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을 부르는 은백의 설원 그 곳에 마음을 내려놓다
동심을 부르는 은백의 설원 그 곳에 마음을 내려놓다
  • 임병식 기자
  • 승인 2014.12.11 1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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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이야기가 있는 전북의 관광] ■ 겨울 변산반도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움츠러들기 쉬운 겨울,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부안 변산반도를 떠올렸다. 부안은 물산이 풍부하고 풍광이 빼어난 곳으로 이름나 있다. 바다와 산을 끼고 있는 까닭에 농산물과 수산물이 흔하다. 또 땔감도 흔천만천 널려 있다. 그러니 옛부터 배 곪을 일이 없고 겨울을 나기에도 넉넉하다. 겨울 변산반도를 끼고 달리면 우리 산하가 이토록 아름다운지 새삼 실감한다.

부안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입구를 품은 내소사가 있다. 또 고려시대 최고의 청자를 생산했던 도요지가 있다. 여기에 반계 유형원이 실학사상을 다진 곳이다. 여러 면에서 전남 강진과 닮았다.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부안과 강진을 흥미롭게 비교한 바 있다. 겨울, 변산반도를 돌아보는 것은 그래서 각별한 재미가 있다.

▲ 내변산 일주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만나는 부안댐 상류에 위치한 중계 일대. 은빛으로 눈부신 풍광이 일품이다.


서해안지역에 5일째 폭설이 이어진 지난 5일. 뉴스를 뒤로한 채 변산반도를 향했다. 종아리까지 차오른 눈길을 헤치고 변산반도를 향한 이유는 눈 때문이다. 폭설에 파묻힌 내소사와 변산반도를 보고 싶었다. 부안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흰 눈이다. 산과 들, 할 것 없이 은백의 설원은 눈부셨다. 하늘과 산, 들, 그리고 바다까지 한가지 색깔로 한 몸이 됐다.

▲ 눈싸움에 신난 우반동의 아이들.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대로 한 폭의 동양화다. 부안 읍내에서 변산반도 일주도로로 접어들자 눈발은 한층 거세졌다. 속도를 죽여 운전했기에 평소보다 늦게 음식점에 도착했다. 바지락죽집에는 승용차는 물론 관광버스로 북새통이다.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관광버스는 외지인들을 눈밭에 부려놓았다. 차를 나서면서 여기저기 감탄사가 터진다.

▲ 우반동에 위치한 반계 유형원 사당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실사구시



눈으로 둘러싸인 산속 음식점에서 사람들은 바지락죽을 입에 떠넣으며 부안의 아름다움을 입에 올렸다. 그들에게 한겨울 변산반도에서의 바지락죽은 오래토록 혀끝에 남을 것이다. 음식점을 나서 내변산 일주도로로 접어들었다. 내변산 일주도로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다. 눈으로 덮힌 산속의 집들은 고즈넉했다.

내변산을 넘으며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떠올렸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눈덮힌 산길을 엉금엉금 운전하며 운명처럼 눈속에 갇혔으면 하는 사람은 누굴까 떠올려 본다. 우반동에 도착했다. 우반동은 반계 유형원의 혼이 어린 곳이다.


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유형원은 광해군 때 태어나 32살 되던 해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52살 죽을 때까지 학문연구와 저술에 몰두했다. 중앙정치권의 정쟁을 피해 우반동에 정착한 그는 사회 개혁을 위한 실학에 몰두했다. 영조는 그가 주장한 정책들을 참고 삼았다고 한다. 그를 조선 실학의 시조로 부르는 까닭이다.

▲ 내소사 일주문부터 시작되는 전나무 숲길



반계사당으로 오르는 비탈길, 아이들의 목소리로 소란하다. 비료 푸대를 이용해 눈썰매를 지치는 모습에서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350년 전 한 지식인은 이곳에서 국가 발전을 위해 고민했다. 20여년 결과물은 ‘반계수록’으로 결집됐다. 그가 주창한 균전론은 당시만해도 혁신적이었다. 무심한 세월은 흔적 없고,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만 한겨울 적막을 갈랐다.

▲ 내소사와 겨울산


우반동을 떠나 내소사에 도착했다. 내소사를 향하는 길에도 눈발은 끊이지 않았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폭설을 헤치고 내소사를 찾은 이는 10여명에 불과하다. 일주문에서 사천왕문까지 곧게 뻗은 길은 언제 걸어도 품격 있다. 사열하듯 늘어선 전나무 숲길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곳을 드나드는 스님들은 사시사철 어떤 감흥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 내변산 일주도로에서 만나는 민가들. 고즈넉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숲길에서 듣는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전나무마다 걸린 흰 눈은 소담스럽다. 경내에 들어서자 풍경소리가 반긴다. 대웅전 처마 뒤로 멀리 보이는 겨울산은 일품이다. 탐욕스러울만큼 울창했던 내소사의 여름을 생각하면 겨울 산사는 담담하다. 무열당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한 해를 반추하는 하루가 짧다. 겸손하고 욕심 없는 삶을 꿈꿔본다. 이번 주말 생각하는 특별한 여행을 계획한 이들에게 담묵으로 은은한 겨울 변산반도를 권한다. /임병식 기자 montlim@s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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