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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 김성수, 동아일보 창간 실력양성-국가발전 기틀 마련

[정복규의 성씨순례] (46)울산김씨(蔚山金氏)

시조 김덕지(金德摯)는 신라 경순왕의 둘째 아들이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투항하려 할 때 극력 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마의태자(경순왕의 첫째 아들)를 따라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나 그의 행방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그의 14세손인 김환(金環)이 고려 때에 벼슬이 삼중대광 영도첨의사에 이르고 학성(울산)군에 봉해짐으로서 그의 후손들이 김환을 중시조로 하고 본관을 울산으로 했다.



역대 인물 중 널리 알려진 인물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다. 일찍이 김안국의 문인으로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닦고 급제한 뒤 부수찬 등을 거친다. 그 뒤 부모를 공양하기 위해 옥과현감이 된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병을 핑계로 전남 장성에 내려가 성리학에 몰두했다. 그는 천문. 지리. 의학. 산학(算學). 율법 등에도 정통했다.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는 1891년 10월11일(음9월9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인촌리에서 김경중의 4남으로 태어나 세살 때 큰아버지 김기중의 양자로 출계했다. 조선 인종 때의 거유(巨儒) 하서 김인후의 13대 손이다.



6세 때부터 한학을 공부하다가 1908년 일본 경성으로 건너가 1914년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했다. 귀국 후 1915년 중앙학교를 인수해 민족교육의 터전을 마련했으며 1919년 10월에 경성방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20년 4월에는 동아일보를 창간함으로써 30세에 교육, 산업, 언론을 통한 민족의 실력양성과 국가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1932년 보성전문학교를 인수함으로써 숙원이었던 고등교육기관 설립의 꿈을 이룩했으며 해방 후 1946년8월 보성전문학교를 기초로 해 고려대학교를 발족시킴으로써 민족사학의 터전을 다졌다.



해방 후 애국지사들이 한국민주당을 창당하고 참여를 권해 왔으나 처음에는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1945년12월 고하 송진우 선생이 흉탄에 쓰러지자 주위의 강청에 못 이겨 한민당 수석총무(당수)를 맡았다. 1951년 5월 피난수도 부산에서 제2대 부통령에 피선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과 뜻을 같이 할 수 없어 1년 만에 사임하고 말았다.



1953년 환도 이후 건강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승만 독재에 대항할 민주세력의 대동단결을 위해 노심초사하시다 1955년 2월18일 6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고 장지는 고려대학교 구내 인촌동산이었다.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는 일본 명치대학 법과를 마친 뒤 경성법전과 보성전문에서 교편을 잡고 변호사를 지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항일 변호사로서 민족정기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광복 이후 9년 3개월 동안 우리나라 초대, 2대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하는 등 민족사에 큰 획을 그었다.



가인은 청렴과 강직의 표상, 법관의 사표로 현재까지도 추앙받고 있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라고 정년 퇴임시에 남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교훈이자 귀감이 되고 있다. 2013년 현재 김병로 선생 생가 복원사업이 그의 고향인 전북 순찬군 복흥면 중리마을에서 본격 추진되고 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김대명(金大鳴, 1536 丙申生) : 문과(文科) 선조3년(1570)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김종진(金宗振, 1574 甲戌生) : 문과(文科) 광해군2년(1610) 식년시 병과(丙科), 김백균(金百鈞, 1574 甲戌生) : 문과(文科) 명종4년(1549) 식년시 갑과(甲科), 김상희(金相熙, 1864 甲子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식년시 병과(丙科), 김동주(金東柱, 1857 丁巳生) : 문과(文科) 고종20년(1883) 식년시 병과(丙科), 김진호(金鎭祜, 1847 丁未生) : 문과(文科) 고종13년(1876) 식년시 병과(丙科), 김인후(金麟厚, 1510 庚午生) : 문과(文科) 중종35년(1540) 별시 병과(丙科), 김헌수(金憲洙, 1865 乙丑生) : 문과(文科) 고종28년(1891) 식년시 갑과(甲科), 김흥수(金興洙, 1864 甲子生) : 문과(文科) 고종22년(1885) 식년시 을과(乙科), 김상호(金相昊, 1865 乙丑生) : 문과(文科) 고종25년(1888) 식년시 을과(乙科) 등 모두 57명이 있다. 문과 12명, 무과 1명, 사마시 44명이다.



