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외국어는 여행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

[임병식 여행칼럼]길위의 세상이야기

기사 작성: 임병식 기자 - 2012.03.08 22:01

유럽인들에게는 “독일어가 밥줄”이라는 보도가 있다. 독일의 경제력이 그 배경이다. 독일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재정 흑자를 기록하며 높은 경제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힘입어 독일에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유럽인들은 물론 전 세계 독일어 학습 인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세계 90여 개국 150여 곳에서 독일어 강좌를 열고 있는 괴테인스티튜트(GI·독일문화원)의 독일어 수강자는 지난해 말 현재 23만4,000명을 기록했다. 10년 전에 비해 8% 증가한 최대 규모이다.

이전에는 괴테의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를 읽기 위해 독일어를 배웠다면, 이제는 일자리를 위해 독일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영어의 미래’ 저자인 그래돌에 의하면 영어의 영향력을 100으로 할 때 독일어는 42, 프랑스어 33, 일본어 33, 스페인어 31, 중국어 22로 평가했다. 특히 유럽연합(EU) 내에서 독일어는 1위이다. 영어는 사용 인구로 따지면 세계 1위이지만 유럽연합에서는 독일어에게 한참 밀린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 후유증으로 국제사회에서 독일의 정치적 위상이 떨어지면서 독일어도 한때 위축됐다.

기자도 고등학교에서 제2 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지만 요즘은 독일어를 가르치는 학교도, 배우려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동서독 통일 이후 탄탄한 경제력과 함께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독일어 역시 이전의 위상을 회복하고 있다. 특히 문학과 철학, 신학, 음악학 전공자에게 독일어는 절대적이다. 독일어를 모르면 이들 학문에 접근하기 어렵다. 1999년 기준 노벨 수상자를 분석한 결과 영어권 357명, 독일어권 101명, 프랑스어권 56명, 스페인어권 18명, 러시아어권 17명 순으로 독일어의 위상을 보여준다.

독일어는 다소 거친 느낌이 없지 않다. 무뚝뚝하다는 게 적절한 표현이다. 하지만 독일의 국민가수로 사랑받는 모니카 마틴의 서정적인 노래를 듣노라면 이러한 편견은 눈 녹듯 사라진다. 언어보다는 누가 구사하느냐에 따라 무뚝뚝하기도, 달콤하기도 한 셈이다.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는 아예 독일어가 공용어다. 이들 지역을 여행하다보면 관공서 안내문, 도로 표지판 등에서 독일어를 숱하게 접한다. 못사는 나라 폴란드 헝가리 체코의 젊은이들은 독일어를 배경으로 보쉬 등 독일 회사 취업을 꿈꾼다.

언어는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을 반영하는 척도이다. 오늘날 영어가 세계 제1언어로 등극한 것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에서 시작돼,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영향력과 맞물려 있다. 영어는 이제 제2 외국어가 아니다. 필수 언어이다. 인터넷 언어의 80%가 영어라는 통계는 이를 단적으로 반영한다. 설령 미국 경제가 몰락하더라도 영어의 영향력은 상당기간 존속될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는 없다. 영어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제2 외국어는 중국어와 스페인이다. 중국은 13억 인구에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등에 업고 G2 국가로 부상했다.

대만 홍콩 싱가포르는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화교 인구(3,500만명 추산)를 감안하면 중국어 사용 인구는 15억명을 헤아린다. 콧대가 높고 아시아인을 깔보는 유럽인들도 수년 전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공항 면세점은 물론 관광지마다 중국어 안내 방송은 물론 안내문을 내걸고 있다. 급변한 중국의 위상을 반영하는 증거들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페인어에 끌림이 있다.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스페인어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경쾌한 혀굴림과 리듬감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호소력 있는 음색도 한몫 거들었다.

스페인어는 멕시코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등 24개국에서 4억 5,000만명이 공용어로 쓰인다. 멕시코 다음으로 스페인어를 많이 사용하는 나라는 뜻밖에도 미국이다. 미국은 멕시코와 전쟁에서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유타, 텍사스, 마이애미를 빼앗았다. 이 때문에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편입된 역사를 갖고 있다. LA시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이 절반에 달한다. 그래서 거리를 걷다보면 상점은 물론 도로 표지판, 관공서 안내문은 영어와 스페인어를 함께 쓰고 있다.

LA 다운타운과 할리우드를 오가는 지하철을 타면 다음 역을 소개하는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반드시 영어와 스페인어로 두 번 방송한다. 지하철 승객 역시 절반 이상이 히스패닉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중국어를 배우겠다고 목표를 세웠는데, 벌써 3월이다. 얼마 전 아흔에 방송통신대 신입생이 된 교수 출신 정한택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신문에 크게 실렸다. 그는 “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나이 따지며 망설이지 말고 당장 시작하면 된다. 백 살이 되더라도 지금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배우고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마흔을 넘겨 옥중에서 영어를 배웠다. 언어는 여행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한다. 중국어가 됐든, 스페인어가 됐든 실행에 옮길 일이다.

/임병식 기자 montlin@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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