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교육은 스스로 주인되는 행복한 삶을 위한 것”

‘행복의 재구성’녹색아카데미 강좌

기사 작성: 박규만 기자 - 2011.10.20 21:38

무한경쟁시대에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전북녹색연합이 ‘행복의 재구성’이라는 주제의 녹색시민아카데미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간다. 이 강좌에는 각각의 현장에서 행복을 가꾸는 총 8명의 명사가 참여한다. 이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새전북신문은 매주 열리는 강좌의 내용을 연속으로 발췌 수록한다. <편집자>

주제 :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교육

-김광화(대안교육연대 운영위원)

“자신에게 소중하고 절실한 일을 하는 게 성장하는 길”

“교육은 스스로 주인 되는 행복한 삶을 위한 것, 그러나 경쟁할수록 주인자리 지키기 어려워”

김광화 선생(54)은 20여년 간 서울에서 살다가 무주 안성으로 귀농하여 홈스쿨링으로 두 자녀를 교육시켰다. 본인은 교육시켰다기보다 ‘방치교육’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시작했다. 2시간여의 강연에서 선생은 홈스쿨링을 하게 된 배경과 그 동안 홈스쿨링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교육철학을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했다. 강연 내내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으며, 강연이 끝나고도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인 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는 5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얼굴에는 군살이 없다. 부드러운 미소와 맑은 안경 너머로 눈이 빛난다. 천상 올곧은 선생님 인상이다. 그러나 그의 실제 직업은 농부이다. 관행농이 아닌 유기농업을 하시는 자칭 ‘생태농부’이다.

귀농하기 전 서울에서 첫째 아이(지금은 24살의 ‘젊은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를 때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도 아이를 마구 혼내더라는 것이다. 봉투라도 들고 가야하나 생각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고, 아이는 학교가기를 싫어했다. 처음 경남 산청으로 귀농해서 대안학교인 ‘간디학교’를 만드는 일에 2년여 부부가 같이 했다. 하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부모가 먼저 근본에 충실하며 사는 것이 아이에게 더 중요하겠다 싶어 농사를 짓기 위해 무주로 다시 귀농하게 된 것이다.

가기 싫은 학교 포기하고 홈스쿨링 시도

처음에는 아이들을 시골학교에 보냈는데, 농사를 지으면서 아이들을 직접 교육할 수 있겠다는 용기와 깨달음을 얻었다. “관행농은 보통 벼를 한 줌에 7~8 포기씩 밀식해서 심는데, 한줌에 2~3포기만 심으면 자기 마음껏 마구 가지치기를 한다. 빼곡히 심으면 가지치기를 제대로 하지 않고 웃자라기만 한다. 우선 보기에 잘 자라는 것 같지만 병에 약해 농약에 의존하게 된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닭을 키우면, 암탉과 수탉이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아서 7～10개의 알을 품는다. 그렇게 품어서 난 병아리들은 생존의 힘이 대단하다.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도 먹지만, 살기 위해 뒷발질도 하고 스스로 먹이를 잡아먹는다. 이는 본성이 아닌가?” “아이들도 마찬가지 생명이니 스스로 살아가는 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본성이다” 이 본성을 잘 살려주면 아이가 제대로 잘 성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과 교육의 영감을 얻었다.

학교 다니기를 싫어하는 아이들과 대화를 통해, 의지를 확인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본격적으로 홈스쿨링을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스스로 계획표도 짜고 엄마는 아이의 영어를, 아빠는 수학을 담당했다. 그런데, 6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아이와 농사를 짓는 부모의 생활 리듬이 달랐고, 6개월 정도 지나자 부모가 학업을 책임지기에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부모들이 가르치는 홈스쿨링을 포기하고 아이에게 맡겼다.

자기 자신에게 소중하고 절실한 것부터 하라

큰 아이가 열네 살 무렵 학교를 그만두고 가장 먼저 하고 싶어 한 일이 자기만의 텃밭을 가꾸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자기 방만한 2～3평의 땅위에 상추, 쑥갓, 당근, 시금치, 고추, 오이를 길렀고, 심지어 잡초라고 뽑아버리는 명아주도 두 포기 정성으로 키웠다.

아마도 아이가 텃밭을 가꾸고 싶어했던 것은 부모가 농사짓느라 바빠서 시간 맞춰 밥을 챙겨 먹이는 것이 어려워지자 자기가 직접 냉장고를 뒤져 밥을 챙겨먹고, 그러다가 텃밭에 가서 채소를 따다가 먹으면서부터 재미를 느낀 듯 하다.

자신이 정성들여 키운 채소들로 자신의 밥상을 차렸을 때, 아이가 갖는 성취감과 충만함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잘 자란 명아주는 다듬고 삶아서 몸이 불평하신 외할아버지에게 지팡이로 선물했다. 명아주 지팡이는 청려장(靑藜杖)이라 하여 가볍고 단단해서 예로부터 귀한 선물이다.

큰 아이는 차츰 텃밭을 가꾸어 손수 음식 차리는 맛을 알아가면서 이를 정리해서 ‘개똥이네 놀이터’라는 어린이 잡지에 글을 쓰게 되었다. 만 열일곱 나이에 사회활동을 시작한 셈이었고, 그 뒤로 3년간 계속 연재한 것을 묶어 ‘열두 달 토끼밥상’이라는 책까지 내게 되었다. 지금은 한겨레신문 웹진에 ‘절므늬’라는 필명으로 ‘땅 파먹는 젊은이’라는 만화를 연재한다.

