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산책]<15>하나 그리고 둘
[시네마산책]<15>하나 그리고 둘
  • 새전북신문
  • 승인 2008.01.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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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에드워드 양(楊德昌)(1947~2007), 대만


<하나 그리고 둘>은 대만에 살고 있는 평범한 가족이 여름 한 계절 동안 겪는 일상을 담백하게 담고 있다. 막내아들의 결혼식 직후 의식을 잃고 쓰러진 할머니에게 필요한 유일한 처방은 매일 매일 대화를 시도해서 의식을 자극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대화는 고백 성사와 같아서 ‘말하는 자’는 삶에 대한 지독한 회의를 경험한다. 영화는 확신할 수 없는 삶에서 실존을 찾는 가족 구성원의 소소한 여정을 보여준다. 특히 감독 에드워드 양(楊德昌)은 가족 중 가장 어린 양양을 통하여 선문답과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눈빛과 순수한 목소리로 삶과 존재의 진실에 대하여 묻는다.



* 고백성사 - 말하는 자(者)는 곧 듣는 자(者)

사위 NJ를 비롯하여 자녀들은 며칠에 한번 꼴로 의식 없는 어머니 옆에서 ‘독백’같은 대화를 나눈다. 이때 ‘말하는 자’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자’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일상은 언어를 획득함으로써 하나의 사건, 화두가 된다. 어머니 앞에서 각자의 일상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분이면 족하다. 물상화(物象化)된 무미건조한 삶이 드디어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는 불확실성 속에서 “아침에 눈을 떠야 하는 이유도 모르는 체” 하루를 산다. 지극히 하찮은 삶일 수 있다. 이러한 삶이 해체되기 위해서는 - 현상을 바꾸는 것이 아닐지라도 -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못하고 사는 걸까?”라는 질문과 치열하게 직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NJ와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일본인 토니는 다른 관점으로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왜 우리는 처음이라는 걸 두려워할까? 인생에 있어서 하루하루가 모두 처음인데 …. 매일 아침이 새롭다. 우리는 결코 같은 하루를 두 번 살 수 없다.”



* 정직한 뒷모습과 카메라

어린 양양은 카메라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다. 자유롭게 프레임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양양의 사진 속에서 우리는 무심코 흘려보낸 삶의 많은 의미를 다시 떠올린다.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뒷모습을 찍음으로써, 우리가 살고 보는 세계 뒷면에 또 다른 진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의 뒷모습엔 표정이 없고, 볼 수조차 없다. 나의 일부이면서 소외된 그곳에 포커스를 맞추었을 때, 삶은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상대가 무장해제한 상태인 뒷모습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더 정직한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

보는 세계가 다를 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려면 서로가 바라본 대상을 공유해야 한다. 카메라는 영화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영화가 발명된 이후 우리는 인생을 세 번 산다. 일상의 삶과 영화가 주는 두개의 삶.” 영화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 타나토스의 욕망과 충동을 해결하도록 돕는다. 감독은 교묘하게 이 두 세계를 뒤섞는다. 패티는 여자친구 릴리의 영어선생을 살해하지만, 영화 속에 갇힌 인물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서 에드워드 양은 영화가 우리의 원망(願望)을 해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두 세계는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영화는 때로 카드 게임과 같이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며 지루한 시간을 견디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 그리고 둘>은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지 않고, 개연성 없는 사건이 돌출하기도 한다.



* 세대와 시대를 순환하는 가족 구조

<하나 그리고 둘>은 각각의 세대와 시대 경험을 동시대의 동일한 공간에 담고 있다. 우리는 영화 안에서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세대와 경험이 같기 때문일 뿐 아니라, 할머니부터 꼬마 양양까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가는 보편적인 과정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삶을 살기도 하고, 살아내기도 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에 직면하여 부딪히고 다치면서 순환적인 삶을 살아간다. 가족은 결혼식과 장례식, 탄생과 죽음을 통하여 소통하고 화해하며 성장한다. 우리에게 가족만큼 익숙하고 낯익은 대상이 드물다. 그런 면에서 가족 구조는 바로 현실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영화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에드워드 양의 말처럼, <하나 그리고 둘>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잔잔한 현실로 보여준다. 에드워드 양은 현실을 그대로 담아내기 위하여 - 표정을 깊게 파고드는 클로즈업을 절약하고 - 주로 배우들이 몸 전체로 감정을 보여주는 롱숏을 사용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NJ 역을 맡은 오념진은 배우 뿐 아니라 작가와 감독이기도 하다. 데뷔작인 <아버지>(94년)는 토리노영화제 그랑프리와 테살로니키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하였고, <로빙화>와 <비정성시>의 각본을 직접 썼다. 대만 뉴웨이브와 함께 영화를 시작한 에드워드양은 자신이 감독으로서 하고자 하는 바를 슬쩍 내비친다. “사람들이 모르는 일을 말해주고,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의 영화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외면하거나 보지 못했던 진실에 눈뜨기 위해서 자신 안의 벽을 허물도록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 준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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