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식 길을 걷다]전주에서 서울까지 걷다<4>
[김천식 길을 걷다]전주에서 서울까지 걷다<4>
  • 김승희 기자
  • 승인 2009.03.12 20:19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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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화성

7일째 날 - 어제 오산에 진입하면서 아내의 극심했던 다리 통증은 덕빈 처남 집에서 잘 먹고 하루 밤 편히 쉬고 나니 깨끗이 가셨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집을 나섰다. 처남댁이 아내에게 다가서더니 ‘가시는데 뭐라도 사드세요’ 하며 봉투를 건넨다. 처남댁이지만 한참 손아래여서 언제나 딸 같이 살갑게 대한다. 처남이 어제 그 자리에 내려 주었고, 우리는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오늘은 주일이다. 처음 계획은, 걸어가다가 토요일이 되면 전주로 내려가서 주일예배 참석하고 월요일에 다시 와서 걷기로 하였는데 그렇게 되면 리듬도 끊기고 여행에 차질이 생길 것만 같아서 그대로 강행하기로 하였다. 다만 가다가 예배 시간이 되면 어느 교회이든 들어가서 예배드리기로 하고 오산 땅을 밟으며 수원 쪽으로 향했다. 11시가 될 무렵에 만난 작은 마을 안쪽으로 십자가가 보인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이내 작은 교회가 나타났는데 외형이 예쁜, 대한예수교장로회 오산 진리교회이다. 길가다가 예배드리러 왔다고 하니 교인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예배당은 작았지만 아담하다. 교인들은 열 댓 명 정도이고 반주는 남자 중학생이 맡아 하고 있는데 조금은 서툴지만 정성껏 건반을 두드린다. 김기호 목사님의 설교와 여성도의 기도 모두에서 시골교회의 순박함이 전해진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과 교인들이 식사하고 가라고 2층으로 이끈다. 교인들의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맛있게 먹고 나서 ‘전주 사람이 맛있다고 하면 음식을 잘하시는 겁니다.’ 라고 고마움을 칭찬을 곁들여 전했다.

낯선 사람에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고 목적지까지 잘 가라는 교인들의 친절을 뒤로하고 교회를 나섰다. 대접받은 기쁨에 기분이 좋고 배가 든든하니 걷기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수원에 도착한 오후 6시경이 되니 기온이 급강하한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서 가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춥다. 그래서 배는 고프지만 일단 숙소부터 찾아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도 역시 매서운 추위다. 목도리로 목을 칭칭 감고 귀마개 달린 모자를 눌러쓰고 출발하였다. 걸어가며 좌측을 보니 곳곳에 성곽과 성문이 눈에 띤다. 신증동국여지승람 9권에 「수원은 본래 고구려의 매홀군(買忽郡)인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수성군(水城郡)이라 고치었다. 고려태조에 의해 수주(水州)로 승격되었다. -중략- 원종(元宗) 12년에 착량에 방수(防戍)하고 있는 몽고 군사가 대부도에 들어가서 주민을 침노하고 노략질하자, 섬사람들이 원망하고 분하게 여겨 몽고 군사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부사(副使) 안열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쳐 평정하자, 그 공로로 도호부로 승격시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었고」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단 수원은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원에는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 있는 5.4km의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원 화성 축성은 조선의 왕 정조의 효심의 발로이다. 비운의 생을 마감한 선친 사도세자의 능을 양주에서 수원의 화산으로 이전하여 현륭원(顯隆園)이라 명명하면서 수원화성이 축성된 것이다.

수원화성은 한국성의 구성 요소인 옹성ㆍ성문ㆍ암문ㆍ산대ㆍ체성ㆍ적대ㆍ포대ㆍ봉수대 등을 갖추어 한국 성곽건축기술을 집대성하였다. 또한 한국기존 城은 화강암으로 축성 하였는데, 수원성은 이러한 방식을 떠나 벽돌로 쌓은 점이 특이하다. 성을 쌓는 공사에는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를 활용하므로 인력 소모를 감소하였으며 축성에 새로운 방법이 시도되었다. 동쪽의 성곽을 돌면서 살펴보니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유산임이 명백하다고 느껴진다. 과거에 찬란했던 문화가 간직된 이곳은 잠시 지나치며 보기에는 아쉽고 다시 와서 찬찬히 돌아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의왕시와 과천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의왕시를 끝에서 과천이 시작된다. 가까워지는 과천은 자연 친화적 도시라는 느낌이 든다. “언제까지나 살고 싶은 과천시입니다.”라는 표지판대로 오랜만에 도시가 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도 그것은 대부분의 도시는 모난 시멘트 건물이 앞을 가리는데 반해 과천은 진입부터 왼쪽의 키가 큰 가로수, 오른쪽은 숲의 촘촘한 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하는 때문이리라. 역시 자연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시내 안으로 들어서면서 오래 전 예수병원 간호사로 근무했던 이성숙 선생에게 전화를 하였다. 전주서부터 걸어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오!주여! 왠일이예요!라며 놀란다. 어디냐고 물은 후 조금 있다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왔다. 3년 전에는 부군 정영래 장로와 함께 필자의 사진전을 보러 전주까지 내려 온 적이 있는, 나에게는 知人이며, 고마운 부부다. 넓은 집안으로 들어가 보니 노모를 모시고 빈나와 나래 두 자녀와 함께,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가꾸는 행복한 가정임을 알 수 있다. 정영래 장로는 우리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모임 중간에 잠시 우리 보러 왔다며, 싱싱한 해물을 사다주고 나간다. 집주인의 마음처럼 포근함이 배어있는 집에서 하룻밤 쉬고 거뜬한 몸으로 출발하였다.

