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한국문화 오디세이] 5. 정읍 두승산 유선사의 호랑이

우백호의 용맹한 기운 호랑이 상으로 대체

기사 작성: 이종근 기자 - 2011.11.17 23:14

산에는 반드시 산신이 있다. 산신은 고래로 우리나라 최고의 신이다. 그래서 산에 위치하는 사찰에는 어디가나 산신을 받드는 산신각이 들어서고, 호랑이는 산신 중에 최고의 산신령이다. 그래서 산신제를 지낼 때 호랑이가 출현한다는 이야기를 곧잘 듣곤 한다.

정읍 고부 두승산. 덕천면, 정일동, 고부면이 둘러싸고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불과 4백40여 미터로 평야의 한 중앙에 솟아있지만 그 자태는 우람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삼백예순다섯날 자랑하고 있다.

특히 주변에 내장산, 입암산, 방장산, 선운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쌓여 있고, 고부 동학농민 봉기의 함성이 울려퍼지던 이 산의 서편의 정상 능선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유선사가 자리하고 있다.

예부터 부안의 변산, 고창의 방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받아 온 두승산은 중국 진나라 때 삼신산 탐사표본으로 삼았을 정도였고 불사의 약이 있는 신령스럽고 평화스런 곳으로 알려졌다. 영주읍지에 의하면 도순산(都順山), 영주산(瀛州山)의 별칭을 갖고 있는 두승산은 아홉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동쪽 끝의 말봉에는 쌀의 용량을 재는 석두(石斗), 석승(石升)가 있었으나 1883년 나무꾼의 장난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두승(斗升)은 벼의 용량을 재는 용기(斗)와 쌀의 용량을 재는 용기(升)를 뜻한다. 때문에 선조들은 호남평야에서 풍부하게 생산되는 쌀의 정확한 계량의 필요성을 느껴 산의 이름까지 두승(되와 말)으로 명명했다. 말봉 앞에는 볏단을 쌓아놓은 형상의 노적봉이 자리하고 있어 풍요로움을 더해준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이 산의 줄기는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길게 뻗어 있다. 멀리서 보면 거북 형상과 흡사하다.

산 높은 곳에는 주로 암자가 있지만 (두승산)유선사는 신선이 노닌다는 유천(遊天)의 세계 구름 위 산 높은 두승산 꼭대기에 대웅전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신선들이 놀다가 승천하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 나무를 꽂아주며 이곳에 절을 지으라고 전해진 자리에 유선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풍수형국은 두승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용이 바다를 향하여 날아가는 혈처(穴處)이고, 유선사에서 바라보면 서해바다물이 육지로 들어오는 민물 때는 마치 해룡(海龍)이 용트림하며 다가오는 듯 하다고하여 비룡망해혈(飛龍望海穴)이라고.

이 두승산 정상 부근에는 유선사라는 사찰이 있는데, 대웅보전 옆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듯한 커다란 호랑이상이 있다. 두승산 유선사에는 산신을 모시고 있으며, 산신도가 대웅보전에 안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산신각의 산신령 호랑이가 출현하였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다. 유선사의 호랑이상은 마치 호랑이가 포효하면서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으로 조형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호랑이 조형상의 규모가 대단하게 크다는 데에서 매우 놀란다. 이 호랑이 상은 비구니 주지스님의 지시로 형상화하였다고.

꼬리를 치켜올린 채 포효하는 거대한 호랑이는 풍수지리상 ‘좌청룡우백호’의 약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세워놓은 독특한 사례로, 도교사상과 불교의 결합 및 선불일치(仙佛一致)의 다양한 면들을 접할 수 있을 터이다.

주지 성수스님(속명 박원순)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전에 이곳 유선사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올 당시 유선사는 8평 남짓한 법당과 15평 크기의 요사채만 있었다. 유선사는 한때 사세가 피폐되어 폐찰지경에 있었는데, 1982년 성수스님이 입사해 본래의 약사전(藥師殿)을 헐고 그 자리에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세웠다.

