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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사람]전통주 '이강주' 명인 조정형씨
2007년 09월 06일 (목) 이기재 기자 haidi95@sjbnews.com
   
  ▲ 이강주 제조명인인 조정형씨가 소줏고리 앞에서 술 내리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내 집에 꽃 피거든 자네 청하옴세//백년 덧시름 잊을 일 의논코자 하노라 ’

꽃이 피면 꽃 옆에 두고 달이 밝거든 밝은 대로 자연을 벗 삼아 풍류와 멋을 즐기던 우리 조상들은 사철 계절에 맞는 술을 손수 걸러 마셨다. 명절을 앞 둔 이맘 때 쯤이면 여염집에서도 어김없이 술을 빚었다.

집집마다 전해 내려 오던 전통 민속주들. 그 중에서도 조선조 중엽부터 우리나라 ‘3대 명주’의 하나로 꼽히는 이강주를 상품화해 낸 조정형(무형문화재 제6호, 전통식품 제조 명인 9호)씨는 추석을 앞두고 더 없는 정성으로 술을 빚는다.

   
  ▲ 술을 빚은 후 받아놓는 술통개.  
 
소양에 위치한 고천 양조장 (제2공장)에서 만난 조씨는 “두 번이나 선정된 건 내가 첨 일이지”한다. 이강주가 2005년 대통령 설 선물로 선정된데 이어 올 추석 선물로 또 다시 선정돼 민속주의 선두주자로 자존심을 인정받은 만큼 조씨의 기쁨은 크다.

소주와 탁주가 고작이던 국내 술 시장에 6대 선친부터 대대로 빚어오던 가양주를 체계화해 상품화해 내 놓은 조씨는 “한 때 명절 선물로 오가던 값 비싼 양주를 밀어내고 우리 술을 들여놓은 것이 참 뜻 깊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전북의 풍류가 배어있는 이강주를 미국과 일본, 호주, 태국 등에 수출해 세계적인 명주로 만들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대학에서 농화학을 전공한 그는 국내 유명 주류회사에서 25년간 근무하다가 80년 대 후반부터 우리 나라 방방곡곡을 누비며 전통주를 연구하고 개발하는데 평생을 다해 왔다. 일제 시대 주세법으로 집에서 빚던 술이 밀주로 규정되면서 사라져 가던 술을 찾아 나선 것. 전국 200여 향토주를 연구한 끝에 91년부터 이강주를 대중에게 선보였다.

   
  ▲ 막주 등 누룩으로 빚은 양조주를 맑은 소주로 증류하는 기구다.  
 
도내 최초 어르신 상을 수상한 선친이 있고 진외가 할아버지 가람 이병기 선생 등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그의 집안에 가양주가 끊일 일이 없었다.당시 모친이 고두밥을 지어 빚던 많은 술 중 하나도 바로 이강주다.

이강주는 황해도 해주와 전주에서만 만들수 있는 민속주. 우리 고장 특산품인 이서 배와 봉동의 생강, 전주의 울금이 어우러져 배의 시원함과 생강의 매콤함이 담긴다. 입안을 감도는 계피향과 꿀로 연노랑 술빛이 신비로운데다 청량한 맛 또한 독특하다.

1년 여간의 세월동안 그 지역의 신선한 재료와 바람과 물과 햇살과 정성으로 술이 익어간다. 백미로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완전히 식혀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술을 담근뒤 1주일 후 술을 소주고리에 넣고 전통방식으로 소주를 내린다. 약 35도로 내린 전통소주에 이강주의 주원료인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넣고 3개월 이상 침출시킨 뒤 마지막으로 꿀을 가미하면 비로소 이강주가 된다.

   
  ▲ 누룩틀은 누룩을 일정한 크기로 모양을 내기 위한 기구이다.   
 
조씨는 “항아리에 누룩을 넣고 아랫목에서 발효를 시키면 ‘자글 자글’소리가 커 가는 아이 보는 듯 좋다”며 “잘못된 것은 ‘푹푹’소리가 나고 조금만 이상해도 지나가다가도 발이 단번에 저절로 멈춰진다”고 한다. 그 간의 술에 대한 열정과 노력과 집념이 체화된 까닭이다.

“술은 나에게 신앙이고 심연의 바다 ”라고 정의하는 그는 누룩을 만들고 약주에서 소주를 내리고 다시 과일을 넣고 발효시키는 공정 내내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는 88년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96년에는 명인 칭호를 받게 됐고 이후 대통령 표창과 신지식 농업인 선정, 석탑산업 훈장 등 상을 수도 없이 받았다.

   
  ▲ 술을 거르는데 쓰는 기구로 싸리나 대오리 따위로 둥글고 깊게 통처럼 만든다.  
 
연간 매출액 50억 원을 달성하며 민속주의 선도를 달렸고 2년 전부터 미국과 일본 등지에 수출해 5억 여원을 벌어들였다.이에 힘입어 지난달에는 태국에 나갔고 이달에는 러시아에도 곧 진출한다. 그 나라 입맛에 맞게 도수를 17도로 줄이기도 하고 투명 유리병과 그 나라 정서에 맞는 디자인도 따로 강구하는 등 세계인의 명주로 우뚝 서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술을 잘 만드시기만 하는지 잘 드시기도 하는지 ? 물음에 “내 위는 소주의 25도에 맞춰져 있어 맥주는 잘 못 마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조씨는 앞으로 그간 전국을 돌며 모은 술과 떡 빚는 기구 1,300여 점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이미 93년에 고천 박물관을 열었지만 협소하기 때문이다. 제 2공장 전시실에만도 술을 거르는 용수와 전국 각지의 다양한 소줏고리, 함지박, 술병, 술잔에 술을 많이 따르면 술이 오히려 줄어드는 계영배 등 신비한 물건들이 즐비하다.

그는 “1974년부터 30 여년간 모은 물품들을 박물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고픈 꿈이 있다”며 “우리 술을 알아갈 수록 조상의 멋을 알게 된다”고 덧붙였다.

/ 이기재기자 haidi95@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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