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만나는 흑백 무성영화
21세기에 만나는 흑백 무성영화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2.03.15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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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산책]〈180〉아티스트 (미셀 하자나비시우스·2011)
[시네마산책] 21세기에 만나는 흑백 무성영화 <아티스트>(The Artist, 2011)
감독 :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배우 : 장 뒤자르댕, 베레니스 비조

올해 2월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아티스트>는 전 세계, 전 세대를 아우르며 관객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층은 새로움을 발견했고, 중장년층은 어렸을 때 감동을 주었던 고전 영화의 재현을 경험한다. 진 켈리 주연의 <사랑은 비를 타고>(1952)와 같은 뮤지컬 영화를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화면비율 4:3의 이 흑백영화는 영화 기술의 정수에 도달했다고 평가하는 21세기를 잠시 잊게 만든다. 남녀 주인공의 사랑과 댄스, 음악은 1920~30년대 헐리웃 영화 전성기에 제작된 영화처럼 느껴진다. 전혀 새롭지 않은 플롯과 연출에서 사람들은 ‘과거’라는 달콤한 마술을 경험한다. 반대로 고전 영화에 친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과거가 ‘새로움’으로 다가서면서 즐거운 꿈의 세계를 선사한다.

<아티스트>는 무성영화 시대에서 유성영화시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헐리웃을 배경으로 한다. 무성영화계 최고 스타였던 한 남자의 흥망성쇠와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성 영화 시대에 최고의 흥행 가도를 달리던 배우 조지 발렌타인(장 뒤자르댕)은 흑백 영화의 쇠퇴와 함께 부와 명예도 전락한다. 기존 영화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지키려했던 조지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점점 침울한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를 흠모하며 배우로 성장하고 있는 신출내기 페피 밀러(베레니스 비조)는 조지의 몰락과는 반대로 신예로 떠오르며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그녀는 조지의 수호천사가 되어 그의 재기를 돕는다. 페피는 파산으로 극한의 선택을 하려는 조지 곁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함께한다.

무성 영화 형식을 취한 <아티스트>는 소란한 일상을 잠시 잊게 한다. 음악과 댄스는 대사가 주는 피로함을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2012년 아카데미는 <아티스트>의 해라고 해야 할 것이다. 64회 칸영화제에서 <트리 오브 라이프>에 황금종려상을 양보했지만, <아티스트>는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의상상, 작곡상, 음악상을 수상했다. 장 뒤자르댕은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게리 올드먼, <디센던트>의 조지 클루니와 같은 경쟁자를 누르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에서만 알려졌던 배우 장 뒤자르댕의 수상에 대한 이의는 별로 없는 듯하다.

유성영화를 연기해온 배우가 무성 영화의 연기로 몸을 언어화하는 것은 힘겨운 작업이다. 장 뒤자르댕은 원맨쇼 코미디를 연기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던 경험은 무성 영화 시기에 최고의 스타 조지를 연기하는데 필요충분조건이 되었다. 감정을 체화하여 다양한 몸짓과 표정을 만들어냄으로써 무성영화의 답답함을 완벽하게 해소했다. 그는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방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장 뒤자르댕과 베레니스 비조는 현장에 흐르는 음악에 맞춰 감정을 조절하고, 표정과 눈짓으로 대사를 대신했다.

거의 무성 영화에 가깝게 제작된 이 영화는 음악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과 영화 음악가 루도빅 바우스는 고전 헐리웃 작품들을 감상했다. 음악이 대사와 음향 없는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방식과 친숙해지기 위해서다. 대사가 없는 상태에서 자막까지 최소화하고 이야기를 펼쳐가는 테크닉에 있어서 음악이 무척 중요하다. ‘페니 프롬 헤븐’과 ‘주빌레 스톰프’와 같은 몇몇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영화를 위해 새로 작곡되었다. 압권은 영화의 마지막 2분 동안 펼쳐지는 음악에 맞춰 두 배우가 추는 탭댄스다.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감독은 흑백 무성 영화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이 장면을 얼굴과 몸을 한눈에 보여주는 롱 쇼트로 촬영했다. 조지와 페피가 유성 영화를 찍으며 신나게 춤추고 노래하는 이 장면을 위해서 다섯 달 동안이나 탭 댄스를 연습했고, 장면을 촬영하는데도 열일곱 번이나 반복해서 찍었다고 한다.

<아티스트>는 단순히 과거로만의 회귀가 아니다. 이 영화는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음악을 예상하는 순간에 음향으로 반전을 끌어오기도 하고, 배우의 입이 클로즈업 된 상태인데 자막이 깔리지 않기도 한다. 기대와 어긋나는 엇박의 리듬이 관객의 집중을 유도한다. <아티스트>는 1920년대의 스타일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음으로써 21세기 관객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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