이렇듯 자신에게 절실하고 소중한 일을 꾸준히 하다보면 그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만큼 커, 소중한 결실을 맺게 된다.

재밌는 놀이, 일을 하면서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들은 놀이와 일을 구분하지 않는다. 작은 아이(초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 둠)가 두 돌이 채 안된 어느 가을날, 텃밭에서 붉은 고추를 따는 아빠를 한참 지켜보던 아이가 저도 고추밭에 들어서서 고추를 따더란다. 그것도 붉은 고추만. 하지만 아이가 으레 그렇듯이 고추를 계속 따지는 않았고, 그냥 자신이 즐거운 만큼 한 열 개쯤이나 따고 밭을 벗어났다.

여덟살 정도 되자 이제는 부모를 따라 벼베기를 해보겠다고 다가선다. 그렇다고 낫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위를 가져와서 줄기를 하나씩 베더란다. 그러다 열 살 쯤 되자 낫을 잡고 벼를 벤다. 첫 해는 두어단, 그 다음해는 열 단, 곧이어 아이가 1년 먹을 양식을 베었다. 아이들은 호기심으로 놀이처럼 시작하는 일이지만 이를 존중해 주면 자랄수록 일하는 힘도 늘어난다. 아이에게 벼베기는 호기심과 재미로 시작해서 용기와 식구 한몫을 한다는 뿌듯함으로 발전한다. 아이들은 자아성취를 통해 자아존중감이 생기고, 자기 몫을 하는 어른에서 더 나아가 사회에 유익한 몫을 하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일은 사람을 당당하게 만든다. 아무리 부모자식 사이라도 각자 독립적인 존재이다.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자면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심심하다 보면 스스로 창조력이 생긴다

시골에서의 삶은 처음에는 어떤 면에서 단조롭기 그지없다. 도시처럼 자극하는 게 많지 않고 전통적인 공동체문화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마을에 또래아이가 없고, 학교까지 그만두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심심함이 보약이 된다. 자신이 무얼 좋아하고, 무얼 하고 싶은지 자주 돌아보게 된다. 놀고 싶다면 혼자서도 잘 지내는 방법을 찾더란다. 물론 다른 아이들이 있으면 어울리지만 간혹, 같이 놀다가 다툴 기미가 보이면 혼자 놀던 그 힘이 나와 슬그머니 물러난다.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 힘이 둘이나 여럿이 어울릴 때도 그 빛을 발하는 것이다.

심심하다 보면 잃어버렸던 호기심도 많이 살아난다. 고양이와 친구처럼 지내고, 벌레를 관찰하고, 죽은 새를 땅에 묻어주기도 한다. 시간이 많으니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는다. ‘책 좀 그만 보고 운동 좀 해라’하고 잔소리를 할 정도다.

한 동안 보드게임을 좋아하던 아이는 어느 날 직접 보드게임을 만들었다. ‘꽃밭 쟁탈전’이라고 이름의 게임이다. 아이가 보드게임 만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일이 엄청 많다. 게임규칙을 짜고, 보드를 자르고, 그림을 그려 넣고, 매뉴얼을 만들고... 심심할 겨를이 없이 몰두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소설을 읽다가 스스로 소설을 써보고, 음식을 먹다가 음식을 만들어 본다. 기타에 푹 빠지면 인연 따라 배우고 짬짬이 연주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빈둥거리고 노는 꼴을 못 본다. 그리고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있어 심심할 틈이 없고 혼을 빼앗긴다. 하지만 아이가 심심하다보면 빈둥거리다 보면 스스로 좋아하는 놀이를 찾고, 몰두하고, 창조한다.

자식의 밥그릇을 함부로 깨지 마라

대부분의 부모들이 아이가 지금 행복하기보다 이 다음에 큰 인물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앞날을 위해 곧장 책상머리 경쟁으로 몰아간다. 지금 불행을 견딘다면 언젠가 아주 큰 밥그릇을 가지리라 믿으며. 그런데, 이것은 정말 위험하다. 사람은 자기답게 자라고 또 자신에게서 넘치는 걸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 제 밥그릇 제쳐두고 자꾸 남의 밥그릇 따라 그릇을 키우려고 할 때 제 그릇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행복 역시 점점 금이 간다.

현실은 책상머리 교육을 많이 받을수록 아이들은 점점 자신을 잃어버린다. 일류대 들어가고 나서도 경쟁이 버거워 자살하는 아이들. 대학을 나오고도 마땅한 일자리와 일거리를 찾지 못해 헤매는 젊은이들이 많은 게 오늘날의 현실이 아닌가.

어른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아이들을 책상머리교육으로 내 모는 것은 점점 아이를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고, 결국 아이의 밥그릇을 깨트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끝으로 교육은 부모가 져야할 짐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한 권리이고, 나아가 한 개인과 가정을 넘어 더불어 행복할 때 진정한 행복이 지속될 것이다.

김광화 선생은 강연을 마치고 참석자들의 질문에 “우리 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믿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자연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오히려 우리 부부는 부족한 게 많기에 자식 덕을 많이 본다.”고 넉살을 부린다. / 정리 : 전북녹색연합

연속강좌 “시인과 행복, 안도현의 행복론” 안도현(우석대 문예창작과) 10.24(월) 저녁7시 전주시의회 5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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