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가 ‘선미촌’ 실제 촬영

2002년 3월 개봉한 영화 ‘대한민국헌법제1조’(감독 송경식·판 영화사)는 주인공인 윤락녀 은비(예지원)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정치풍자극 이다.

2002년 16대 대선정국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전주 영상위원회 위원장인 이장호 감독이 이끌고 있는 판 영화사와 한맥 영화사가 공동 제작했으며, 전주시 노송동 홍등가인 선미촌을 비롯해 전북대학교, 덕진공원, 천주교 전동성당 등 대부분을 전주일원에서 촬영됐다.

영화의 주 무대인 선미촌은 당시 만해도 성매매특별법(2004년 9월)이 발효되지 않아 성황(?)을 이루고 있었던 곳.

당시 제작진은 3개월 간의 끈질긴 요구 끝에 상가번영회의 협조를 받아 한 블록에 해당하는 일곱 곳의 업소를 무료로 대여받았다. 제작진에 따르면 실제 창녀촌을 오픈세트로 사용하는 경우는 한국 영화사상 처음이다.

때문에 영화촬영 도중 재미있는 해프닝도 끊이질 않았다.

술에 취한 남자들이 여 배우들을 윤락녀로 오인해 업소 진입을 시도한 일이 다반사였고, 불법 성매매 현장이 영화촬영 장소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시와 경찰의 불만도 높았다.

영화 관계에 따르면 당시 업소를 진입하려 했던 취객은 홍등가에 윤락녀 옷을 입고 있는데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냐며 머쩍어 했다고 한다.

이 밖에 실제 윤락녀들은 주인공 예지원에게 자신들의 옷을 빌려주겠다고 나서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배우 예지원, 스커트입고 국회 철문 넘다

영화 촬영이 막바지에 이른 2003년 2월에는 국회의원에 당선된 은비가 국회에 첫 등원하는 신 등 국회내 촬영을 두고 제작사와 국회가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3차례에 걸쳐 국회 내부 촬영 허가를 신청했으나 비공식적으로 불허를 통보받은 제작사는 결국 국회의사당 주변과 입구에서 변칙 촬영을 강행했다.

영화의 엔딩신이 될 장면은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락녀 고은비(예지원)가 보무도 당당하게 국회로 입성하는 장면.

법전을 들고 옷깃에 국회의원 배지를 단 예지원이 국회 정문 앞 인도를 걷는 장면부터 촬영을 시작한 제작진은 이어 국회 정문 진입을 시도했다. 예지원이 닫힌 철문을 두드리며 "문 좀 열어 달라"고 애원했지만 국회측 경비 담당자들은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이에 송경식 감독은 예지원에게 즉석에서 새로운 연기를 지시했다. 촬영 카메라가 돌아가는 가운데 국회 정문으로 뚜벅뚜벅 걸어간 예지원은 약 2m 높이의 철문을 넘어 국회 안으로 들어갔다.

국회 직원들은 더 이상의 촬영을 막기 위해 육탄 저지를 시작했고, “국회 문을 넘은 행위가 불법이니 연행하겠다”며 예지원의 손을 잡고 몇 미터 끌고 가기도 했다.

한맥의 홍보담당자는 “이 장면의 촬영을 위해 4개월에 걸쳐 협조문과 탄원서, 면담 신청서를 냈지만 공식적인 답변이 오지 않았다”며 “막상 촬영을 하려하자 구태한 이유를 들어 막았다며 이는 국회의 권위주의적인 발상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범수기자 skipio21@sjbnews.com



<이 영화는...>

△윤락녀에게도 피선거권은 있다

136대 137,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의 한 국회의원(양택조)이 여당 총재의 음모에 휩싸이며 살해된다.

이 국회의원의 사인은 복상사. 물론 대외적으로는 과로사다.

136석으로 동수가 된 여야는 죽은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수락시 보궐선거를 통해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필승의 카드를 내보이며 치열한 선거전을 준비한다.

그러나 윤락녀 고은비(예지원)가 기호 4번으로 무소속 출마하면서 선거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동료가 끔찍한 성폭행을 당했지만 윤락녀라는 이유로 경찰 수사조차 못받자 분개한 은비는 욕쟁이 신부 베드로(남진)와 아나운서를 굼꾸는 동료 세영(임성민)의 도움을 받아 국회의원 선거에 나선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윤락녀 후보’의 지지율이 우여곡절 속에 급상승하자 여야는 위기감을 느끼고, 각각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를 꾸민다.

△소재 ‘신선’ 지나친 섹스코드 ‘불쾌’

‘대한민국 헌법제1조’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시원하리 만큼 명확하다.

여기서 악은 국민들의 속내엔 관심없는 정치인들의 우스꽝스런 모습 그 자체다. 반대편엔 윤락녀를 비롯해 장애인, 노숙자 등이 있다.

정치적으론 너무나 올바른 의식이 장점이라면, 풍자라 하기엔 너무 직설적이고 단면적인 묘사방식은 단점이다. ‘사실적’이라고 넘어가기엔 전반부의 과도한 섹스코드는 불쾌감을 줄 정도.

그럼에도 이 거친 대중영화는 ‘내질러 보는’ 에너지를 품고 있다.

감정과 의식과잉 속에서도, 정많고 서로를 보다듬는 소수자들의 따뜻한 마음만은 진정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사가 있는 출연자만 75명인 영화 속에서 임성민, 최은주 등이 연기한 윤락녀 동료, 기호 3번 후보역의 장대성, 386 세대를 풍자한 듯한 캐릭터 방송기자역의 이문식까지 많은 배역에 골고루 눈길이 가는 것도 미덕.

특히 베드로역의 남진은 안정감있게 영화를 뒷받침해준다.

/이범수기자 skipio21@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