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산책] <152>사랑과 슬픔의 여로
[시네마 산책] <152>사랑과 슬픔의 여로
  • 김성희
  • 승인 2011.06.30 2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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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슬픔의 여로 (Homo Faber, Voyager: 1991)

감독: 볼커슐렌도르프?연출: 솀셰퍼드(월터 페이버), 쥴리델피(사베스), 바바라 스코바(한나)



맥스 프리쉬의 소설 <호모 페이버,1957>를 루디 윌리처가 각색하고 볼커 슐렌도르프가 감독한 영화 <사랑과 슬픔의 여로, Voyager>는 근친상간이라는 사랑의 대가 이면에 놓인 인간 실존의 희랍비극적 묵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이 영화에는, <비포 선셋>의 각본에 참여하고 로맨틱 코미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으로 감독 데뷔한, 미모의 불란서 여배우 쥴리 델피가 사베스 역으로 출연하는데, 확실히 스크린에 비치는 그녀의 제스처와 얼굴 표정 연기란 꿈처럼 비현실적인 로맨틱한 즐거움을 우리에게 준다. 또한 솀셰퍼드의 말없는 표정연기와 내레이션은 애드리언라인의 <롤리타>처럼 회고적이며 고백적인 서술구조의 틀을 빌어서 이 영화를 진부한 포르노그라피의 영역을 벗어나게 해준다.

흑백 오프닝씬과 칼러 엔딩씬의 장면 처리 기법으로써 슐렌도르프는 '운명의 사슬'에 사로잡힌, '순환하는 인생행로의 항해자'라는 인간실존을 보여주며, 멕시코, 프랑스, 이탤리 미국, 그리스에서 촬영한 이 영화 이면에 내재한 다국적 조짐과 다양한 장소들은 현대 유럽 영화 산업에서 점증하는 '뿌리 없음'의 순환을 은유한다. '부모의 지도를 요하는, 미성년자 부적당 영화'라는 'PG-13' 등급을 받은, 1957년 7월 아테네 공항에서 시작하는 플레쉬백 씬의 이 영화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영화 같다는 인상과 함께 이국적 로케이션으로 운명적 인연의 무모함에 대한 화두를 꺼낸다. 복선이 많고 치밀한 시나리오 구성력과 아름답고 서정적인 화면구성의 연출력을 바탕으로,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남녀의 로맨스가 여행지를 따라서 펼쳐지는 내내, 스탠리 마이어스의 서정적 사운드트랙은 주제적 깊이를 더한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과 합작하며 일하는 엔지니어, 월터 페이버(솀셰퍼드 분)는 오직 과학과 기술만을 믿으며 신화나 예술의 비합리성을 등한시하는, 중년의 잘나가는 남자다. "한 여인과 3-4일이면 아주 많이 지내는 거요. 삼사일 지나면 난, 감정을 숨기고 시치미 떼지요."라고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월터는 가볍게 전 세계를 부표하듯 유람하며 누빈다.

어느 날, 비행기 사고로 멕시코 사막에 불시착하면서 페이버는 학창시절 친구의 형으로부터 우연히 그 시절 한 때의 연인이던 한나(바바라 스코바 분)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 그녀와의 마지막 대화를 회상한다. "월터, 할 말이 있어. 나, 임신했어." "정말? 의사한테 가보긴 한 거야? 한나, 내 말 잘 들어. 우린 지금 아일 낳을 상황이 아니란 거 알지?" 페이버의 이러한 반응에 한나는 같은 대학동창이며 페이버와 막역한 친구인 독일인 조아킴과 면피성 결혼을 한 후 딸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되어 유태인인 한나는 독일에 항거하면서 조아킴과 이혼하고, 그 후로는 소식을 알 길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후, 비행기 사고에서 알게 된 이혼녀, 아이비의 구혼을 피하여, 페이버는 습관처럼 파리행 호화여객선에 오른다. 이 여객선에서는 예술적 감각이 남다른 문학소녀, 사베스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페이버를 기다린다. 이어서 그는 무전여행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는 중이라는 사베스에게 뭔가에 이끌리듯 사랑을 느낀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여성과의 예기치 않은 로맨스로 활기를 되찾는 50세 중년, 페이버는 직접 렌트카를 운전하며 '험버트'처럼, 그녀와 함께 로맨틱한 사랑의 여로에 오른다. 프리라파엘리트 같은 이미지의 사베스와의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사랑의 사슬에 엮인다.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 이젠 쉽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없게 되고, 과거와의 비극적 아이러니의 조우가 이 두 사람을 기다린다.

마침내 사베스의 아버지가 월터인 것으로 드러나기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운드트랙과 함께 이어지는 우연성과 확률에 관한 월터의 묵상적 독백으로, 두 사람의 기막힌 사랑의 행각에서 관객은 사베스의 아버지에 대한 진실의 뿌리에 도달한다. 하지만 기계공학과 과학을 전공하는 셰퍼드가 자신의 우주관과 자연법과는 전혀 무관한 인간의 실정법으로 처벌받기에는 그가 처한 비극적 상황이 너무나도 희랍적 운명 비극에 더욱 가깝다는 심연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독사에게 물리고 쓰러진 사베스의 응급상황에서 만나는 해나와 페이버의 대화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당신 딸, 호기심이 많더군." "그 아이가 남자와 함께 있던가요? 근데, 왜 그렇게 우리 그 아이를 걱정해주시는 거죠?" "의사에게서 뱀에게 물려 죽을 확률이 3~10%라는 소릴 들으니, 왠지 불안해서 그래, 그 이상의 확률이 될 것만 같아서 말이야." "난, 통계 따윈 전혀 관심 없어요. 내가 딸 백 명을 낳았을 경우, 고작해야 3명에서 10명을 잃게 된다는 논리를 강요할 테니까요. 전, 그런 건 생각도 하지 않아요." "해나, 진실을 말해줘. 내가, 그 아이의 아빠인가? 그 아이가 예전에 말했던 우리의 그 아이냐구?" "나 없이 모든 일이 잘 될까? 그 아이의 치아, 입술, 그 아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어디서 나는 그 아일 찾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아인 사라지고 없다." "돌아가고 싶지 않다. 어디로든 말이다. 자살도 소용없다.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허물이 덮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눈으로 본들 무슨 소용인가? 내겐 더 이상 보이는 게 없다. 그 아이의 손길을 느낄 수도 없다. 묶은 머리카락 달랑이던 그 모습도."

▲ 김성희
이 영화는 비록 스릴러는 아니지만, 얼핏, 히치코크의 <현기증>과 우리의 영화 <올드보이>와 매우 닮은 면 이 있다. 1950년대의 세팅으로, 아득한 과거 속 인물과의 우연한 조우라든가, 세속적인 출세자인 페이버와 궁극적으로 그런 그를 불안정하게 내몰게 되는, 자기 나이의 절반도 안 되는 여인과의 예기치 않은 로맨스 등이 그렇다. 하지만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간성에 대한 심오한 지식과 전혀 왜곡되지 않은 깊은 통찰의 이미지들이 떠다닌다. 사이비예술인 척하는 폼새로 두루뭉실 넘어가는 그런 영화와는 다른, 비록 도발적이긴 하지만, 일면 독창적인 깊이를 천착해내는 영화를 보고 싶은 사유의 관객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영화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학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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