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전라도 사투리 이야기]‘쇳대도 긴디!’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07.09.20 13:14

암구호는 ‘열쇠’건만 전라도 출신 병사, 다급한 나머지 ‘쇳대’를 외치다가 결국 총에 맞아 죽어가며 ‘쇳대도 긴디!’했다는 한물 간 우스갯소리 속의 ‘쇳대’는 ‘열쇠’와 ‘자물쇠’에 대응하는 ‘자물통’의 ‘쇳대’다. 자물쇠의 모습은 ‘퉁거운’ 뭉치 쇠이고 열쇠의 모습은 가느다랗고 긴 쇠의 모습이어서 ‘통’과 ‘대’로 표현된 것이다.

옛날 곳간 문에서나 볼 수 있는 ‘자물통’과 ‘쇳대’ 역시 온갖 종류의 ‘키’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고 요즘은 번호만 누르면 문이 열리는 시대에 도래해 있다. 하지만 ‘쇳대’는 그 상징적 의미가 대단한 물건임에 틀림없다.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온갖 시집살이로 한 세월을 다 바친 중년의 며느리가 시어머니로부터 ‘쇳대’를 이어받는 장면은 가히 엄숙하기까지 하고, 과학적 진실을 탐구하는 학자들이 현상의 본질을 설명할 중요한 이론으로서의 ‘쇳대’를 발견한 그 상황 역시 장쾌한 순간이기마저 하다. 들어가고 나올 방법이 도저히 없는 철옹성일망정 자그마한 ‘쇳대’ 하나만 있으면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닫히는 그 중요한 ‘쇳대’ 그러니까 ‘쇳대’야말로 모든 문제를 푸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 장치, 촌철살인 즉 비장의 무기다.

조선 예학의 대두 우복(愚伏) 정경세가 사계(沙溪) 김장생의 집을 방문하여 그의 제자 이유태, 송준길, 송시열 가운데 자신의 사윗감으로 송준길을 골랐다는 일화가 있다. 송준길은 후대 대사헌을 지낸 학자로서 꽃다운 미남이었으나 그에 비해 신부는 용모가 그다지 곱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 첫 대면이 송준길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으며 그래서 송준길의 첫마디는 ‘삼종지도(三從之道)라도 아시오?’였다. 그 말에 정경세의 딸은 어려서는 아버지의, 시집을 간 후엔 지아비의, 그리고 지아비가 늙은 후엔 장자의 말을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송준길이 남편이 늙은 후가 아니라 죽은 후라고 부인의 말을 지적하자 부인이 말하기를 인륜지대사를 치른 첫날부터 어찌 지아비의 죽음을 입에 담겠느냐고 작지만 단호한 소리로 말하였다.

송준길의 마음을 열었던 ‘쇳대’는 바로 그 한마디의 말이었다. 정인을 대하는 한 여인의 마음 씀씀이가 그 한마디에 응축되어 나타났으며 송준길 역시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인의 정성스러운 마음가짐과 태도를 진실하게 읽어낸 결과다. 그리하여 두 사람이 일생을 아름다운 부부로 살았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그 정성스러운 마음, 마음 속 깊은 데서부터 오롯하게, 한 마음으로 간절하고 소중하게 채워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마음의 태도가 표정과 눈빛과 말이 되는 그 순간, 바로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여는 ‘쇳대’가 되는 찬연한 순간이다.

말을 탐구의 대상으로 삶을 살아오면서 나는 줄곧 말 속에 담긴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해독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살아 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겉으로 표현된 말이 아니라 그 말 속에 숨은 말이다. 하지 않았으나 한 것보다 더 강렬한 그 말 속의 말 ‘쇳대도 긴디!’.

김규남

사회박언학자이며 전주대한국어문화교육센터 책임객원교수.

남성고와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사회방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산문집 ‘눈 오는 날 싸박싸박 비오는 날 장감장감’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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