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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64>시계태엽 오렌지
2009년 03월 12일 (목) 새전북신문 sjb8282@sjbnews.com

   
대부분의 영화는 인간이 처한 선택의 상황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삶, 행동양식 그리고 감정에 대한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해답을 자신의 영화 속에서 찾기보다는 우리 주변의 삶에서 찾도록 유도한다. 영화가 던지는 화두는 물리적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관객의 자기 성찰로 이어지며 존재에 대한 질문과 대면한다. 인간의 본성과 자유의지, 사회구조와 개인, 감시와 처벌, 폭력과 억압된 성적 욕망은 우리의 일상에서 미시적으로 작동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적인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는 야만적인 도구적 이성으로 전락한 ‘근대의 인간’과 권력의 대중 지배를 정당화하는 전체주의의 감시와 처벌, 재사회화 과정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뛰어난 작품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영국 문학의 거장 안소니 버젯스(Anthony Burgess)의 원작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폭력성을 다룬, 완벽주의 대가 큐브릭의 대표작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1965),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와 함께, 그의 SF 세 작품 중 가장 나중에 만들어져서 큐브릭의 색채가 절정에 도달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강한 폭력 묘사와 리얼한 성폭행 장면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 및 영국에서조차도 상영금지 등급을 받았고 20년 동안 개봉 금지되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 <미드나잇 카우보이>(1969)와 함께 - X등급으로는 사상 두 번째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1971년에 제작된 <시계태엽 오렌지>는 1995년의 영국, 당시로서는 24년 뒤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혼자 사는 여인을 잔혹하게 살해하여 14년 형을 선고받은 알렉스, 감옥에서 알렉스는 빨간 완장을 차고 있다. 폭력에서 쾌감을 느끼는 알렉스의 사디즘은 나치의 전형이다. 베토벤 교향곡이 흐르는 나치 전당대회 모습 역시 알렉스의 인성과 파시즘 사이의 연관을 암시한다. 그는 2년간의 지루한 교도소 생활 끝에 악인을 선인으로 바꿔준다는 테크놀로지 ‘루도비코법(法)’의 대상자로 선정된다. 이제 치료소에서 몇 주의 치료만 받으면,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사회로 나갈 수 있다. 사회 통제 시스템은 - 감시와 처벌을 넘어 - 근대의 발상 전환인 재사회화로 이어진다. 알렉스는 세뇌를 통한 감화 치료법으로 다시 세상에 나오지만, 비인간적인 치료법으로 인해 자살을 기도한다.



원초적 폭력성, 타나토스와 함께,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지만 가장 드러내기 힘든 본능이 성적 욕망이다. 서구 문화에서 비착취적인 인간관계는 있어본 적이 없고 그 무의식적 배경에는 성(性)이 권력으로 작동한다. 큐브릭은 폭력과 광기만큼이나 성적 표현에 있어서도 인색함 없는 과감성을 보여준다. 그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영화적인 수단으로 성(性)을 선택함으로써, 인간의 본능을 탐구하는 동시에 권력층을 향한 사회제도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큐브릭은 세계 영화계의 거장 감독 중 한명으로 손꼽힌다. 영화계에서는 그의 작품이 완성되어질 때마다 이목이 집중되었으며 격찬과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우리 사회의 압축된 모습을 그 특유의 연출력으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에서 미래 우주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표현해 SF 영화 장르의 발전을 한걸음 앞당겼고, <샤이닝>(1980)에서는 스테디캠 촬영으로 공포효과를 배가시켰다. <시계태엽 오렌지>(1971)에서 주인공 알렉스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은 카메라 렌즈를 땅 쪽으로 향하게 한 채 건물의 꼭대기에서 6번이나 던진 후에 얻었다고 한다. <배리 린돈>(1975)에서는 NASA에서 사용하는 우주 탐사용 렌즈를 사용하여 자연 광과 촛불 조명만으로 18세기 중세의 모습을 보다 사실적으로 담으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의 트래킹 쇼트와 광학 역 줌, 그림 기법(painting technique)은 논의의 여지가 없으며 큐브릭의 이미지는 팝문화적인 무의식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Nadsat라는 새로운 언어의 사용, 뱀, 양떼, 성경 등 수많은 종교적 논란이 될 상징들, 섹스와 폭력의 의미, 그리고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제목 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 등 이 영화는 생각해볼 만한 여러 가지 요소를 관객에게 제공한다.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 ; 도구적 이성에서 자기 배려의 인간으로>영화의 마지막에 알렉스는 교활한 미소를 띠며 “나는 치유 되었어요”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가 폭력적 본성을 되찾았음을 암시한다. 그는 처벌과 통제의 대상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 그러나 사디스트가 되어 돌아왔다. 물론 파시스트적 본성을 긍정하는 결말은 아닐 것이다. 영화는 다시 관객의 자기성찰의 여지를 마련해주고 있다. 권력-지식에 의해 통제된 ‘근대의 주체’,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파괴하는 야만적인 자기 보존의 도구적 이성에서 벗어나서 자기 인식과 배려의 인간으로 넘어가야 할 성찰적 과제를 우리에게 고스란히 넘겨준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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