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시네마 산책
[주말엔] 시네마 산책
  • 김성희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1.11.17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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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하이자오 7번지 (감독 웨이 더솅·2008)

2008년 <제7봉, Cape No.7>이라는 제목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하이자오 7번지>는 개봉당시 대만 최고 흥행기록을 세운 영화다. 역사적 삶과, 그리움과, 사랑과, 청춘 등을 음악과, 해변의 풍광과, 감동과, 눈물의 중층 구성으로 짜 넣는 이 영화는 제28회 하와이국제영화제 (2008) 최고 작품상, 제45회 대만금마장 (2008) 영화음악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세대와 민족의 시공을 넘나들며, 보편하는 역사적 삶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 휴먼코미디 <하이자오 7번지> 속에는 일견, <테이킹우드스탁>의 색채와, 다양한 캐릭터와, 에피소드와, 위트들이 아가와 토모코의 주변에 포진해있다. 술만 마시면 떠나간 아내 이야기를 하는 특공대 출신의 경찰이나, ‘월금’이라는 옛날 악기밖에 못 다루면서 록 밴드 무대에 서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할아버지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당돌한 다다, 얼떨결에 밴드 베이씨스트가 된 전통주 영업사원과, 실제 일본 유명가수인 아타리 코스케의 특별출연이 그 한 예다.

 



"1945년 12월 25일, 토모코! 태양이 바다로 이제는 가라앉았어. 더 이상 타이완이 보이지 않아. 넌 거기서 지금도 날 기다리고 있니? 토모코! 사랑에 떳떳치 못한 이 못난 남자를 용서해다오. 교칙을 무시하고 난, 사고뭉치 한 소녀를 사랑했단다. 토모코, 자유분방한 네게 나도 모르게 빠져 버렸던 거야. 하지만 네가 졸업할 무렵, 우린 전쟁에 졌고, 난, 패전국의 국민이 되어 순식간에 귀족에서 전범으로 전락했지. 가난한 교사였던 내가 왜 민족의 죄를 짊어져야 하지? 시대를 잘못 타고난 걸까. 난 일개 교사일 뿐인데. 토모코! 널 사랑하지만 이제는 널 놓아줄게."라는 한 청년의 목소리로 시작하는 <하이자오 7번지>는 관객의 지성과 감성을 자극한다. 60년 전인 1945년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크리스마스에 본국으로 돌아가는 한 청년이 대만의 부둣가에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연인에게 보낸 러브레터의 내레이션이다. 위덕성 감독은 역사적 질곡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60년 전의 러브레터를 2000년대 초반 대만 대중음악의 인기에 부응하여, 전설의 록밴드 이야기인 <테이킹 우드스탁> 같은 분위기로 포장하면서, 아가(범일신)와 토모코(타나카 치에)의 관계로 이어지는 중요한 매개체로 사용한다. 타이뻬이에서 밴드 활동을 하던 아가는 밴드가 해체되자 고향인 헝춘에 돌아와 임시 우체부 일을 맡게 되다가, 수취불가의 반송우편물 더미에서 우연히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주소로 온 국제우편물인 오래된 편지 꾸러미를 발견하고 뜯어본다. 그것은 60년 전 대만을 떠난 일본 청년이 토모코라는 대만 연인에게 보낸 러브레터다. 때마침, 록음악을 포기하고 낙향하여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아가는 일본 유명 가수의 공연을 위해 급조된 마을의 아마추어 밴드에 합류하면서, 그 공연을 돕는 일본 여성 토모코를 만나게 되고, 몰래 읽어가는 60년 전의 그 러브레터 속 연인들처럼 중첩된 구조에서 사랑에 빠진다. 6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두고 반복되는 사랑의 메시지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 영화에서 수도인 타이뻬이와는 대조적으로 작은 해안가 마을인 헝춘은 젊은이들이 점점 사라지는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낙후되어있다. 타이페이가 성공을 의미한다면 고향은 실패를 의미한다. 그 편지를 몰래 읽어가는 동안, 아가는 자기 자신은 그렇게도 떠나고 싶은 고향이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떠나기 싫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수 없는 '유토피아 해변'이라는 삶의 아이러니를 깨닫는다. 위덕성 감독이 영화의 중간 중간 일곱 통의 러브 레터 사연을 내레이션으로 삽입하며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감각적으로 인상 깊다.

"토모코! 날 잊었을 거라 믿을게. 우리의 만남 자체를. 기억에서 지웠을 거라 믿을게.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했을 거라 믿을게. 이 모든 상상이 진짜라고 여길 거야. 그리고 너의 영원한 행복을 빌어줄게."라는 이루지 못한 옛사랑의 애절한 그리움이 과거시제로 남을 무렵, "토모코씨! 저는 편지를 쓰신 분의 딸입니다. 아버지의 방에서 이 상자를 발견했죠. 아버지는 올해 1월 돌아가셨습니다. 상자 속 편지를 모두 읽어봤습니다. 이리 아름답고도 슬픈 사연이 숨어있는 줄을 저는 몰랐어요. 제 부친을 대신해서 이 60년 전의 편지를 이제야 보냅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마지막 내레이션에 남아있는 현존재들은 서서 눈 감은 채 흔들리며 저물어간다.

/김성희 객원전문기자(백제예술대학 교수,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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