현대 인물은 김상협(고려대총장, 국무총리), 김상순(제헌의원), 김동호(국회의원), 김병수(국회의원), 김상흠(국회의원), 김상홍(동아일보이사, 삼양사회장, 전경련이사), 김계수(삼양사 이사회장), 김태오(문학박사, 중앙대총장), 김택주(전북대교수, 조선대총장서리), 김상오(전북대대학원장), 김상만(동아일보사 대표이사), 김정수(전남대교수), 김종수(전남대교수), 김상준(삼양사전무), 김재옥(전북대교수), 김태규(전남대교수), 김정교(경상대교수), 김동호(전남대 농대학장), 김황중(하낙자), 김상기(동아방송국장), 김병하(검사), 김재정(의학박사), 김판조(의학박사), 김영중(조각가), 김원규(호남비료사장), 김노수(세창철강공업사장), 김병주(전라북도의사회 부회장), 김병규(전남대교수), 김상하(삼양사 대표)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종파 ▲광양파 ▲백암공파 ▲황주파 ▲연산파 ▲손암공파 ▲함평공파 ▲문정공파 ▲순릉참봉공파 ▲참봉공파 ▲신월파 ▲주부공파 ▲보령공파 ▲구해파 ▲부제학공파 ▲백화옹공파 ▲선동파 ▲용산공파 ▲죽청파 ▲진사공파 ▲복룡파 ▲거마산파 ▲작동파 등이다. 항렬자는 32世 환(煥), 33世 요(堯), 34世 중(中), 35世 수(洙), 36世 상(相), 37世 병(炳), 38世 재(載), 39世 구(九)이다.



본관 울산(蔚山)은 경상남도 동해안에 위치한 고장으로 본래는 진한(辰韓)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으로 파사왕(婆娑王) 때에 지변현(知邊縣: 戒邊城·神鶴城·火城郡)을 설치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하곡현(河曲縣)으로 고쳐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 태조 때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됐다가, 991년(성종 10)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됐다. 1018년(현종 9)에 울주군(蔚州郡)이 돼 속현으로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陽縣)을 관할했다가 방어사로 고쳤다. 1397년(태조 6)에 진(鎭)을 뒀으며 1413년(태종 13)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 1510년(중종 5)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됐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선조 31)에 울산도호부(蔚山都護府)로 승격돼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게 됐다가 1616년(광해군 8)에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동래부 울산군이 됐고, 1896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이 됐다. 고려 성종 때, 울산의 별칭을 학성(鶴城)이라고 했다. 1906년에는 월경지 정리에 의해 두입지(斗入地)인 외남면·웅상면이 양산군으로 이관된 대신 경주의 두입지인 외남면이 편입됐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울산군의 21개면이 14개면으로 통합됐고, 언양군은 폐지돼 언양군의 6개면이 5개면으로 폐합, 울산군에 편입됐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 울산읍을 시로 승격했다. 1995년에 울산시와 울산군을 통합하고, 1997년 울산광역시로 출범했다.



집성촌은 전남 장성군 북일면 성산리, 전남 장성군 북이면 신평리, 전남 장성군 진원면, 전남 장성군 황룡면, 전남 장성군 서삼면 금계리, 전남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 전북 순창군 복흥면 하리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울산김씨는 1985년에는 총 7,556가구 31,623명, 2000년에는 총 11,270가구 36,225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4천여 가구, 5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8,759명, 부산 2,340명, 대구 264명, 인천 605명, 경기 2,490명, 강원 434명, 충북 253명, 충남 735명, 전북 3,680명, 전남 7,721명, 경북 439명, 경남 3,833명, 제주 69명이다. 서울을 제외하고 전남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9,304명, 부산 2,438명, 대구 299명, 인천 1,418명, 광주 3,943명, 대전 777명, 울산 1,903명, 경기 6,309명, 강원 397명, 충북 330명, 충남 438명, 전북 2,771명, 전남 2,861명, 경북 443명, 경남 2,488명, 제주 106명이다. 서울, 경기, 광주, 전남, 전북, 경남, 부산에 많이 살고 있다.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