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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33>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
2008년 06월 12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A Time For Drunken Horses, 2000)

감독 : 바흐만 고바디,

출연 :아윱 아마디(아윱), 로진 요우네시(로진), 아마네 에크티아르-디니(아마네), 마디 에크티아르-디니(마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따뜻한 가족애로 차가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쿠르드족 다섯 남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제53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과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을 받음으로서, 바흐만 고바디의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바흐만 고바디는 대부분의 이란 영화가 그렇듯이 비전문배우들을 고용하여 이란과 이라크, 터키의 접경지대에서 탄압받는 쿠르드족의 비극적 현실을 재현함으로써, 이 아이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구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화약을 떠안은 아랍 국경인, 쿠르드족

12세 쿠르드족 소년 아윱의 가족에게 불행은 도미노게임과 같다. 어머니는 막내 마디를 낳다가 사망하고, 아버지마저 지뢰를 밟고 목숨을 잃는다. 거기에 마디는 불치병으로, 세 살 이후부터 더 이상 자라지 않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 아윱은 학교를 그만두고 마디의 약 값을 위해 돈벌이에 나서지만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은 여동생 아마네의 공책을 사주기도 부족하다. 곧 수술 받지 않으면 마디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윱은 이란과 이라크 국경을 오가는 밀수업자들의 심부름꾼으로 나선다. 동생들을 보다 못한 큰누이 로진은 마디의 수술비를 받는 조건으로 원치 않는 시집을 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노새 한 마리뿐, 마디는 곧 쫓겨난다. 아윱은 노새를 끌고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밀수 행렬에 합류한다. 이라크 국경 근처에 사는 이란인은 노새의 등에 짐을 싣고 국경을 넘는다. 이라크로 가는 길,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투성이의 대지와 험난한 산을 건너기 위해서 사람들은 노새에게 술을 먹인다. 술을 마신 노새는 혼미한 정신으로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는 채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매일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든다.



다큐멘타리와 극영화의 경계 지우기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의 외현은 이란 영화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 같지만, 내포된 함의는 다른 수위에 있다. 한국에 소개된 <천국의 아이들>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같은 이란 영화가 맑고 순진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의 빛을 찾고자 했다면, 고바디의 대표작인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과 <거북이도 난다>에서는 아이들의 동심이 희망이거나 구원이 되지 않는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은 이란 영화를 대표하는 두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모흐센 마흐말바프 밑에서 조감독 생활을 했지만, 그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는 키아로스타미가 여유롭고 따스한 시선으로만 바라봤던 아랍인의 삶의 터전을 가혹함과 부조리로 가득 찬, 기적이 없으면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없을 만한 공간으로 묘사해낸다. 그것은 실제 감독 자신이 쿠르드족 출신으로, 자신의 민족이 겪고 있는 수난과 억압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찍기 때문이다. 눈 속에 빠지는 등장인물들의 비틀거리는 걸음과 함께 흔들리는 카메라는 감독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그 불안한 화면을 응시하다보면 관객은 영화가 극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실제 등장인물과 함께 호흡한다.

아윱과 아마네가 추위에 언 마디의 손을 자신들의 입김으로 녹이며 끊임없이 볼에다 입맞춤을 하는 것처럼 이들의 고통은 연출되거나 연기된 결과가 아니다. 카메라의 시선은 거의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물들만이 화면 속에서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고 다시 비극적인 쿠르드인의 삶 안으로 밀착한다. 다큐 보다 더 사실적인 삶의 모습을 연출해 내고 있으며 인물의 감정에 대하여 관여하거나 강요하지 않고, 장황한 대사로 설명하지도 않는다.

바흐만 고바디는 “예술과 리얼리티는 서로 보완한다. 리얼리티가 없다면 예술은 헛되고, 예술이 없다면 리얼리티는 무의미하다”고 말하면서 픽션의 구조 아래에서 현실을 찍는다. 그는 언제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을 재현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엔딩에서 아윱이 마디를 태운 취한 말과 함께 국경을 넘는 장면에서도 확실한 결말을 짓지 않음으로써 극적인 감동을 배제해 버린다. 그것은 쿠르드 민족 문제가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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