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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예술 자체 고민하는 예술인으로"

[새전북이 만난 사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장원 김도현명창

기사 작성:  글=김혜지·사진=오세림 기자 - 2016.06.07 17:27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소리의 고장 전주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전국의 국악인들의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가장 큰 무대다. ‘국악의 등용문’이라 불릴 만큼 대회의 장원에 뽑히면 국악계에서 인정받는 것은 물론 국민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기회다. 올해 전주대사습놀이도 어김없이 각지에 있는 국악인들이 몰려들었다. 지금까지 42회째 이어오고 있는 축제로 이번 대회에서 11년 만에 남성이 장원으로 뽑혔다. 주인공 김도현씨. 어려서부터 소리를 꾸준히 해온 것아 아닌, 기악인 아쟁을 하다가 소리에 전념하게 된 케이스다. 그런 그가 판소리로 대회에 처음 출전해 장원에 뽑혔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10월 공연에 맹연습 중인 그를 공연장에서 만났다. 대사습 장원인 만큼 위엄 있고 근엄한 모습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김씨는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여느 때의 젊은 청년처럼 활기 넘쳤다. 인터뷰 또한 진솔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오히려 더 배려하는 그였다.



△ 장원을 차지한 것이 실감이 나는지. 다시 한 번 소감 한마디 부탁한다.

상을 막 탔을 때도 그렇고 시간이 좀 지난 지금도 그렇고 얼떨떨하다. 일단 한 번에 장원이 됐다는 것. 그게 가장 기쁘다. 그동안 많은 대회에 나가보고 상도 많이 타봤지만 이번처럼 떨리고 긴장된 무대는 처음이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가족, 친척, 주변 지인들, 친구들이 저한테 건 기대도 많았고 스스로도 잘해야겠다는 압박이 많이 컸던 것 같다. 사실 상을 탈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저 내 실력을 점검해보자, 어느 정도 발전했는가 알아보기 위해서 참가했다. 예선에서 정말 많이 떨었고 본선까지 올라가게 되면서도 장원에 대한 욕심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본선에서 저 혼자 남자였기 때문에 기대하기 힘들었다. 소리는 기본적으로 여성이 훨씬 잘 뽑아내고 훨씬 섬세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장 높은 점수를 받고 장원으로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그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 기악부터 배우고 소리를 시작했다는데

어떤 것부터 먼저 시작하고 배웠다고 하기 힘들다. 교육은 환경이 99% 차지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버지, 어머니 모두 국악인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놀거리가 국악 관련된 악기들이었고 듣는 노래가 판소리였다. 이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익혀갔다. 항상 보고 듣는 것이어서 아쟁을 배우면서 소리도 했고, 또 이를 하면서 악기도 다뤘다. 그런데 솔직히 막 즐기거나 좋아하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국악을 하는 것도 싫었고 가끔 학교에 찾아오면 피하기도 하고 그랬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모르겠지만 15, 16살 즈음 무렵 자부심도 갖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면서 본격적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를 더 집중적으로 했던 것도 아니었다. 과거의 하루 일과를 돌이켜보면 12시까지 악기를 다루고 1시에는 소리를 하고, 3시에 장단을치고 다시 5시에는 가야금하고. 이같은 생활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아쟁으로 대회 준비를 하면서도 소리는 꾸준히 하고 있었다.



△ 부모가 명인 명창이다. 그에 따른 고충도 있을 텐데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시다. 연습이 안 되어있으면 다시 연습해오라고 내보내셨다. 뭐가 틀렸는지 알려주시기보다 혼자 하루 종일 연습해서 스스로 깨닫게 했다. 반면 어머니는 굉장히 섬세하게 가르쳐주셨다.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알려주셨다. 두 분이 다른 스타일이어서 저한테는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 부모가 학원을 운영했었는데,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학원생들과 함께 산 속에 들어갔다. 한 달 동안 집중적으로 소리를 배우고 연습하는 기간이다. 아버지 제자들과 어머니 제자들이 함께 가서 서로 바꿔서 가르치기도 하고 저도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그랬다. 단기간에 두 분의 다른 교육법을 통해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솔직히 그 시간이 참 싫었다. 그 기간에 꼭 제 생일이 껴있어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산 속에서 나오면 연습도 잘 안하고 많이 놀러 다녔던 것 같다.(웃음)



△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나.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다. 친척들, 아내도 그렇고 처갓집도 국악 집안이다. 주변이 모두 국악 관련 일을 한다. 특히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는 판소리계에서도 가장 큰 대회여서 모든 관심이 집중된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오는 압박감, 부담감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응원밖에 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도 한계가 있었다. 한번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허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일어나지도 못하고 구부리지도 못해서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었지만 빨리 낫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라남도국악원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갑자기 집에 찾아왔다. 대회를 앞두고 응원을 해주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그 다음날 허리가 완전히 다 나았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풀리고 몸도 다 원상복귀됐다. 그때를 계기로 다시 한 번 사람, 인연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다.



