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스크린에 담긴 우리 동네…전주는 언제나 '레디-고'

[전주 한옥마을 다시보기] <27> 한옥마을, 살아있는 오픈세트장

기사 작성: 글 = 이종근·사진 = 오세림 기자 - 2016.05.04 18:47

▲ 영화 `약속' 중 전동성당에서 상두와 희주가 하객과 주례도 없이 단 둘만의 결혼식을 치른 장면이 촬영된 곳.

전주의 구석구석은 영화의 숨결이 흐르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너른 전주향교 마당에도, 노송동의 좁은 골목에도, 잔 물결이 일렁이는 전주천에 앞에도 익숙 장면들이 펼쳐지면서 사람의 영화(榮華)를 기약하는 영화(映畵) 속 장면들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습니다. 일년이면 줄잡아 평균 5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됩니다. 그래서 운이 억세게 좋으면 당신이 배우로 캐스팅될 수도 있습니다.

△전주는 왜 365일 ‘레디-고’인가

한국영화계가 6.25 전쟁으로 인해 큰 혼란에 빠져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인 끝난 직후에도 영화인들이 영화의 키를 놓고 혼란속에 소용돌이 칠 때 영화 제작의 기운을 태동시킨 문화 예술의 도시가 바로 전주입니다. 전주에서 1951년 이만홍 감독의 ‘애정산맥’ 1953년과 1955년 이강천 감독의 ‘아리랑’ 과 ‘피아골’ 등이 각각 촬영되고 발표됐습니다. 또 전주는 1956년 윤인자 김진규 출연 ‘옥단춘’이, 그리고 한국 최초 천연색 영화인 ‘선화공주’가 최성관 씨가 감독을 맡고 김희갑 김승호 주선태 배우등이 출연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도립극장(전주극장) 골목엔 우인다방이 있었습니다. 6.25 직후 연예인이 가장 많이 모인 다방으로, 변기종, 김승호, 이예춘, 허장강, 김진규, 주선태, 황해, 박노식, 전택이, 노경희, 도금봉, 김희갑, 현인, 김정구 등이 들락날락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1951년 경찰 계몽 영화인 ‘애정산맥’, 1953년에는 딘소장이 부대와 이탈되고 포로가 되는 영화 ‘아리랑’이, 1955년에 명작영화 ‘피아골’ 이 완성됩니다. 매년 봄이면 영화의거리는 화려하게 불을 밝힌 루미나리에가 거리를 가득 채운 가운데 노란 점퍼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의 물결과 함께 일상의 편린 같은 작은 단편 영화들이 상영되는가 하면 거리 곳곳마다 말랑말랑한 음악들을 통해 봄의 어원인 스프링이 전주로부터 비롯됐음을 강조합니다. 이제 ‘봄’ 이라는 말은 사물을 보라는 의미이며, 전주에서 영화를 보라는 의미가 아닐런지요.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부터 작은 골목길까지 전주는 영화 또는 드라마 촬영지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레디고’.

△전동성당

지금, 저는 전동성당 앞에 서 있습니다. 낡은 빨강 회색 벽돌이 주는 클래식한 모습은 상념에 젖게 하고 비잔틴풍에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아름다운 건물은 잠시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 온 착각이 들게 합니다. 성당 내부도 명동성당처럼 의자와 창문 하나하나에 우아함과 고풍스러움으로 넘쳐납니다.

“딱 하루만 같이 있자”는 희주(전도연)의 말! 추억이 물들수록 마음에 멍울지는 아리함을 느끼며 이를 물리치는 상두(박신양). 영화 ‘약속’에서 자신을 대신해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은 기택(정진영)을 구하기 위해 자수하러 가기 전 상두와 희주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희주는 상두의 손을 잡고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달려가는데, 그곳이 바로 전주 전동성당입니다. 영화 자체도 유명하지만 특히 약속하면 백미로 꼽히는 명장면이 바로 전동성당에서 치룬 상두와 희주의 하객도 주례도 없는 단 둘만의, 도저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던 그 유명한 결혼식 장면이 촬영된 곳입니다. 특히 이 곳은 밤에 오면 그 매력이 더해집니다. 전동성당은 야밤에 송강호가 등을 들고 김혜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은 물론 <대한민국 헌법 제1조>가 촬영되기도 했습니다.

△전주향교

일본 여성 한류팬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한국 드라마 촬영지로 선정된 '전주향교'. KBS 2TV를 통해 방송된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의 주요 배경인 성균관이 전주향교였던 점도 이같은 인기 비결의 하나입니다. 당시 KBS 드라마팀이 전주향교가 전국 339개 향교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향교로 꼽혀, 드라마 촬영지로 낙점했으며, '성균관 스캔들'은 정은궐 작가의 베스트셀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영화 'YMCA 야구단'의 촬영지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YMCA 간사였던 질레트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 야구가 도입되던 시기를 배경으로 유쾌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강동원, 김윤석, 임수정 주연의 영화 <전우치>의 중반부에도 잠시 등장했으며, <이영숙사진관> 등 영화와 드라마의 단골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 경기전

태조 이성계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경기전은 <용의 눈물> 등 사극이 촬영됐니다. 지난 1998년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촬영한데 이어 KBS특별기획드라마 ‘명성황후’ 등이 촬영됐습니다. 영화 <광해>, 드라마 <바람의 화원> 등과 영화 <황산벌>, <여우비> 등도 이곳의 씬이 보이는 등 경기전이 드라마의 촬영지로 각광받는 것은 수려한 자연환경과 양호한 보존상태는 물론이거니와, 전주시청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경기전의 문화재적·역사적 가치 또한 재조명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용의 눈물' ‘명성황후’`광해' 등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 경기전

△여명카메라박물관

여명카메라박물관은 MBC에서 일요일 아침 9시에 방영된 26부작(2004년 7월 4일-2005년 1월 16일) 아침 드라마 ‘단팥빵(이재동 PD가 연출을, 이숙진 작가가 극본을 맡았으며, 원작은 한수영 작가의 동명 소설인 단팥빵)’을 촬영한 곳입니다. 극중 한가란과 김선희가 사는 온고을소리청은 지금은 카메라 박물관으로 변모, 다양한 카메라들이 전시되면서 많은 기획 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 같으면 영화 촬영지라고 해서 대형 벽화를 그려 놓거나 주연 배우들의 초상 사진을 설치해 홍보를 하는데, 전주는 오히려 그게 너무 많아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전주는 온 동네가 영화의 현장, 시네마천국인 셈입니다. 옛 흔적이 많이 남아 있어 어디에 카메라를 들이대도 예사스럽지 않은 그림이 되는 전주는 언제나 ‘레디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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