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의 삶을 머리로서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며 전하는 이야기
한 여인의 삶을 머리로서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며 전하는 이야기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백제예술대학 교수·전북비평포
  • 승인 2011.09.22 16: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네마산책 161] 레퓨지 The Refuge
감독·각본 | 프랑수아 오종, 출연 | 이자벨 까레 (무스 역), 멜빌 푸포 (루이 역), 루이스로낭 슈아시 (폴 역)

첫 장편 <시트콤>을 비롯해, <8명의 여인들>, <스위밍 풀>, <리키> 등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젊은 영화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11번째 장편영화 <레퓨지>는 죽음의 깊은 상실과 임신이라는 현실에 처한 여성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크린에 여성 캐릭터의 심리를 곧잘 포착하는 프랑수아 오종이 캐릭터의 심리묘사가 아닌, 실제 임신한 여배우 이자벨 까레의 신체를 카메라에 담은 이 영화는 2009년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이다.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 교수·전북비평포럼)
파리의 고급 아파트에서 젊은 연인 무스(이자벨 까레 분)와 루이(멜빌 푸포 분)가 마약을 투여한다. 다음 날 아침, 약물을 과다 투여한 루이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무스는 루이의 죽음과 자신의 임신 사실에 충격을 받고서, 그 아이를 지우라는 루이 어머니의 권유를 뒤로한 채, 이렇게 독백한다. “죄책감이 들 겨를도 없었다. 루이의 죽음과 임신 소식. 그가 내게로 들어온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사랑과 약물의 환각을 털어낸 건조한 표정의 무스, ‘레퓨지(Refugee)’가 되어 바닷가의 ‘레퓨지(Refuge)’로 표류하듯 숨어든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배는 불러오고, 상처투성이 무스의 몸과 마음은 그 사이 커져만 간다. 얼마 후, 루이의 입양 동생이자 게이인 폴(루이스 로낭 슈아시 분)이 무스를 찾아오고, 뱃속 아이의 존재로 연결된 두 사람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이어서 상실의 끝, 그 유토피아 해안가 피난처에서 만난 상처 입은 피난민들의 삶은 투명한 슬픔으로 피어난다.

이 섬세한 스토리의?<레퓨지>는 한 여인의 삶을 머리로써가 아닌, 가슴으로써 잔잔하고도 강렬한 해변 이미지와 함께 우리 주변의 가족과 연인들과 그들의 죽음과 탄생, 그리고 그 숙명적 연결 고리 등을 한번 뒤돌아보고 성찰케 하는 여운을 남긴다. 흔히 여성영화들이 그러하듯, ‘모성애’를 전혀 자극하지도 않으며, 오종은 실제 임신 중인 이자벨 까레의 ‘D라인’ 여체이미지를 카메라에 부감샷으로 때로는 버즈아이뷰로 포착하며 대상화한다. “형이 뿌린 씨앗은 꽃을 피우고 … 우리가 거둘 거야”라고 말하는 폴로 분장한, 낯선 얼굴, 루이스 로낭 슈아시가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작업도 맡는다.

종종 근친상간, 난교, 사디즘, 마조히즘 같은 발칙한(?) 소재들로 풍부한 이전 작품들보다는 훨씬 수위가 낮긴 하지만, 오종의 다른 영화에서처럼 <레퓨지>에서도 마약과 동성애가 등장하며, 죽음과 임신을 소재로 모성과 성정체성과 상실과 결핍의 시대를 예사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진부하고 일반적인 방법에서 해법을 찾지 않는 오종 감독다운 매력이 풍기는 <레퓨지> 역시,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약물중독 여성이 거친 세상 밖에서 멀리 벗어난 ‘레퓨지’에서 뱃속의 생명이 점점 자라남과 더불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사회 복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레퓨지>는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바다 여행 판타지’로 일탈의 백일몽을 꿈꾸게 하는, 일상의 중독과 우울의 얼굴에 삶과 죽음과 사랑이라는 인류문화의 화두가 물씬 풍기는 해풍 같은 영화다. 치유와 도피의 경계선상에 서서, 여성성을 ‘실눈으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눈엔 어딘지 친숙한 ‘우리 어머니’는 ‘낯설게 하기’의 ‘거리두기’로써 낯선 러브스토리의 중심으로 실종되어버리고, 그 자리에는 투명한 바닷바람에 물결만 일렁인다.
많이 본 뉴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