△ 그렇다면 본인의 가치관도 ‘사람’과 연관이 있는 건가.

혼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함께 해야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경쟁심도 많이 느끼고 욕심도 많이 생겨나 대회 하나를 참가해도 상을 꼭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여유도 많이 생겼고 다 함께 같이 잘해보자는 마음이 더 크다. 인연이 되는 사람들을 항상 소중히 여기고 더 잘하려고 노력한다.”



△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가

전북도립국악원에 들어오자마자 했던 창극 ‘의병대장 천둥소리’라는 작품이다. 주연인 이석용역을 맡았던 바, 지금까지 했던 공연 중에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기면 연기, 소리면 소리, 춤이면 춤 모든 것을 다 아울러서 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만큼 개인적으로 도움도 많이 되었고 일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스스로 마음가짐도 많이 달라졌고 더 노력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남원도립국악원에서 아내와 함께 한 춘향전이다. 이도령 역과 성춘향 역을 실제 부부가 함께 맡아서 해서 화제도 많이 됐었다.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고 관객들에게도 감정이 잘 전달돼 호응이 컸던 작품이었다.



△ 뱃속의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 자녀에게도 국악을 시키고 싶은가.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이번에 상 받아서 기쁜 것 중에 하나가 우리 복덩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됐다는 것이다. 솔직히 국악이 힘든 길이기 때문에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런데 노래를 하고 음악 소리가 들리면 흥이 많아서 뱃속에서 반응을 보인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제 아이도 벌써 끼가 보이긴 하는데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하면 시켜야 하지 않겠나. 차라리 가수를 시키고 싶은데 제2세도 태어난 환경이 나랑 똑같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소리를 하시니 아무래도 이쪽 영향을 당연히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예비 국악인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일단 하기 시작했으면 정말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안타깝기도 하고 앞으로 힘든 일도 많겠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또 길이 열린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방황을 많이 했던 것이 후회되는 부분도 있다. 국악을 중단하거나 아예 손을 놓은 적은 없지만 꾸준히 집중적으로 빠져서 했던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꼭 하는 말은 할거면 제대로 빠져서 하라는 것이다. 어중간하게 발만 담그고 하는 시늉만 하는 것은 하나마나한 일이다.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 스승에게 제대로 교육받고 점검 받으면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 국악인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 우리 국악의 미래는 어떻게 보는가

아직은 많이 아쉽지만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나라로 공연을 하러 가면 그 나라 예술인들에 대한 대우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게 많이 느껴졌다. 요즘 시대가 시대인 만큼 글로벌화 되고 정보도 많이 얻고 있다 보니 볼거리, 즐길 거리가 참 많다. 그래서 국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이해는 간다. 긍정적인 것은 그래도 국악을 즐기려는 연령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것, 공연을 하면 젊은 사람들도 많이 눈에 띤다는 것이다. 국악이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고 구성되는 부분이 영향을 많이 미친 것 같다.”



△ 퓨전국악처럼 다른 요소가 뒤섞이는 것은 어떤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다른 요소가 가미된다고 해도 기본적인 틀과 전통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과거와 현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있나 싶다. 판소리도 현대음악이라면 현대음악이다. 단지 시대에 흐름에 따라서 표현 방식이 달라진 것이고 대중들이 좋게 받아들이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옛날’ 이런 단어 자체가 대중들에게 선입견을 주고 오히려 받아들이는 데 선을 긋도록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은

“소리 잘하는 판소리꾼 김도현보다 전통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전통예술 자체에 항상 고민하는 예술인으로 남고 싶다. 대사습놀이라는 긴 여정이 끝나고 상도 탔지만 대회 전과 후는 똑같다. 난 여전히 작품을 위해 연습을 하고 있고, 그냥 소리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계속 국악을 해 나가면서 중간에 내 실력을 점검한 시간이었지, 상을 받았다고 해서 출세를 바라거나 유명세를 떨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걸어 나가는 것이 내가 바로 할 일이다. 전북도립국악원에서 일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마도 전주에 계속 머물면서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아뵐 것 같다.”



국악인 김도현은

1981년 7월 4일 서울출생으로 우석대학교 국악과 졸업했다. 2012년~2015 국립민속국악원 준단원을 역임하고 현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악 대회의 꽃인 경주신라문화재에서 기악부문 아쟁으로 장원에 선정된 바 있으며 2010년 KBS 국악대경연 판소리 장원, 2011년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 대회 판소리 일반부 대상 등 다수의 수상경력을 지니고 있다.

작품으로는 2013년 국립민속국악원 창극 '춘향전' 이몽룡역, 2015년 전북도립국악원 정기공연 창작창극 '천둥소리' 이석용 역, 2015~16년 전북도립국악원 기획공연 창극 이화우 흩날릴제 유희경 역 등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오는 10월 전북도립국악원 30주년 기념 공연인 '이성계, 해를 쏘다'에서 이방원 역을 맡아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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