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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지도자의 교만과 인색함


기사 작성:  정학섭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2015.07.19 21:24
북해도 후라노 지역 언덕과 구릉, 모자이크 길의 보리밭과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나무들이 파노라마처럼펼쳐지는 자락에 라벤더 화원이 있다. 흰수염 폭포라는 시라히게노타키 아래 흐르는 에메랄드빛 계곡물과 푸른 연못 아오이케를 감싸고 도는 옅은 안개위로 햇빛이 눈부시다. 그너머 대설산 지대를 지나 삿포로로 돌아오며 후기근대 일본사회와 일본인들이 당면하고 있는 친밀성의 구조변동과 반려동물 애착현상을 역설하던 한북해도대학 사회학자의 말을 떠올려 보기도 한다. 다시 돌아온 우리의 정치사회 현실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지난 7월16일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가 회동하던 장면을 바라본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남은 약 5개월 만이고, 대통령과 김 대표의 단독 회동도 3개월 만이라고 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국회와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 이와 연계한 국민연금 개혁 방향, 국회법 개정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을 두고 심각한 갈등 상황을 빚어왔다. 여기에 새누리당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을 희생양 삼는‘배신의 정치’파동이 돌출하여 국정이 마비될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번 청와대 당청 회동에 서 이들은 능청스럽게 맘껏 웃으며 화기애애 했다니 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정치지도자가 특정 조건과 국면에서 자신의 가치 지향과 정책 방향을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변화가 국리민복을 위한 섬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오히려 바람직한 것일 수도 있다. 국가부도 사태를 맞은 그리스 치프라스 총리의 변신이 그러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투표 이후 더 강력한 개혁안을 제출하자 그리스인들은 그를 배신자로 지칭하고 있다. 프랑스 강성 좌파의원들도 올랑드 대통령을 사회주의의 배신자로 낙인찍고 있다. 규제 철폐, 노동법 간소화 등과 같은 개혁을 밀어붙인다고 좌파 진영에서난리치는 것이다.
유승민 의원도 대통령과 우파 내지 친박세력들로부터 배신자로 내몰리고 있다. 그가 원내대표로 선출된 뒤의 국회 대표연설을 문제삼는 이들이 많다. 소득불평등을 비롯한 사회양극화 해소를 강조하고‘증세없는 복지’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는 것이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처사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국회선진화법의작동으로 여야 관계 운신의 폭이 제한되는 현실에서도 여당 원내대표로서 ‘합의를 위한 합의’에 연연해서는 안되며 ‘원칙과 대들보와 척추’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애초에 정당 선택을 잘못한 것이라고 내치기도 한다.
지난 6월25일 박대통령의‘배신의 정치’론은 측근에게 배신당한 지난 시절 부친의 기억에서 연유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말들도 있다. 어느 한 시절 최고지도자의 품속에 있던 리더가 어떤 계제에 그가 모시던 지도자의 비전과 정책 지지를 철회할 때 그 지도자는 그의 행위를 배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의 비평처럼, 니코스 카잔차키스가‘예수의 마지막 유혹’에서 유다를 배신자 아닌 하나님 뜻의 조력자로 해석했던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 볼 수 있다. 일시적으로 신뢰를 저버린 이같은 행위가 국가와 백성을 위한 선택이라면 그 지도자는 옛 조직원(?)의 배반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 것일까.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논의처럼 우리는 가족주의의 굴레에서 잘 벗어나지 못하여 낮은 단계의 사회자본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믿지 못하고, 오랜 기간 사람과의 접촉에서 차단되던 경험으로 홀로 있음을 편히 여기게 된다. 그리하여 스스로 옳고 깨끗하다는 유아독존에 사로잡혀 타자의 다른 태도와 의견을 배신으로 치부하는 경직된 사유체계에 갇힐 수가 있다. 우리는 좁은 밀실에서 이같은 배신의 트라우마에 자학하고 때로 타자를 향한 공격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범부가 아닌 국가지도자의 처지일 때에는 이러한 성향을 과감히 초극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논어 태백편에“만일 주공의 재주와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가령 교만하고 또 인색하다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없다(如有周公之才之美, 使驕且吝其餘不足觀也已).”는 구절이 나온다. 공자께서 깊이 흠모하고 존경하던 주공이라 할지라도 그가 지도자로서 교만하고 인색하다면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강조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만큼 지도자는 백성이나 참모들에게 관대하고 자기 허물 또한 스스로 성찰하여 쇄신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토록 상처입은 대통령께서도 이 구절을 되새기며 화이부동(和而不同)하시어 새로운 지평 여시기를 소망해 본다.

새전북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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