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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칼럼] 작가는 작품의 원천이 될 수 있는가?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6.08.03 18:08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작품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얼핏 말도 안 되는 질문 같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이제 더 이상 작품의 원천이 아니다. 작품의 원천이라는 의미의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는 낭만주의 이후에 형성되었고 모더니스트들은 감정이나 사고를 작품의 원천으로 간주했지만,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원천도 일종의 ‘기호’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품의 원천, 독창성, 원본성 등을 의미하고 있는 오리지널리티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작품이 오로지 1점만 있어야 된다. 다시 말해 유일(唯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원작(原作)만이 독창적이고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 이것을 복제한 속칭 <짝퉁 모나지라>는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술작품에서 오리지널리티는 절대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절대적이고 유일한 오리지널리티를 거부한 작가들이 있다. 바로 마르셀 뒤샹과 앤디 워홀이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기성품)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변용한 <콧수염이 달린 모나리자 그림>, 마를린 먼로 등 유명 연예인들의 초상화 작품을 제작했던 앤디 워홀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한 것은 오리지널리티를 거부했던 이 작품들 역시 소위 말하는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창작’ 대신 ‘선택’행위를 통해 작품의 복수적 존재 가능성과 현대미술에서는 매체(media)로서 기계적 대량생산물의 수용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예술작품의 독창성과 유일성, 원본성과 창작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복제적 세계 속에서 유일성과 단일성이라는 관념이 사라지고 개념적 구상과 맥락에 의해 작품의 의미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혁명적인 전환점이 되었고, 이것은 오로지 작가만이 작품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고정된 시각 역시 해체시켜 버렸다. 이렇게 현대미술에서 작가는 더 이상 작품의 주체도 아니고 원천도 될 수가 없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의 죽음’은 인간 주체의 죽음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주체란 말은 르네상스에 ‘인간은 자유로운 지적 행위자’라는 점과 ‘인간의 사유 과정은 역사적 혹은 문화적 상황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정해서 생겨난 말이다. 하지만 후기 구조주의자인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주체(존재의 중심)를 ‘철학의 사생아’라고 비판하였고 정신분석학자인 쟈끄 라깡 역시 자신의 핵심이론인 ‘거울 단계’ 이론을 통해 주체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환상이며,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왜곡시키면서 형성된 주체의 표피일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한발 더 나아가 쟈끄 데리다와 미셀 푸코는 주체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려고 하지도 않았다.주체의 죽음을 이야기 하는 시대에 원본의 창조자로서의 작가의 개념이 의미를 잃는 것은 당연하다. 작가의 죽음은 <저자의 죽음, 1968>이라는 롤랑 바르트의 글을 통해서 문학에서 먼저 성문화 되었다. 그는 단일하고 절대적인 의미를 발현하는 단어들은 존재하지 않고 그 중 어떤 것도 오리지널하지 않으며 다양하게 섞이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다차원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데, 이 같은 다양한 쓰기들이 지향하는 곳은 그 ‘원천’이 아니라 그것의 ‘목적지’, 즉 ‘독자와의 만남’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 대신 독자가 탄생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이렇게 작가가 사라진 공간에서는 완결된 단일체로서의 ‘작품’은 존재 할 수 없으며, 유동적이고 복수적인 ‘텍스트’로 대치된다. 이제 작가는 예술 작품의 창조자가 아니라 기호들의 조작자가 되며, 관람자는 메시지의 능동적인 독자가 되는 것이다. /전주문화재단 정책연구실장,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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