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다 싶으면 잡는기야. 놓치고 나서 후회하지 마라. 있을땐 절대 모른다. 헤어지봐야 아는 기라. 사랑이라 카는게.”

지난해 1월말 개봉한 영화 ‘사랑을 놓치다(감독 추창민·118분)’에서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인 선배가 후배 우재(설경구 분)에게 한 말이다. 오랜 친구지만 서른을 훌쩍 넘겨서야 뒤늦게 이성으로 느끼게 된 연수(송윤아 분)를 ‘잡을까 말까’망설이는 우재에게 건넨 이 짧은 말 속에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잘 담겨 있다. ‘이 사람이다 싶을 때 잡지 않으면 사랑을 놓친다’는 것.

이런 주제에 맞게 영화 ‘사랑을 놓치다’에는 세가지 색깔의 사랑이 등장한다. 대학 시절부터 10년간 만남과 헤어짐 만을 반복하는 젊은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에서부터 비록 풋풋하지는 않지만 잔잔한 설레임이 있는 중년의 사랑까지. 여기에 좋아하는 사람을 가슴 속에만 담아둔 채 홀로 가슴앓이하는 짝사랑도 있다.

이처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사랑 이야기를 섬세하고 감성적인 터치로 그린 이 영화에는 중요한 공간, 두 곳이 등장한다. 바로 연수의 고향이자 어머니(이휘향 분)가 사는 시골집과 양식장. 극중에서 강원도 홍천의 시골 마을로 그려진 이 곳은 완주군 동상면 원신마을(동상초등학교 앞)에 위치한 동상저수지와 고산면 소양리 신상마을에 있는 한 집에서 촬영됐다. 두 장소는 영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의 사랑이 등장하는 곳이다.

우선 대학 시절 다른 여자 때문에 힘들어하는 조정선수 우재를 짝사랑하던 연수가 졸업 후 7년 만에 우연하게 우재와 다시 만나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처음 확인하는 공간이다.

“귀엽지 않니? 생긴거 그거 아무 짝에 쓸모없다. 하는 짓은 얼마나 귀엽다고, 능청맞은 것도 밉지 않고. 우직한 것도 그런 대로 봐줄만 하고”라며 딸에게 사랑의 설레임을 수줍게 전하는 연수 엄마와 아저씨(장항선 분)가 로맨스를 키워 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픈 사랑도 나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붓던 어느날 밤, 불의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집에 홀로 남은 연수에게 “잘해 주는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 속으로만 좋아하고 계산하는거 그거 힘들더라구요”라며 어렵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상식(이기우 분)의 가슴앓이가 등장하는 곳이다.

이처럼 두 곳은 사랑의 벅찬 설레임과 아픔, 그리움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 극 전개상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유월의 햇살이 유난히 따갑게 내리쬐던 지난 10일, 이 곳을 직접 찾았다.

전주에서 출발해 소양을 거쳐 송광사와 위봉사, 수만교를 지나 음수교에 다다르니 마치 군대간 우재를 면회간 연수가 터미널 화장실에서 ‘남을 것인가, 막차를 탈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던 것처럼 어느 길로 먼저 갈 것인지 망설여졌다. 오른 쪽으로 가면 양식장 씬이 촬영된 동상저수지이고, 왼쪽은 연수의 고향집으로 등장하는 한 시골마을로 가는 길이다. 일단 늘 허물없는 친구로만 여기다가 오랫만에 만난 연수에게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서울에서 한걸음에 내려온 우재가 연수와 만나는 중요한 장면이 촬영된 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임시로 설치됐던 가교와 어장,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후 홀로 떠나며 차마 발을 떼지 못하던 아저씨의 슬픈 뒷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원두막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극중에서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하게 그려졌던 저수지도 초여름 가뭄 탓인지 바닥을 드러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다만 간간히 흩날리는 모래바람 만이 우재와 연수의 설레이는 재회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상식의 슬픔을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았다.

한참을 둘러본 후 발길을 고산 쪽으로 돌렸다. 극중에서 연수의 눈을 피해 방에서 몰래 데이트를 즐기던 아저씨가 한밤중에 쫓겨나는 장면 등이 촬영된 고산집으로 가는 길은 대야저수지를 끼고 있어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색이 없었다. 집은 동상저수지에서 10여분을 달리다 신상마을에 이르러 고산동초등학교 방향으로 우회전 하면 됐다. 조용한 시골마을 분위기와 너무 닮은 아담한 초등학교 바로 앞 집이었다. 40여년된 제법 큼지막한 감나무를 바라보며 5m 가량 펼쳐진 소박한 돌담길을 따라가자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현재 노부부가 단촐히 살고 있는 이 집은 극중에서 나온 것처럼 녹색대문 그대로였다. 30년 정도된 대문 옆 낯익은 감나무도 여전했다. 연수가 생일날 ‘물새우는 강언덕’을 구성지게 부르던 엄마의 노래 소리를 들으며 편안하게 누워 상념에 젖던 평상, 연수를 만나러 온 우재가 사윗감인줄 알고 보신탕을 대접하던 장면속 마루도 그대로였다.

이처럼 집은 영화 속에서 등장했던 것처럼 아직까지 그 모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장면 장면을 쉽게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우재가 선배의 조언을 듣고 사랑을 놓치기 않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온 후 대문을 열고 들어서던 장면, 엄마의 장례를 치르던 연수에게 상식이 손수 준비한 음식을 수줍게 건네던 장면 등.

이날 반나절 가깝게 둘러본 두 곳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영화는 끝나더라도 촬영지는 오랫동안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감동과 여운을 전해 주면서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도내 촬영지>

<촬영 뒷이야기>

 영화 ‘사랑을 놓치다’도내 촬영지 가운데 가장 많은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곳은 단연 동상저수지였다.

우선 저수지는 2005년 2월부터 9월까지 무려 7개월간의 헌팅을 거쳐 촬영지로 결정됐다. 이세리 전주영상위원회 로케이션 지원팀장 등이 부안 곰소, 만경강 일대 양어장을 비롯해 전북의 모든 저수지를 샅샅이 뒤진 끝에 어렵게 경천저수지와 동상저수지가 촬영 후보지로 압축됐고, 고심 끝에 동상저수지가 최종 확정된 것. 이후 농업기반공사 전주·완주지사로부터 임시 가설물 설치허가를 받아 양어장 세트, 원두막, 나무, 바위 등을 설치해 어렵게 촬영이 시작될 수 있었다. 극중 양식장 장면에서 등장하는 인공 나무가교는 바로 화심의 한 붕어찜 전문 음식점에 설치돼 있던 것을 잠시 떼어다가 촬영한 것이었다.

/한재일기자 hji75@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