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138>환상의 그대
[시네마 산책]<138>환상의 그대
  • 김혜영
  • 승인 2011.03.10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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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최근작인 <환상의 그대>는 한 가족에게 벌어지는 크고 작은 해프닝을 담고 있다. ‘여건이 되는 한’ 최상의 조건과 배우를 찾아서 작업한다는 우디 앨런은 투자 받기 힘든 미국을 벗어나서 이제 유럽의 일상성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ristina Barcelona, 2008)의 지중해 바로셀로나의 풍광이 우연 같은 필연을 설득하는 최적의 장소였다면, 이번에는 런던에서 영국식 엑센트로 막대한 분량의 수다를 풀어낸다.

제2의 청춘을 살고 싶은 알피(안소니 홉킨스)는 조강지처인 헬레나(젬마 존스)를 버리고, 젊은 콜걸과 재혼한다. 충격을 받은 헬레나는 점쟁이에게 매달리며, 내세의 환상에서 희망을 찾는다. 이들의 딸 샐리(나오미 와츠)는 의대를 그만두고 소설가 데뷔 후,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하는 남편과 불화가 계속되는 중에, 고용주인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반한다. 샐리의 남편 로이는 건너편 창가의 여인 디아를 사랑하게 된다.


“인생은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 차 있고, 결국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셰익스피어로 시작하는 이 허무주의적인 발언은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주제이다. 플롯이 복잡하고 등장인물이 많아서 혼란스러울 법도 한 이 영화는 시작과 끝의 내레이션을 통해서 관객의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평범치 않은 사랑도 결국은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지나치게 분노할 필요도, 슬퍼할 필요도 없다. 맥베스에 나오는 대사처럼 “인생이란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 끝내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가엾은 배우, 소란과 광기가 가득하나 결국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감정이 배제된 연출

우디 앨런은 이번 영화에서도 관객의 감정을 자극하는 연출을 배제한다. 노화를 인정하지 않고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젊음을 지키겠다는 알피를 연민의 시선으로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아내를 버리고 환상을 좇았지만, 결국 인생 최악의 지옥문 앞에 선 로이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집안에서 부부는 거실, 부엌, 통로를 끊임없이 오가며 쉼 없이 이야기 하지만, 서로의 얼굴을 정면에서 응시하지 않는다. 하나의 공간인 동시에, 결코 하나로 통합될 수 없는 공간이 그들의 가정(家庭)이다. 반면 남편의 건너편 창가의 붉은 드레스의 여인을 탐한다. 프레임에 함께 담길 수 없는 위치를 바라보느라, 같은 공간에 머무는 부부는 억지로 연결된 관계처럼 위로받지 못한다. 유일한 해결책은 각자의 공간으로 분리되어 제 3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다.


“때론 신경안정제 보다는 환상이 도움을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허무주의의 끝에서 발견하는 환상은 인생을 추동하는 힘이 된다. “물거품 같이 부질없는 환상”일지라도 욕망해야만 삶을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네 사람은 결국 사
▲ 김혜영
랑이라는 이름의 환상을 좇는다. 물론 ‘환상의 그대’가 일상의 프레임에 안에 들어오는 순간, 최악의 상황과 직면하게 되겠지만 - 나이만큼 현명해지고 배려심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 환상은 때론 신경안정제 보다 유용하다.

<환상의 그대>는 이제 칠십 후반에 들어선 인생 달인의 고백 같은 영화다. 거장은 인생이 나이만큼 점잖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나직하게 말한다. 불윤과 치정이라는 3류 코드를 해프닝으로 만드는 것은 우디 앨런이기에 가능하기도 하고, 코미디의 시작이 아이러니와 비극에서 잉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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