이성숙 선생은 어제 우리를 태웠던 근방에 내려 주었다. 내린 곳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니 남태령 고개가 시작된다. 야산을 가로지르는 작은 오솔길인 이 고갯길로 그 옛날 과거 지망생선비들이 숱하게 오르내렸을 것이다. 올라갈 때는 모두에게 희망찬 길이었겠지만 내려올 때의 이 길은 급제자에게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의 길이요, 낙방거자(落榜擧子)에게는 눈물의 고갯길이었을 것이다. 남태령은 삼남대로의 몇 안남은, 보존된 옛길 중 하나로 원래의 이름은 여우고개였다. 고개 이름이 바뀐 이유는 정조임금이 수원에 있는 선친 사도세자의 능행차시 이 고개를 넘으면서 묻자 과천현 이방 변씨가 임금 앞에서 ‘여우’라는 상스러운 말을 아뢸 수 없어서 “한양에서 남쪽으로 갈 때 첫 번째 고개라는 뜻으로 ‘남태령’이라 하옵니다.”라고 엉겁결에 대답한 것이 그대로 불려 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는데 파란 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좌우에 잎이 다 떨어진 나무가 추위를 견디고 있다. 그리고 좁은 산길이 우리를 인도한다.



푸른 하늘은 언제나 꿈이 있는 희망의 삶을 살라하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는 위선을 벗고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가라고 한다.

그리고 좁은 고갯길은, 힘들더라도 너의 길이라면 포기하지 말고 걸으라고 한다.



▲ 남태령 고개로 가는 오솔길

이렇듯 자연의 길은 명상으로 인도한다. 명상에는 정적인 명상과 동적인 명상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방법 즉 주로 불교에서 하는 것으로, 가부좌(跏趺坐)를 틀고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동적인 명상으로 걷기명상을 말한다. 평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길이나 짧은 거리를 걸을 때는 못 느꼈는데, 이번 걷기 여행에서, 걷기가 명상이 됨을 느낄 수 있었다.

남태령 고개를 넘으니 바로 사당동이다. 남태령 지하철 입구에서 교통경찰에게 동작대교 가는 길을 물었다. 그랬더니 대뜸 말하기를 “여기서 지하철을 타면 ‘한방’에 가는데 먼 길을 왜 걸어가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전주에서부터 걸어왔다“고 하였더니 그제 서야 알았다고 손사래를 치며 알려준다. 그만큼 걷지 않는 다는 것이며, 따라서 지하철 두정거장은 엄청나게 먼 거리인 것이다. ’한방‘이면 간다는 교통경찰의 표현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작대교로 향했다. 사당동에서 동작대교까지는 꽤 멀다. 직선거리라면 가깝지만 그 사이에 산이 가로 막혀서 한참을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상명, 김종배, 정철구 세친구가 그동안 하루 한 두 차례 전화를 했었는데 사당동쯤에서 부터는 실시간 전화로 물어 온다.

―최종 도착 지점이 어디냐? 남대문이다.

―몇 시쯤 도착이냐? 오후 2시 경일 것 같다.

―어디만큼 오고 있느냐?’ 동작대교에 들어섰다.

―밥은 먹었냐, 컨디션은 괜찮냐? 를 한 시간 간격으로, 마치 자신의 일인 냥 묻는다.

