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아구똥한 전주 사투리는 아리까리하기도 할 테지만

['당신에게 전주'] <23> 전주 사투리

기사 작성: 이병천·소설가 - 2015.03.18 16:08

점드락 여까장 외기느라 나수 굴풋허셨을 턴디, 겅거니가 이러타시 섬닷혀가꼬 어짜 올여? 하이고매! 목구녁 까시라서 딩기 왕기 앙 기냐 숭보깜시나 솔찬히 거시기허고만이라우. 이게 바로 전주 사투리의 진수다. 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몸살이 날 정도로 쥐어짜기는 했어도, 당신이 찾아오면 내가 할 말이기도 하다. 우리 주인공은 이미 많은 말을 했으면서도 거시기하다고 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풀어쓰자면 상당히 길어지고 만다. 해가 저물도록 여기까지 찾아오느라고 몹시 배가 고프셨을 텐데, 차린 반찬이 이렇듯 어설퍼서 어찌해야 옳을는지요? 에고 어머니! 목구멍 넘기기가 껄끄러워서 혹시 보리등겨나 왕겨 밥 아니냐고 흉 볼까봐 적지 않게 난감하여 뭐라고 적당히 둘러 부칠 말이 없습니다. 전주 사투리타령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왕기석 명창이 흥이 나면 곧잘 부르곤 하는 단가인데, 군대에서 ‘열쇠’라는 암구호를 전주 사투리 ‘쇳대’로 응답했다가 당한 일화를 사설로 엮은 것이다.

'쇳대도 긴디. 쇳대도 긴디. 염소가 맴생이요 맴생이가 염소 앙 기냐, 거위가 때까우요 때까우가 거위란다. 서랍은 빼다지요 빼다지가 서랍이니, 쇳대가 열쇠 앙긴 세상도 있드란 말이냐. 쇳대가 짐승이냐 쇳대가 도동놈이냐 쇳대가 인민군이냐 긔 앙기면 때국놈이냐. 말을 쪼까 혀보거라. 깜밥허고 누름밥도 가납 못허는 천하으 싸가지없는 새깽아.(이병천의 전주 사투리타령중)

여기 깜밥하고 눌은밥이 있다. 깜밥은 까맣게 눌어붙은 밥인지 아니면 밑에 깐 깐밥인지 어원은 분명치 않다. 깜밥이든 깐밥이든 그것과 눌은밥은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깜밥이 눌은밥의 방언이라고 적혀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눌은밥은 물을 부어 풀어놓은 음식이고 깜밥은 눌어붙은 걸 그대로 긁어낸 간식거리니, 깜밥은 깜밥이고 눌은밥은 눌은밥이다. 그러니 그걸 하나로 알고 있는 표준어 집안 처녀가 전주에 시집을 온다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시어머니에게는 깜밥을 드렸다가 힝 돌아앉게 만들고, 아이에게는 눌은밥을 내밀었다가 울음보를 터뜨리게 할지도 모른다. 뉘리끼리한 것은 반드시 뉘리끼리하다. 노란 것과는 다르다. 아리까리한 것도 역시 아리까리한 것이다. 인간의 머리는 알거나 모르는 것, 그 둘로 딱 나뉘는 건 아니다. 그 중간의 상태도 없을 수 없다. 그러니 만약 아리까리를 표준어에서 빼버린다면 우리나라 표준어사전을 얇게 만드는 장점은 있을지 몰라도 국민 모두를 바보 취급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라도 사투리 중에는 표준말로 등재돼야만 할 말들이 적지 않다. 아구똥하다고 쏘삭거릴지는 몰라도, 그러지 않았다가는 우리말이 가난을 면치 못한다. 소에게 송아지가 있고, 개에게 강아지가 있듯이 돼지에게도 엄연히 새끼 돼지인 되아지가 있다. 헌데 인정하지 않는다. 다 자란 뒤에 잡아먹기나 하면 됐지 무슨 이름이 따로 필요한가, 그렇게 여기는 걸까?

‘삐지다’란 말이 표준어로 등록됐다고 하기에 빈정 상해서 혼자 삐쳤던 경험이 있다. 손자와 더불어 손주란 단어가 표준어로 올랐을 때도 그랬다. 모르고 막 써서 무지하게 확산된 단어들을 표준어로 거첩시 올리면 안 된다. 대체할 말이 없는 경우, 그런 말이 표준어가 돼야만 한다. 오사네!…. 시방 나는, 표준어 기준을 전주사투리로 욕했다. 아시겠는가?/이병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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