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풍성한 삶 이루는 '탐험' 멈출 이유 없어

[최용철이 읽고 쓰는 ‘수상한 책, 불편한 진실’] <24> 왜 탐험이어야 하는가

기사 작성: 최용철 전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 2014.09.18 19:01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종교가 대답할 수 있는가, 아니면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가. 과학과 종교는 모두 인간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같은 믿음을 가졌음에도 과학과 종교는 인간에게 사뭇 다른 명령을 내린다. 과학과 달리 종교는 인간에게 끔찍한 짓을 명령한다. 예를 들면 자식을 산 채로 신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다. 아홉 살 난 소녀가 의붓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해 쌍둥이를 임신한 경우에도 중절을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 가지』, 샘 해리스 지음, Sam Harris, The Moral Landscape, 강명신 옮김, 2013, 시공사, p.62.) 말대답을 하는 자식을 그냥 죽여 버리라고 명령한다. (p.67.) 여성은 언제나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다니라고 명령한다.(p.73) 자식 중 셋째 자식은 눈알을 뽑아서 평생 장님으로 살게 하라고 명령한다.(p.75) 어린 ‘소녀를 힘으로 때려눕히고 더러운 칼로 생식기를 잘라낸 다음, 그 부위를 꿰매어 소변이나 월경혈이 겨우 나올 만큼 작은 구멍만 남겨 놓는’(p.78.) 짓을 하라고 명령한다. 언제부터 누가 어떻게 내린 명령인지 조차를 확인할 수 없는, 저 오래된 폐악이 종교인들 사이에서 자행된다. 과연 이러한 폐악을 ‘문화’로 숭상하면서 따라야 할까.

종교는 끔찍한 명령을 내리면서 그 명령을 문화로 위장한다. 문화로 위장하는 만큼 종교는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폐악을 저지른다. 이른바 문화 상대주의이다. 문화 상대주의는, 문화에 따라 도덕규칙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문화 상대주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저마다 다른 문화권이 서로 다른 도덕규칙을 신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교는 문화 상대주의를 주장하고, 문화 상대주의는 도덕이 문화에 따라 불가피하게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종교와 다르게 과학은 도덕이 보편성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p.76.) 과학은 도덕규칙이 도덕원칙과 분명 다르다고 주장한다. 도덕규칙은 특정 행동을 ‘하라’, ‘하지 마라’고 명령한다.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지 마라’, ‘도둑질을 하지 마라’ 등은 ‘거짓말’과 ‘도둑질’ 같은 특정 행동을 규제하는 도덕규칙이다. 반면 도덕원칙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명령으로서, ‘행복하게 살라’, ‘자아를 실현하라’ 등이 그 예이다. 과학은 도덕규칙이 다르더라도 도덕원칙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문화 상대주의는, 특정 행위를 대상으로 명령하는 도덕규칙이 문화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과학은, 삶 전체를 아우르는 명령으로서 도덕원칙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서로 같다고 주장한다. 도덕규칙이 다르다고 해서 도덕원칙마저 다르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정 행동을 놓고 서로 견해가 달라도 삶 전체를 놓고 어떤 문화권에서나 서로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문화권 사이에서 보편성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행복’은 인간 삶 전체를 아우르는 보편 개념이다. “인간번영에 관한 기본 사실은 다른 사실과 마찬가지로 문화를 초월한다.” ‘인간번영’이란 행복으로서 ‘잘 삶’(well-being)을 뜻한다. “‘행복’ 개념은 ‘건강’과 마찬가지”이다.(p.60.)

과학은 보편 개념으로서 ‘행복’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단적으로 과학은 이 우주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다.”(p.54.) 과학은 행복을 설명하면서 뇌 영역을 끌어들인다. 행복이란 공감, 친절에 기여하는 뇌상태이며, 불행이란 잔인함, 증오, 공포를 초래하는 뇌상태를 가리킨다. 이러한 뇌상태와 관련하여 올바름과 그름을 가릴 수 있다고 과학은 주장한다. 뇌상태에 따른 설명으로 무엇이 잔인한 짓이며, 무엇이 숭고한 활동인지 확실해진다. 뇌 과학은 뇌상태에 따라 인간 활동 중 무엇을 금지시키며 무엇을 권장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 뇌 과학에 따르면 인간 활동은 모두 뇌상태로 환원될 뿐이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사이코패스(정신병자)를 대상으로 한 첫 번째 뇌영상 실험은, 비사이코패스 범죄자나 비범죄자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대체로 정서자극에 반응하는 뇌 영역 활동성이 현저하게 떨어짐을 보여준다.”(p.169.)

“행복해질 가능성을 과학으로 이해하는 것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p.176)이다. 사람들은 이제껏 서로 다른 도덕 풍경을 배경으로 살아왔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서로 다른 사고방식,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서로 다른 도덕을 가지고 살아 왔다. 과학은 다른 세계관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더욱 더 빛난다. 과학은 서로 다른 문화들 사이에서 보편성을 찾는다. 과학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과학은 ‘종교’가 사람을 어떻게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뇌상태로 판단한다. 종교와 과학을 동등하게 여겨야 할까. “모든 견해를 동등하게 여겨야 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p.62.)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이제껏 종교가 대답해왔다. 오로지 종교만이 삶에 관해 대답할 수 있다는 생각은 분명 독단이다. 무엇이 진정한 삶인가를 찾아나서는 탐험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탐험은 삶을 더욱 더 풍성하게 만든다. 종교로 말미암아 삶을 풍성하게 만들 탐험을 굳이 멈춰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 탐험을 멈추면서 스스로 삶을 초라하게 만들 까닭이 무엇인가. /최용철 전북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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