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첫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는 칠레이다. 올 4월이면 양국 시장이 개방된지 꼭 8년째다. 그사이 전북과 칠레간 교역규모는 폭증했고, 무역수지도 기계류 수출 활황세에 힘입어 흑자 폭을 넓혔다. 하지만 요강도 뒤집는다던 전북산 복분자주는 칠레산 레드와인에 되치기 당하는 등 산업별론 희비가 엇갈렸다. 새롭게 열린 미국과 유럽시장도 기대반 우려반이다.
△칠레시장 개방 8년 전북은= 한·칠레시장의 빗장이 풀리기 전 우리 기업은 제조업에서 반사이익이 기대됐다. 반면 농축산은 집중 타격받을 것이란 우려가 컸다. 그렇다면 8년이 흐른 지금 어떻게 됐을까?
전북발전연구원과 무역협회에 따르면 FTA 발효전후 전북과 칠레간 교역액은 약 5배 정도 커졌다. 발효 전 연간 2,500만달러를 밑돌던 수출은 이후 1억달러를 돌파했다. 비교우위에 있던 기계류와 섬유류, 화학공업제품 등이 관세까지 사라지자 수출에 날개를 달았다.
이에 반해 칠레산 수입은 농산물과 원자재를 중심으로 연간 500만~1,500만달러 안팎이다. 2008년 1,500만달러를 1차례 넘겼을 뿐이다. 덩달아 연간 2,000만 달러대에 그쳤던 무역수지도 1억달러를 넘어섰다. 전북경제 전체적으론 수지맞은 셈이다.
하지만 농축산물은 상황이 달랐다. 칠레산 수입은 봇물 터졌지만, 전북산 수출은 사실상 끊겼다. FTA 발효 전 연간 150만달러 안팎이던 수입은 700만 달러대로 급증한 반면, 고작 8,000달러 가량에 불과했던 수출은 이조차 중단됐다. 지난해 칠레에 수출된 전북산 농산물은 통틀러 1,300달러에 그쳤다.
특히 칠레산 과실주의 위력은 거셌다. 이미 고창지역 한 복분자주 제조사는 ‘FTA 무역피해’ 판정을 받았다. 경쟁상품인 값싼 칠레산 레드와인 공습에 밀려 생산량과 매출액이 25% 이상 감소한 결과다. 무역피해 판정은 도내 첫 사례라 과실주 업계에 미친 충격파는 더 컸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칠레산 과실주를 싸게 사먹은 것도 아니다. 대표적인 M와인의 경우 관세 철폐직전인 2008년 3만5,900원 했지만, 지난해 말 4만4,000원으로 23%(8,100원) 치솟았다. 관세가 사라진 게 무색할 지경이다.
전발연 이강진 산업경제팀 연구위원은 “가격 결정권은 수입사와 유통사가 쥐고 있다. 결국 관세가 폐지돼도 이들이 판매가를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FTA 효과가 자신들의 영업이익이 될 수도 있고 소비자에게 돌려질 수도 있다”며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인하 효과가 낮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과 미국시장 열렸는데= 이렇다보니 유럽과 미국 FTA를 놓고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최대 수혜주는 자동차, 반면 농축산업은 집중 타격받게 생겼다는 게 공통점이다. 이중 유럽시장의 경우 지난해 7월 빗장이 풀리면서 전북산 자동차 수출이 급증할 것으로 기대됐다.
수출은 연평균 6,100만달러 증가하는 반면, 수입 증가액은 300만달러 규모로 무역수지는 약 8,300만달러 흑자가 전망됐다. 기계와 섬유산업도 비교우위는 아니지만 각각 4,200만달러와 1,500만달러 가량의 흑자가 예상됐다. 하지만 철강제품은 1,020만달러 적자, 석유화학과 정밀화학도 320만달러와 110만달러 가량 적자 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농축산물은 값싼 유럽산에 밀려 연평균 206억원, 최대 325억원씩 감소세가 예측됐다. 이중 98%는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 축산물에 집중됐다. 가장 큰 피해품목은 돼지고기(-144억원)가 꼽혔다. 대 유럽 수출경쟁력도 낮아 전체적으론 연평균 680만 달러 적자가 예상됐다.
지난 15일 열린 미국시장도 마찬가지다. 도내 자동차산업 생산액은 연평균 1,791억원 정도 늘 것으로 예상됐다. 수출·입액은 각각 2,800만달러와 100만달러 규모로 약 2,700만달러 흑자가 예상됐다. 부품소재 수출이 급증하면서 자동차산업 전체를 견인할 것이란 전망이다.
완성차는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적다. 군산 한국지엠 승용라인은 미국 현지에서 생산, 전주 현대기아와 군산 타타대우 등 상용라인은 현지화 실패나 수출물량이 없기 때문이다. 화학(+134억원)과 섬유(+94억원), 전기전자(+58억원)와 기계(+19억원) 등도 반사이익이 기대됐다.
하지만 농축산업은 다르다. 연평균 842억 원대의 생산액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분석됐다. 관세가 단계적으로 철폐될 향후 15년간 감소액은 총 1조2,600억 원대에 이른다. 이는 국내 전체 감소액 10.3%에 달한다. 이중에서도 80% 가량은 돼지와 소 등 축산업에 집중됐다.
사과와 포도 등 과수는 연평균 96억원, 과채류와 고추 등 채소는 56억원 가량 감소세가 예측됐다. 주력 생산품인 쌀은 협상에서 제외돼 피해 예상액은 상대적으로 적다.
/정성학 기자 csh@sjb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