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형의 술술술]2.고구려 건국신화
[조정형의 술술술]2.고구려 건국신화
  • 박아론 기자
  • 승인 2011.12.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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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로 맺어진 해모수와 유화
왕권 체제에서는 군주가 곧 역사의 중심이자 역사를 창조하는 무대가 됐다. 이 역사의 무대에는 항상 여자가 등장했으며, 그 여자 뒤에는 춘향이 하면 이몽룡이 연상되듯 술이 뒤따르고 있었다.

고구려 개국 설화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득한 옛날 천제는 태자 해모수를 부여의 고도에 보내어 나라를 세우게 했다. 어느 날 해모수가 사냥을 나왔다가 목욕을 하는 세 처녀를 보고 첫눈에 마음이 끌렸다.

해모수가 가까이 다가가자 세 처자는 “우리는 몸을 가린 것도 없는 몸”이라고 한마디씩 했다. 히모수는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내 당장 이 자리에 집을 지어 줄 것인 즉 그 속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도록 하라”라고 말했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는다면 “이 통의 술을 실컷 마시라”고 말하며 채찍을 들어 땅에 집 모양을 그리니 당장 그 자리에 구리로 만든 집 한 채가 솟아났다. 해모수의 말을 듣고 세 처녀는 매우 기뻐하며 술을 흠뻑 마셔 마침내 취하고 말았다. 취중에도 세 처녀는 이 곳을 빠져 나갈 궁리를 해 동생인 훤화와 위화는 동망하는데 성공했으나 장녀 유화는 해모수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대는 나의 아내가 돼 늠름하고 강한 아들을 낳아 주시오.” 해모수는 마침내 유화와 정을 통했다. 유화는 이후 영특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소년이 바로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다. 주몽은 부여의 속어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주몽은 부여의 다른 왕자들의 시기 때문에 혈혈단신 멀리 피해 비류수 상류에 집을 짓고 살았으며, 이후 사람들을 모아 나라를 만들고 국호를 고구려라 칭했다. 주몽은 성을 고(高)로 고치고 스스로 왕이 되니 이때가 기원전 37년이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왕위에 오른 지 21년이 되는 해였다.

그 후 주몽은 말갈족을 정벌하고 비류국을 합방해서 국위를 점점 떨치니 그가 다스린 민가가 21만이 됑ㅆ다고 한다.

《동명왕편》,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 전해지는 이 건국설화는 우리 조상의 문헌 가운데 술이 기록된 첫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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