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노래처럼, 혁명은 춤처럼
인생은 노래처럼, 혁명은 춤처럼
  • 김혜영 객원전문기자
  • 승인 2012.05.10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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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산책]〈188〉시간의 춤
<시간의 춤>(2009) 감독 : 송일곤 내레이터 : 이하나, 장현성

지구 반대편 체계바라와 혁명의 나라, 쿠바에 뿌리를 묻고 살아가는 조선인의 후예들이 있다.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조선을 떠났던 그들의 후예들에게 한국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일제 강점기 천 여 명의 한인은 “4년 동안 일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멕시코 행 일포드 호에 올랐다. 이들 중 삼백 여 명이 노예의 삶을 견디지 못하고 쿠바로 가서 에네켄 농장의 일군이 되었고, 몇 년 동안 억세게 일해서 고국 땅을 밟을 것을 기약했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꼬레아노(한인)들은 여전히 대를 이어가며 쿠바에 살고 있지만, 험난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았다. 학교를 세워서 한글을 가르쳤고,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비밀 자금을 보냈다. 쿠바 혁명기에는 체계바라의 투쟁에 동참하기도 했다.

<시간의 춤>은 송일곤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이자 첫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하나의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1부와, 영화배우 내레이션으로 이어지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가 춤과 음악으로 이어지는 달콤한 낭만이라면, 2부는 죽음도 갈라놓지 못한 지독한 사랑의 그리움을 담고 있다. 쿠바에 살고 있는 꼬레아노의 현재가 송일곤 감독의 렌즈를 통해서 노래와 춤으로 살아났다. 이 영화는 단지 고통으로 얼룩진 이민의 역사만을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한계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춤과 음악으로 승화시킨다.

현재는 과거를 투영하며 빛을 발한다. 뜨거운 쿠바의 태양처럼 정열 가득한 라틴 음악에 맞춰 춤추는 그들의 검은 눈동자는 4대에 걸친 기나긴 세월을 담고 있다. 사연 많은 삶의 자취가 검푸른 파도 속에서 반짝거린다. 에네켄 농장에서 기타를 치는 일흔 넘은 세실리오, 평생 그림의 주제를 어머니에게 찾았다는 페미니스트 화가 알리시아, 작은 키 때문에 국립발레단의 정식 단원이 되지 못했지만 춤을 너무 사랑하는 디아날리스, 토속 종교의 사제가 된 디모테오 등 꼬레아노의 삶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생을 통한 기나긴 여정이다. 1세대, 2세대가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은 자신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통하여 그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천명의 사람들, 천개의 사랑, 천개의 불안, 단 하나의 희망’

폴란드에서 영화를 전공한 송일곤 감독은 <시간의 춤>에 이어 <시간의 숲>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는 <꽃섬> <마법사들> <오직 그대만>과 같은 극영화로 알려졌으나,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가 줄 수 없는 커다란 ‘울림’을 준다. “실제 하는 대상, 인물, 상황을 가지고 만드는 다큐멘터리는 자연스럽다.”는 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큐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한다. 촬영보다도 편집에서 오랜 작업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다큐멘터리에서도 송일곤 감독의 감성적인 연출은 여전하다. 그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의 춤> DVD를 가방에 싸가지고 다니면서라도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송일곤 감독의 두 번째 다큐 <시간의 숲>은 <시간의 춤>과 연장선상에 있다. 두 편 모두 여행을 통해서 시간과 기억을 되살린다.

검은 눈빛 외에는 한민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국적인 모습,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말, 한국과 쿠바가 경기를 한다면 쿠바를 응원할 수 밖에 없다는 꼬레아노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빛바랜 사진과 낡은 한복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독특한 검은 피부를 한 꼬레아노들이 한복을 입고 ‘꼬부랑 할머니’, ‘나비야’를 부른다. 기억의 끈을 놓지 않은 채, 사랑한 사람들이 남기고 간 “죽지 않은 시간”의 흔적을 지켜간다. ‘상자 안의 여자’는 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카리브 해에서 열정의 춤을 춘다. 그것은 기억으로 현존하는 뿌리에서 비롯된다. 과거는 ‘죽지 않은 시간’으로 ‘현재’가 되었다.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의 시간은 죽지 않고 현존한다./김혜영 객원기자(전북비평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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