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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시사적인 사건 소재 즐긴 그 시절 멋쟁이 오빠 '권일송'


기사 작성:  양규창 시인·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 2016.01.04 17:43
▲ 반딧불 형상하는 시비
병신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라고 해서 특별한 감흥은 없다. 삶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바뀌지 않는 안팎의 상황들에 지치고 꺽이고 상하고 정서는 점점 메말라가고 황폐해져간다. 총선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선거구 획정도 못하고 있다. 졸속 합의한 위안부 문제로 국민의 분노가 점점 가열되고 있다. 요즘 세상은 우리를 술 마시게 한다. 50여 년 전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는 시를 발표한 순창출신의 권일송 시인이 있다. 권일송(權逸松.1933-1995)은 순창 출생의 시인, 언론인이다. 전남대 공대를 졸업하고, 1957년 목포 영흥고 교사 시절 한국일보에 <불멸의 흉장>, 동아일보에 <강변 이야기>가 신춘문예에 시 부문에 당선되어 화려한 등단을 했다. 문태고 교사, 전남매일,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한국문협 시분과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회장,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권일송 시인은 동시대의 시인들이 대부분 전통적이거나 자연친화적인 경향으로 기울었음에 비해, 현실적이고 시사적인 사건들에서 소재를 즐겨 취하여 그것을 풍자, 비판하는 주지적 시풍을 견지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 떠오르는 億劫(억겁)의 햇빛 / 지는 노을의 징검다리 위에서 /暗鬱(암울)을 위한 되풀이 / 그 중천의 旗(기)여 // 어슬어슬 저무는 / 애월의 편지와 현관에 서면 /열일곱 소녀의 더운 눈길 같은 / 방황하는 세월의 종이 울린다 /아직도 내 안에 집을 짓지 않은 채 / 허구한 날의 곤한 날개와 파도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 불빛도 없이 치닫는 북향의 열차 안에서 /파아랗게 파아랗게 야윈 감량 /토요일의 밤별과 고풍스런 轉落(전락)의 창에 기대어 /당신은 결코 죽음도 두려움도 모르는 /어느 巨木(거목)의 슬픔으로 서 있을 것인가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 눈을 열면 심상치 않은 유린의 바람 /그것은 외진 벼랑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는 살의와 이방의 꽃 /짐승들의 머리 푼 시신이 /차양에 널린 텅 빈 광야의 한 때 /허물어진 금관의 둘레만큼이나 /아아라이 저무는 寂(숙)한 노을 /무더운 원색의 여름날 /땀 흘린 도주의 한길 가에는 /처형을 기다리는 문명한 달과 살롱 /써늘히 식어가는 이미/隆隆(융성)했던 나의 江河(강하)와...,//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지나치는 길목나날의 軌跡(궤적) 앞에서/ 우리는 모두 함께 열병을 앓는 사람/ 폭죽 터지는 혁명의 석간위에/ 노상 수난의 손이 고르는 퇴색한 활자들/ 誤診(오진)된 세대와 화형 당한 청춘을 위한 /나는 애인과 집을 잃고 /돌아오지 않은 편지와 함께 /장미의 오월을 死産(사산)시키고 나면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일부)>'

   
 
   
 
1960년 전남문학상, 1983년 소청문학상, 1985년 현대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1966년 첫 시집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를 간행한 이후, <도시의 화전민>(1969), <바다의 여자>(1982), <바람과 눈물 사이>(1987) 등의 시집과 평론집 시정신과 산문정신(1975), 우리 시와 시대 상황(1986) ,한국 현대시의 이해(1981), 윤동주 평전(1984) 등을 발간했다. 수필집집 <한해지에서 온 편지,1973>, <생.왜 사랑이어야 하는,1987> 등이 있다. 그는 살다간 세월 남겨진 일화가 많다. 서울 청진동과 무교동에서 <흑산도>라는 홍어 횟집을 차렸던 일, 탱고의 명수로 여성문인들에게 멋쟁이 오빠로 통했다.

   
 
   
 
그러나 일찍이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고 고백했던 그는 끝내 술을 이기지 못해 간경화로 세상을 서둘러 떠나고 만다. 2003년 11월 15일 순창군 ‘귀래정(歸來亭)’ 공원 팔각정 옆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는 성신여대 미술과 장윤우 교수의 설계로 반딧불이 형상으로 조각된 화강석 위에 권 시인의 시 ‘반딧불’의 일부가 이근배 시인의 글씨로 조각되어 있다. 이 공원에서 가까운 가잠마을에 권 시인의 생가가 있다. '하늘에게 가는 목숨이야 /어디 날개 달린 새 뿐이랴 /모시 수건으로 정갈히 닦아낸/ 쟁반 위의 밤하늘엔/ 반딧불로 어지러운/ 떠돌이의 고향이 보인다<반딧불(일부)>'/양규창(시인. 전라북도문학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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