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이종근의 마음산책] 꽃

기사 작성: 이종근 문화교육부장 - 2014.09.14 19:08

올라갈 때 미처 보지못한 꽃, 내려올 때 보았습니다.

지평선 곱디 고운 김제, 가을날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합죽선 부챗살처럼, 갈꽃처럼 흩날립니다. 어느 새, 이내 맘도 붉은 빚으로 서서히 물들고 있었고, 한줄기 쏟아지는 소슬한 바람이 가져다 준 것은 아주 짧은 휴식입니다. 김제 지평선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강승완 서양화가는 '몽중화(夢中花)'를 테마로 대작과 소품을 병행, 기운생동의 묘를 때론 분방한 듯, 때론 섬세하게 생략된 듯, 때론 절제된 어휘로 화폭에 실어 나르는 작가입니다.

밤, 꿈 속에서 만난 아련한 향기가 코 끝을 간지럽힙니다. 가슴 속 깊은 곳에 새겨진 상상의 꽃을 그리는 '몽중화(夢中花)'는 자유롭고 아름다운 생명력이 표현됩니다. 내가 나비가 되었나요, 나비가 내가 되었나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아우르는 강 작가는 표현 대상에 대한 나름의 해석으로 꽃들과 함께 하는 꿈 속 세상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의 작품은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숲과 나무, 풀, 꽃과 열매, 새와 나비 등 온갖 생명들과 바람과 공기의 기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유로운 터치와 즉흥적인 구성 방식으로 작업하는 과정은 마치 꿈 속과 같은 잠재의식 속에 이뤄집니다.

시나브로 극적인 색상들의 화음으로 빚어진 순결한 하얀 천위에 붉은 와인이 쏟아지듯, 오밀조밀 별빛이 쏟아지듯 세상만사가 잠만경처럼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작가에게 기억이란 투명하고 명료하고 밝은 꿈처럼 다시 되살리는 일. 그가 커피처럼 내린 영혼의 시 '몽중화'는 내엷은 분홍빛 가슴위로 겹치고 또 겹쳐 흔들려 피어나는 꽃, 바로 술잔 속 바로 그 꽃잎.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순간을 돌아본다. 그 순간이 지니는 의미를.... 그래서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언듯 흘려들은 한 영화의 대사가 오늘따라 왜 이다지도 내 가슴에 커다란 회한으로 일렁이는 것일까요.

짧은 화려한 봄과 잃어버린 봄을 다시 기다리는 오랜 세월이여. 삶이란, 아, '일장춘몽' 한같 꿈이런가요? 봄은 생명의 시작입니다. 모든 시작은 미약하고 어리며 미숙합니다. 하지만 고운 햇살과 향기로운 바람, 그리고 맑은 물을 주고 사랑으로 돌보면, 어느 새 키 큰 나무가 되어 우리의 그늘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대자연은 봄을 느끼기기도 전에 훌쩍 달아나버립니다. 봄은 개나리의 노란색으로 다가왔다가 나무의 신록으로 내달음쳐, 여름속으로 숨어버립니다.

코스모스 등 꽃잎이 떨어지는 오늘, 이제 그들을 자유롭게 놓아 보내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죽음’이라는 자연 섭리 안의 축복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또 내가 가야 할 때를 알고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인연의 끈을 놓고 아름답게 갈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지는 해와 지는 꽃잎이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를 버려 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하는 그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가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아쉬워하기보다는 다음의 가을이 더 찬란하기를 바라며, 한바탕의 꿈을 웃음으로 훌훌 털어버려야 합니다. 진정한 가을은 그런 것입니다. 오늘, 올라갈 때 미쳐 보지못한 꽃, 내려올 때 분명히 보았습니다./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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