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의 삶 물레로부터 시작돼 친근한 소품들로 공감 주려 노력 한글 통해 작품에 일상적 느낌 담아내 아내의 후원과 격려 큰 힘 되기도 작품 아이디어는 생활 속에서 얻어 마음 담아 도예가로서 운명 이어갈 것
도자기는 마음으로 공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왜 이런 모양의 도자기를 만들었는지, 왜 그런 그림과 글씨를 그려 넣었는지, 도자기를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한다.
도자기에 자신의 마음을 담은 박한별(39) 도예가도 ‘상감기법(象嵌技法)’을 이용한 흙 작업을 통해 행복한 상상의 나래로 초대하면서 명장반열에 오르고 있다. 자기를 건조하기 전에 음각하고 적토를 메워 초벌로 구운 뒤 유약을 발라 재벌 하는 상감기법으로 빚은 자기는 중국의 청자보다 색과 빛이 더 맑고 밝다.
▲ 박한별 도예가가 도자기에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새겨 넣고 있다. 그는 “한글을 이용해 작품마다 흙 작업을 통해 얻는 일상적인 느낌을 담아낸다”고 말한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레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물레“도자기와의 인연은 막연한 관심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첫 시작은 1992년 백제예술대학 산업공예과에 진학한 뒤 물레차를 돌리는 스승의 모습에 반해 관심을 갖게 됐죠. 재미있어 보이기도 하고, 신기하고, 하면 잘할 것만 같은…, 왜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중·고 시절까지 특별한 꿈이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만 가득했다. 대학진학 후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물레였다. 항상 그의 손에 흙을 뭍이고, 물레 돌리는 도자기 공예의 현장으로 이끌었던 매개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도예가의 삶도 바로 물레로부터 시작됐다.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죠. 막연한 관심에서 시작한 발 물레질이 직업이 되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배경이 됐습니다.”
새로운 꿈을 갖게 된 만큼 더 넓은 삶의 길을 닥아 내기 위한 열정역시 커졌다. 도예가로서 새로운 삶의 길이 터진 것이다.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새 장르 열어
전통과 현대를 포함해 도자기 작품의 모양은 큰 차이가 없다. 박한별 도예가는 그래서 ‘모양’이 아닌 ‘감정’을 담은 작품을 빚는다. 작품을 감상하는 다른 누군가 역시, 편한 마음으로 일상적인 행복이나 느낌을 자신과 공감할 수 있도록 다가서기 위한 발로다.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도자기에 박힌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 은사에 존경하는 마음,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세상에 대한 섭섭함 등 도자기마다 흐트러진 한글의 자음과 모음은 그의 일상적인 행복과 아쉬움, 기쁨, 바람 등으로 표현된다. 여기에 우리말 한글의 아름다움까지 뽐내고 있으니 과거와 현재 모두 우리의 것을 잊고 있는 도예가로서의 예술성도 인정받고 있다. 도자기를 입체적으로 감상 할 수 있는 오묘함이 담긴 또 하나의 도자 장르로 평가된다. 1,100℃의 가마온도를 일정하게 맞추면서 성형단계에서 유약이 퍼지는 느낌이나 색감이 어떻게 달라질지 미리 예상하고 모든 작업을 진행하는 방식도 특징이다. 이는 전통과 현대, 감정을 도자기에 담기위한 박한별 도예가 만의 제작방법이다.
“제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친근한 소품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려고 노력했고, 우리들의 생활과 도자기가 함께하길 바라죠. 그래서 저는 한글을 이용해 작품마다 흙 작업을 통해 얻는 나의 일상적인 느낌을 담아냅니다.”
▲ 박한별 도예가가 물레를 돌려 도자기를 빚고 있다.고단한 도예가 삶 열정으로 이겨내
박한별 도예가는 특별히 이름난 도예명장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풍요롭게 원하는 만큼 작품활동을 전개하지도 못한다. 이전과 현재 모두 작품을 구워낼 때마다 소요되는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이에 굴복하지 않는다. ‘열정’과 ‘관심’ 만이 이를 이겨내는 명약(名藥)이 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익산시 어양동에 위치한 ‘한도예공방’은 2009년 전북도공예품대전 등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마련했다. 젊은 도예가의 열정이 남긴 산물이다.
“대학원 졸업 후 익산의 한 사회복지법인에서 도예 선생님으로 3년간 근무했지만 작품에 대한 열정과 갈망을 이기지 못해 4년 전부터 다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고단하지만 전업 작가로 걷는 길에 소홀할 수 있나요?”
