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이어 온 선인들의 세공기술-장인혼 '반짝반짝'
천년 이어 온 선인들의 세공기술-장인혼 '반짝반짝'
  • 이일권 기자
  • 승인 2010.03.04 15: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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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그렇구나] 왜 익산이 보석도시인가
▲ 익산보석박물관에 전시된 보석모형 동탑
최근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 일원에 왕궁보석테마관광지가 조성되는 등 익산이 보석도시로 명성을 높여가고 있는 것은 귀금속과 관련된 지역의 역사적 배경과 전통산업인 석재산업의 발달 등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익산이 보석도시가 되기까지 배경과 과정, 유래 등을 알아본다.


▲ 익산 보석산업 유래와 역사

지난해 1월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과 백제왕궁터인 왕궁리 유적 발굴조사 및 왕궁리5층석탑 해체복원 과정에서도 수습한 수백점의 보석가공품과 섬세하고 정교한 귀금속 제품, 금·은 제련기구인 도가니 등이 대거 출토된 익산.

이를 토대로 1400년 전부터 익산이 귀금속보석 세공기술이 뛰어난 지역이었고 장인들이 집단 거주하는 고장으로 확인되면서 근래 익산이 보석도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 또 다른 전통산업인 석재산업이 발달하면서 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기술이 자연스레 뛰어난 보석가공술로 이어지는 등 산업 간의 연관성 또한 익산을 보석도시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익산은 1975년 8월 당시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몰두하던 정부가 제7차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수출유망 노동집약적 업종으로 귀금속보석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는 방안을 확정해 익산시에 귀금속가공1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해 1976년 6월부터 본격적인 귀금속 보석 제품이 생산되면서 보석도시로 탄생했다.

당초 귀금속 가공단지를 경기도 기흥 인근에 유치하려던 정부가 보석관련 인력 수급이 유리한 익산으로 계획을 바꿀만큼 이 고장 출신 기능인들이 보석관련 업계의 대표 주자로 활약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고장 선인들의 세공기술과 장인 혼이 천년의 세월을 넘어 이어지기 때문인지 역사적으로 세공기술이 뛰어나고 정통성이 있는 익산이 보석도시로 선택된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다이아몬드를 대신하던 큐빅을 전량 수출하는 보세공장이 익산에 집적화됐고 수출량과 종사자 수가 급증하면서 1979년 9월 가공2단지를 추가 조성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초 최대 호황을 누릴때만 해도 익산에는 약 2만여명(가내 공업 포함)이 보석관련 산업에 종사했으며, 우리나라 귀금속보석 수출.입은 수출자유지역이 있는 익산보석가공공단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이후 이후 약 35년간 익산의 대표적인 전통산업으로 각급 학교 사회교과서에 보석산업이 소개되면서 보석은 익산의 브랜드가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과거 익산에서 기술을 익힌 수많은 기능인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 진출했고, 국내 주얼리학과 교수들의 대다수가 익산 출신이거나 연고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노동시장 개방과 인건비 상승 등으로 노동집약적 산업인 귀금속보석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으면서 중국과 일본 등 해외로 진출한 업체가 늘고, 설상가상으로 그간 익산에만 주어지던 보세혜택 마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시장이 서울로 집중돼 익산의 보석산업은 최대 위기를 맞는다.

이같은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익산업체들은 국내 내수시장으로 눈을 돌려 1989년 영등동에 보석판매센터를 개관하고 국내 최초로 매년 봄과 가을 보석축제를 개최하면서 보석도시의 명맥을 지켜가기 시작했다.

이후 2002년 익산시는 왕궁면에 보석막물관을 개관하고 2004년 귀금속보석산업 클러스터 구축사업이 확정되면서 2008년부터 국내외 업체가 참가하는 산업전시회 성격의 주얼리엑스포를 매년 익산4대축제와 함께 개최하면서 보석도시로서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3월 왕궁면 동용리 일원에 새로운 전시판매센터인 주얼팰리스를 준공하고 내년 3월 가공단지인 주얼리파크 완공 예정으로 익산 보석산업클러스터 구축이 가시화 되고 있다.
▲ 대한민국 보석가공 명장 1호 칭호를 받은 김찬 명장이 보석을 연마하고 있다.

▲ 익산 보석산업 현황

익산의 보석산업은 태동부터 수출 중심과 노동집약적 고용창출을 위한 산업으로 육성되면서 천연보석보다는 다이아몬드를 대신하는 큐빅을 집중적으로 가공해 전량 수출했던 과거와 달리 세계 보석시장이 천연보석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많은 업체들이 천연보석을 취급하고 있다.

익산에는 현재 150여개(무등록 포함)의 보석가공업체가 있고 700여명이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영등동에 6만6,142㎡ 규모의 귀금속가공1,2단지가 있고, 보석판매센터에는 28개업체가 입점해 매년 수출 300억원, 내수 900억원 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관련 단체로는 1976년에 설립한 익산귀금속보석가공업협동조합(이사장 강세천)이 최다 회원사를 보유하며 익산보석산업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으며, 수출과 제조업체 중심으로 2008년에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익산귀금속제조업발전협의회(회장 허석봉)와 기술자들이 모여 만든 한국귀금속보석기술협회 익산지부(지부장 김운기), 수출 주력업체들의 임의단체인 익산주얼리협회 등에서 보석산업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인터뷰] 대한민국 보석가공 명장 1호 김찬 명장
▲ 김찬 명장


“보석도 돌의 일종이라 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익산사람들의 기술이 보석가공으로 접목돼 뛰어난 기술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지난 2005년 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으로부터 대한민국 보석가공 명장 1호 칭호를 받은 김찬 명장의 말이다.

그는 60년대 거북커팅, 입체삼각커팅을 시작으로 2002년 태극문양, 축구공, 골프공 커팅 등 200여종 이상의 보석가공 연마기법을 개발한 명장이다.

서울 태생인 그가 가정형편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보석업계에 뛰어들 때만해도 보석가공을 배울 곳도 방법도 없어 하나하나 스스로 개발해 나가야 했다.

무지한 상태에서의 이 같은 도전과 개척은 오히려 그를 평생 보석 앞에 붙잡아 두는 계기가 됐다.

지난 1982년 익산으로 내려온 김 명장은 현재 귀금속2단지에서 세공기술자 1명과 단 둘이 보석가공업체인 보역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보석가공 개발에 매달려 온 김찬 명장은 지금도 사파이어와 루비 등의 보석을 더 뛰어난 색감으로 표현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기술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특화된 보석 가공기술을 보유하는 것만이 보석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열쇠임을 강조했다.

김찬 명장은 “70년대 일본에서 백수정목걸이를 만들어 달라고 의뢰한 일본업체가 단지 그 제품에 광택을 내는 마감 작업만으로 5배 이상의 가격을 받는 것을 보고 15년 동안 연구해 개발했더니 우리 기술자들이 그 기술을 중국업체에 일주일만에 전수해 주는 바람에 급기야 익산의 5개업체가 폐업하는 황당한 경우도 봤다”며 “보석산업의 핵심은 가공기술인만큼 기술자들이 습득한 기술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 주는 풍토가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일권 기자 like@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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