동작대교 진입이 생각보다는 복잡한데, 우리가 동작동으로 향한 것은 동작대교가 옛날 삼남대로의 강 나루터이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은 여기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동작대교에 올라서니 한강의 푸른 물이 육중하게 흐르고 있고 서쪽의 한강대교 너머로는 육삼 빌딩이 보인다. 이제 한강에 도착한 것이다. 옆에 사람이 있기에 부탁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동작대교 위를 걷기 시작하였다. 건너편을 바라보니 까마득해 보인다. 한강의 폭이 그만큼 넓다는 얘기다. 동작대교를 건너 동부이촌동에서 서쪽 방향으로 걸으니 한강대교와 만난다. 그곳에서 용산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곳에는 과거 동아그룹 사옥이었던, 빌딩이 하나 있는데 이 빌딩은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배호의 노래 “삼각지로타리로 헤매 보는 이발길~” 로 유명한 그 삼각지가 나온다.

계속 북쪽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앞에 한 미국인이 네 댓살 되어 보이는 딸의 손을 잡고 무어라 얘기를 나누면서 가고 있다. 금발의 꼬마가 귀엽 길래 굿모닝 하였더니 이 꼬마가 아빠와 얘기하다말고 우리를 쳐다보고 손을 흔들며 하이! 하며 인사를 한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방긋 웃으면서 인사에 대한 답례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전혀 없어 보인다. 우리네 경우를 보면 어린이들은 낯선 사람이 말을 걸으면 대개는 엄마 뒤로 숨거나 부모들의 허락을 기다리며 눈치를 살핀다. 이는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가질 것을 배워 왔기 때문에 그러는 것인데, 그렇게 가르쳐야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 9일간의 도보여행을 마치자 환영나온 친구 하상명, 김종배와 함께 남대문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자니 서울역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인 1925년 9월 30일에 준공된 역사는 그 당시에 ‘경성역’이라 하였고 해방 후 1947년에 ‘서울역’이라 개명 되었다. 서울역사는 조선총독부청사와 함께 조선을 착취하기 위해 세운 대표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다. 사적 284호로 지정된 서울역사는 이제 철도역사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2007년 7월 문화 관광부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전환할 것을 발표하였다.

필자의 고교 시절 서울역에서 밤 9시에 기차를 타면 삼천포 도착은 다음날 낮 12시가 되었다. 방학 때 집에 까지 무려 15시간이 걸렸지만 부모님을 뵈옵고 친구를 만난다는 기쁨에 지루한 줄 몰랐던 때가 있었다. 옛날 일을 생각하며 서울역을 바라보니 감개무량하다. 서울역 앞의 세브란스 기념 빌딩을 지나자 드디어 남대문이 보인다. 감격스런 마음으로 다가서니 하상명, 김종배 두 친구가 프랑카드와 꽃다발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의 환영을 받고 보니 마치 나와 아내가 북극 탐험이라도 한 것 같다.

그런데 프랑카드 적힌 아내의 이름 끝자가 틀린다. 이런 것이 경상도 발음의 특징에서 오는 돌발 사고다. 전화로 이름을 물었을 때 분명히 송옥빈이라 알려 줬는데 종배는 ‘긴’이라 알아들은 것이다. 어이 친구, 내가 알아듣기 쉬우라고 빈 그릇의 ‘빈’자라고 했잖냐? 했더니 종배는 야! 긴 그릇‘긴’자라 했어! - 그려 괜찮혀어. 이름 한자 틀렸다고 누가 잡아 가냐? 아무튼 고맙다.! 그랬는데 이 친구, 우리가 목욕하고 나오니 프랑카드를 새로 만들어 놓았다. 정말 못 말리는 친구다. 이 친구는 저녁이 되자 우리를 태우고 전농동에서 음식점을 하는 하상명에게로 갔다. 도착하여 보니 출입문 유리에 “환영, 전주에서 걸어서 서울까지, 친구야 반갑다.” 라는 글을 붙여 놓았다. 조금 후 정철구도 합세하여 거나하게 저녁을 먹었다. 9일에 걸친 도보 여행의 피로가 친구들의 환대로 눈 녹듯이 사라졌다.

/김천식 전주대 역사문화컨텐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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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호 2011-02-02 10:43:45
성도님 아름다운 글 이제야 읽었습니다 대접도 변변치 못해 드렸는데도 저의들을 아낌없이 칭찬해 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행복하세요~~~^^ 오산진리교회 깁기호 드림

하상명 2009-03-17 11:18:23
반전~~김종배~~아니거든요~~박종배올시다 ㅎㅎㅎ
자랑 하고픈 친구 우리 언제 ~~~방짝 들이랑 같이 한번 짧은 거리부터 ~~~걸어 보세
다시 한번 축하 합니다.*^&^*

시민 2009-03-13 10:03:14
주일이라는 표현은 신문기사에 맞지않습니다. 새전북신문은 기독교신문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