복지재단 지도교사 생활을 그만둔 후 전업 작가로 개인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에 처음 익산시 남중동에 작은 작업실을 마련했다. 당시 한글 문양작업의 어려움도 컸다. 한 작품을 위해 며칠씩 집중하다보니 지인들로부터 ‘집요하다’는 평가 받을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3~4일을 꼬박 거쳐 한 작품에 담고 싶은 글귀를 새길 정도였다.
작업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낭패감에 빠질 때도 빈번했다. 2007년 전북도공예품대전대상을 받은 ‘나라말?미’ 벼루세트는 정읍과 전주를 오가며 작품을 굽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완성한 작품이다. 가마를 들이지 못해 몸 고생이 심한 작품으로 애정이 크다. 작업과정에서 내 몸과 같은 도자기가 망가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의 바람은’이란 작품을 만들 때였죠. 무게도 나가고, 부피도 큰 도자기 안과 밖에 한글을 시문하는 과정이었죠. 무거운 도자기를 혼자 뒤짚을 수 없어 자장면을 배달하러 온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저씨가 도자기를 놓쳐 망가진 적이 있어요. 그 때 심정은….”
작품은 당연히 실패였다. 하지만 그 해 어느 작품보다 심혈을 기울여 빚었던 작품에 들인 노력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고 현재 작업실에 고스란히 모셔져 있다.
도예가에게 실망감을 안기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원하는 만큼 작품이 잘 나오지 않고, 둘째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다. 이때마다 큰 힘이 되는 이는 아내 문지원씨의 후원과 격려다. 숨이 턱까지 차는데도 고비를 넘겨 ‘박한별’이란 이름 석자 빛낼 수 있었던 것도 아내 덕분이다.
▲ 작품 ‘비밀 이야기’
일상생활 관찰이 작품 아이디어로
도예는 생활미학이자 철학이고, 과학이며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된다. 박한별 도예가는 ‘이를 위한 열정 없이 이룰 수 있는 것이 있겠냐?’고 되묻는다.
“아직까지 배가 고프지만 한 번도 도예가의 길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도자기는 이를 만든 사람의 손길을 거쳐 누군가에 의해 특별한 쓰임을 가지며 존재의 목적성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도자기 공예야말로 인간의 손이 만들어 낸 가장 실용적이고 창의적인 예술이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만이 표출할 수 있으면서도 누군가가 작품을 가슴에 담을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도공의 길은 끝이 없다. 박한별 도예가도 마찬가지다.
앞으로의 소망도 오직 일념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거다.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행복감을 주는 문화콘텐츠로 주목받을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찾는데 소홀할 수 없다.
지혜와 솜씨, 미적 감수성과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한글 상감기법 도자기처럼 ‘박한별’이란 이름을 달고 내보일 수 있는 도예가로서의 운명을 잇기 위해서다.
대부분 그의 작품은 생활 속에서 관찰을 통해 발견한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한다. 전통적인 방법을 잊지 않으면서 맛깔스런 자신만의 자태를 뽐낸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소품들이다.
그래서 대부분 작품제작 아이디어는 평소 생활에서 관찰하고 얻는다. 다양한 생활상이나 사물의 색깔, 모양을 습관적으로 관찰하고 메모한다.
한글 상감기법 도자기에 이어 다음 작품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빛의 굴절에 따라 글씨의 형태가 바뀌는 작품이다. 다양한 색이 투영되는 필름을 통해 녹색, 빨간색, 코발트색 등의 독특한 색감을 도자기에 입히는 작업을 연구 중이다.
최근 처음으로 전통 장작가마를 이용한 도자기도 내보일 예정이다. 10여일 넘게 장작가마를 지킬 일이 벌써부터 걱정이지만 전통방법으로 구워낸 도자기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다.
<제작노트> 상감기법으로 빚는 도자기는 불소성과정과 문양과정으로 나뉜다.
△불소성과정
초벌이 끝난 기물을 시유(유약을 바르는 작업)를 마친 다음 재벌소성에 들어간다. 가마에서 기물을 소성할 때 어떻게 구워내느냐에 따라 기물의 색이 변하게 된다. 박한별 도예가는 환원소성을 한다. 환원소성 과정은 원하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중요과정이다.
재벌소성에 들어갈 때는 박한별 도예가만의 시간 때가 있다. 가마온도가 1,000℃에서 중성불을 한번 걸어주고, 1,050℃에 완전한 환원불로 잡아준 다음 1,230℃까지 온도를 끌어올려 30분정도 1,230℃를 유지하면서 뜸을 들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