그리고 약사여래불석조입상, 종각, 3층 선방(禪房)을 짖고, 약사전 등을 건설해 전통사찰 54호 대한 불교 조계종24교구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또, 이곳은 수행정진하고 싶은 도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며, 학문의 덕을 쌓아 벼슬길에 오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고시방에서 공부하며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당시 주지스님은 아랫마을에서 물을 길어다 먹고 쌀을 날라다 먹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 마침 이곳에 들린 술사(術師)가 풍수지리적으로 대웅보전을 싸고 내려온 지맥이 청룡은 길게 뻗어 내려왔는데 백호가 끊기어서 재물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두 손으로 모아도 먹고 살기가 쉽지 않은데 한손으로 먹고살려니 헉헉거릴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성수스님은 그 말을 듣고 이왕 세울 바에는 호랑이상을 크게 만들어 놓는 게 좋다는 판단을 하였다는 것.

“이곳의 호랑이는 길이가 무려 8m나 됩니다. 풍수설에 의하면 유선사 대웅보전의 좌청룡은 실한 반변 우백호가 허해 호랑이상을 우측 내룡맥에 세웠다”는 주지스님의 말이다.

그래서 실제 산에서 호랑이가 출현하는 형식으로 크게 만들어 놓았다. 그때부터 신도들이 늘어나고 유선사가 번창하여 오늘이 이르렀다고 한다.

보통 혈(穴)을 중심으로 좌측에 있는 산을 모양에 관계없이 청룡이라 하고, 우측에 있는 산은 백호라고 한다. 이것을 사람에게 비유하자면 청룡은 좌측 팔이고, 백호는 우측 팔에 해당한다.

청룡과 백호는 혈장(穴場)을 보호하는 것이 주 임무이므로 바람이나 물이 함부로 침범해 혈에 융취한 생기를 흩어 버리거나 혈을 훼손하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며, 혈(穴)을 보호하고 (혈에)생기(生氣)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혈이나 명당에 생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청룡, 백호가 바람막이 기능을 하고 있어야 하며, 또한 곡면 반사경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풍수지리에서는 생기의 융취(融聚)를 필수로 하는데 생기가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기 때문에 좌우에 용호(龍虎)가 있어 혈장(穴場)을 주밀하게 호위해 기(氣)의 발산을 막아 주는 것으로, 청룡과 백호는 2중 3중으로 호위되는 경우도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안쪽 것을 내청룡·내백호(內靑龍, 內白虎)라 하고, 그 바깥쪽 것은 외청룡, 외백호(外靑龍·外白虎)라 한다.

특히 백호는 복(伏)하고 청룡은 강(降)해야만 하며,그래야 혈장이 청룡을 부릴 수 있고 그에 응하여 대장(大將)이 등대(登臺)해 전후의 사졸(士卒)을 스스로 만천(萬千)의 기상(氣像)으로 위엄할 수 있다. 비유하면 현무(玄武)는 대장에, 용호(龍虎)는 사졸(士卒)에 각각 해당하므로 현무(玄武)와 용호(龍虎)는 주종의 관계다.

그래서 청룡백호가 수려하면 좋은 기운이, 험하고 탁하면 나쁜 기운이 혈(穴)로 보내진다. 또한 청룡과 백호는 좌우에서 여러 겹으로 잘 감쌀수록 풍(風)이나 수(水)의 충사(沖射)를 잘 막아 주고 혈장(穴場)을 주밀(周密)하게 호위할 수 있으며,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이 혈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청룡과 백호의 화복론에 의하면 청룡은 남자, 자손, 관귀(官貴)를 주관하고, 백호는 처첩, 딸, 며느리와 재산을 주관하며, 또 청룡은 장남궁으로 본손 장남에 영향을 미치고, 백호는 지손(支孫), 서손(庶孫)과 관련이 있다. 명당과 안산은 외손을 관장함이 원칙이며, 청룡의 산세가 강건하면 용감한 남자들이 많이 배출되고 청룡의 지세가 약하면 병약한 남자들이 많아진다.

유선사의 경우, 풍수지리에서 우백호(右白虎)의 기운을 용맹있는 호랑이 상으로 대체해 조형시켜 놓은 셈이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유선사에는 그 흔한 오동나무가 보이지 않고 일주문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주지스님이 이승과 저승, 그리고 속세와 탈속(脫俗)의 경계를 구태여 구분하고 싶지 않아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에는 구름속으로 자취를 감춘다는 유선사(遊仙寺)라는 이름이 예사롭지 않은 까닭이다.

그래서인가. 이곳에 서면 추사 김정희의 예서 대련 ‘산숭해심 유천희해(山崇海深遊天戱海)’, 즉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 하늘에서 놀고 바다를 희롱한다’는 뛰어난 필력이 떠오르며 나도 모르게 하심(下心)을 하곤 한다. 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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