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백제녀, 편지를 쓰는 이유

[주부 작가 이정지가 띄우는 편지] <1>백제녀 편지를 쓰는 이유

기사 작성: 이정지 작가 - 2015.10.22 19:50

SNS에는 글 잘 쓰는 사람이 많습니다. 수려하고 재주 있는 글이 많습니다. 쟁쟁한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하찮은 제 글을 당장 접고 싶을 때가 한 두번 아닙니다. 글을 밖에 내놓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부끄럽습니다. 때론 어느 부분만 읽고 그것이 제 모든 모습인 양 단정 짓는 경우가 있기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글을 읽고 받았던 ‘글 빚’에 대한 예의 때문입니다. 페이스북 친구인 두 분 교수님의 글을 통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첫째, 영호남 성리학자인 이황과 기대승은 13년간 13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이황은 기대승보다 스물여섯이나 많지만, 서로 사상을 이해하며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신라인과 결혼한 제 편지가 어떤 식으로든 영호남의 다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소망합니다.

둘째, 고흐에게는 단 한 명의 친구인 동생 테오가 있었습니다. 동생 테오는 형을 끝까지 믿고 지지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받아주는 테오 같은 동생이 필요합니다. 고흐는 신뢰하는 동생에게 모든 것을 담아 진실하게 편지를 썼고 재능을 미술작품에 쏟았습니다. 동생과 편지는 그의 작품 세계를 열어주는 통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편지가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저를 살리는 글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럼 제가 왜 `백제녀'란 이름으로 편지를 쓸까요? 결혼 초, 대통령 선거 즈음에 시댁인 대구에 갔습니다. 식사 도중 "김대중은 빨갱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빨갱이가 어찌 대통령 후보까지 되었을까요?”라는 말만 남겼지만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모임에 갔는데, 어느 분이 '전라디언'이란 말을 아무 생각 없이 썼습니다. 놀랐습니다. 분노했지만 참고 경청했습니다. 자신이 겪은 몇몇 사건을 놓고 싸잡아 이야기했습니다. 지난해 또다른 식사자리에서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전라도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요. 그렇죠? 이래저래, 사기꾼도 전라도에서 가장 많이 나오잖아요. 참 이상해요. 전라도 사람들.”

부산이 고향인 다른 분은 머쓱했는지 “이정지 샘만 전주분이죠?”라고 했습니다. “네. 그런가요”라며 웃으며 대답했지만 분노했습니다. 학력 차별보다 심한 지역 차별이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전남 사람도 있었고, 전라도 남편을 둔 사람도 세 명이나 있었지만 누구도 자신이 전라도와 관련됐음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한국인이나 동양인이 아닌, '지구인'이 되길 소망합니다. 제가 지극히 좁은 의미인 '백제녀'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이유는 호남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라인 남편을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남편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의 음식과 문화를 익혔듯이 제 글을 읽는 분들도 호남에 대한 그릇된 편견에서 벗어나길 소망합니다. 문화와 예술의 고장이라는 백제에 대해 저는 잘 모릅니다. 백제 유적지는 쓸쓸합니다. 제가 보고 느낀 것을 편지 형식을 빌어 담담하게 남길 생각입니다. 그리고 백제에 대해, 호남에 대해 배우겠습니다.

“백제 문화를 살리고 일으켜야 대한민국이 살텐데...” 신라인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의 소박한 일상의 편지가 전라도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다면 부끄럽더라도 이 편지는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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