔힐끔 예쁜 여학생 훔쳐보는 재미로라도 나란히 걸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만, 내 종아리에 선명하게 회초리 자국이 그어져있는 날에는 일상적인 통학로를 벗어나곤 했다.

내 종아리에 회초리 자국을 남기신 분은 담임이셨던 이경재 선생님이셨다. 수학을 전공하신 분답게 마른체구에 날카로운 면까지 지녔던 선생님은 1년 내내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우리와 함께하셨다. 여름에 들어서면서부터 매주 치러지는 모의고사 시험 성적에 따라 종아리를 때리셨는데, 나는 언제나 가장 많이 맞는 학생 중 하나였다.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였고 절반 이상의 급우들이 함께 종아리를 맞았기에 학교 안에서는 회초리 자국이 그다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반바지 교복 밑으로 회초리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는 종아리를 내놓고 여중학교 앞을 지나는 일은 감수성 예민했던 중학교 3학년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는 우리고장 최고의 명문이었던 전주북중과 전주여중이 없어진 직후였다. 때문에 전주시내의 중학교들은 전고와 전주여고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입학시키느냐 하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우리학교도 전체 8개학급 중 2개 학급을 우수반으로 편성해서 전고 입시에 집중 대비했었다. 3학년에 진급하면서 나에게는 행운과 불행이 함께 찾아왔다. 우수반에 편성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우수반에서 열등생으로 전락한 것은 불행이었던 것이다.

이경재 선생님의 회초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고입시에 낙방하고 후기였던 해성고에 입학하게 되었다. 같은 반의 급우들이 대부분 진학했던 전주고에 함께 진학하지 못한 아픔도 없지 않았지만, 이경재 선생님의 회초리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나는 선생님에 대해 아무런 소식도 모르는 채 보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원까지 20년 넘는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수많은 스승과 만나고 헤어지면서도, 나는 짐짓 스승의 은혜 따위는 염두에 없는 사람으로 지냈다. 그리고 나는 학부모가 되었다.

학부모가 되면서 나의 선생님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내 자신보다 제자들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셨던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부끄러움으로 먼 길로 돌아서 등교하도록 만들었던 선생님의 열정적 회초리가 그리워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졸업한지 25년이 넘었지만 하나하나의 얼굴들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전주서중 3학년2반의 반창회를 연다는 연락이 왔다. 가슴이 설레었다. 더구나 이경재 선생님께서도 나오신다는 이야기에 귀가 번쩍 뜨였다. 첫 번째 모임에서 조금 늦게 도착한 내가 선생님께 인사를 여쭙자 반백이 된 제자의 뒤통수를 한 대 치시면서 반가워하셨다. 지난해 모임에서는 우리반 급우들이 이미 스무 명 가까이 취득한 박사학위를 내가 뒤늦게나마 취득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당신의 일인 것처럼 즐거워 하셨다.

다음 월요일이 스승의 날이다. 선생님을 모시고 식사라도 한번 하자고 몇몇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두었지만 아직 약속장소와 시간을 잡지 못했다. 스승의 날이 가까워지면 촌지 수수 어쩌고 매도하는 사회적 분위기 탓에, 아니 어쩌면 언론의 과잉 부채질 탓에 문을 닫아버리는 학교에 다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과연 먼 훗날 ‘회초리 때리시던 무서운 선생님’에 대한 추억이라도 한 토막 남아줄 것인가 참으로 저어하다. 달력에만 있고, 학교에는 없는 스승의 날이 안타깝기만 하다.

/정상권 경영학박사 ·두인기획 대표

새전북 만평

IMG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