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는 작품 외부에 있다는 것 성찰하게 해줘
실체는 작품 외부에 있다는 것 성찰하게 해줘
  • 박제원(전주 완산고 사회교사)
  • 승인 2017.03.23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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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인문학을 엿보다] ■ 진보-시뮬라크르-교육

선아: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씨의 대통령직 파면으로 제 19대 대통령 선거가 5월 9일이 유력하다고 합니다. 제가 상상을 해봤는데요. J일보, D일보를 비롯한 여러 보수 신문들은 선거일 다음날 이런 사설을 쓸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10일 국정을 농단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고 관련자들도 처벌을 받고 있다. 이제 ○○○씨가 새 대통령이 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이기보다 우연한 탈선, 스캔들이었다. 오히려 그 사건의 처리과정에서 국민의 위대한 민주주의적 역량을 확인했으며 민주주의가 여전히 건재함을 입증했다. 이제 국민들은 국정에 대한 책임을 새 대통령에게 맡기고 촛불시위를 자제하며 각자의 일터에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다.”

채하: 장 보드리아르(Jean Baudrillard)는 이 사설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판했을 것이다. 해방 이후 지배적인 보수 카르텔인 관료-재벌-보수언론에 의해 일상적으로 부정부패, 권력남용, 인권침해, 부정의한 분배가 있었는데도 은폐하기 위한 고도의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도 가상실재에 불과하다고 본 까닭이다.

선아: 시뮬라시옹(Simulation), 시뮬라크르(simulacre),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어요. 그 의미가 무엇이에요?
채하: 팝 아트(Pop Art)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화가 엔디 워홀의 작품 <100개의 마릴린 초상화>를 통해 설명해줄게. 팝아트는 20세기 들어와서 미술이 너무 어려워지자 관객들을 미술로 유인하고 작가들이 대중과 함께 즐기고 싶은 욕망을 표현한 예술형식이란다. 순수미술과 상업미술, 고급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라고 할 수 있지.

선아: 저 같은 문외한에게는 아주 유익한 시도였군요. 가끔 남자친구와 함께 미술관에 가서 ‘입체파’나 ‘초현실주의’ 미술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골치 아플 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작품과 장 보드리아르는 무슨 관계가 있죠?

채하: 장 보드리아르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에서 밝힌 그 이전의 사회와 구분되는 현대사회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그는 현대사회는 ‘생산의 시대’가 아니라 ‘소비의 시대’라고 보았단다. 19세기 근대사회는 노동과 생산에 의해 발전되는 ‘생산의 시대’였지만, 현대사회는 과잉생산의 시대로 소비가 생산과 자본주의를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본 것이다. 즉 현대사회는 소비에 의해 확장되며 발전하는 ‘소비사회’라고 할 수 있단다.

선아: 마르크스는 그가 살았던 시대적 한계 속에서 노동과 생산을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소비의 측면을 무시했는데 소비에 주목하여 현대사회를 분석했다는 점에서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군요. 생뚱맞기는 하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인데요. 세계적인 프랑스 사상가들은 이단적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나 봐요. 장 보드리아르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경제적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을 설명한 ‘조절이론’의 대가였던 브와에, 아그리파, 리피에츠 등은 정통적 마르크스주의가 제시한 “과잉생산에 의한 파국”이라는 도식을 거부하거든요.

채하: 맞다. 그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내에서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간과했다고 보거든. 더구나 같은 자본주의라도 각국별로 크게 차이가 날 뿐더러 시대를 따라 전반적인 모습도 다르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어. 가령 리피에츠 등이 20세기 초반이후 포디즘(Fordism)이 자본주의를 지배하다가 정보기술혁명, 노사대타협에 따라 포스트 포디즘(post-Fordism)으로 이행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란다. 깊은 설명을 하지 않겠지만 접합(configuration)이 달라지면 이론이 달라진다고 본 것이지.

선아야! 주목할 점이 있단다. 작년에 알파고 사건 이후에 미래역량을 기른다는 명목으로 전북교육청의 ‘참학력’ 같은 새로운 학력이 유행하는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란다. 본질적으로 이미 서구에서는 1980년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1990년대에 정착한 포스트 포디즘에 부응하거나 개량화한 교육제도에 불과하단다. 단지 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질적으로 비약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 필요성을 강화시켰을 뿐이지. 내 말은 마치 새로운 것을 발명하거나 도입한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접근하거나 그 본질을 왜곡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잘못된 해석을 권력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란다. 그런 방식의 접근은 보드리아식으로 말하면 ‘기호가 지배하는 출구 없는 사회’로 가는 것으로 비관과 냉소만을 가져온다는 것이지.

선아: 정말 미치겠군요... 작년에 교육청에서 공문과 집합연수를 통해 ‘참 학력’은 이전과 다른 새로운 학력으로 지나친 경쟁과 강제라는 교육적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인간다운 사회를 지향하는 전인격적 인간을 양성할 수 있다고 강변했는데 새 것이 아니라고요? 그 내용은 매우 추상적이었고 교수학습방법론으로도 애매모호한 것들이 많았어요. 더구나 작년부터 전북교육청은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참 학력과 관련된 ‘성장평가제’를 강제했는데 근처에 있는 진안초등학교 선생님은 제도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적용과정에 대해 감(感)을 잡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까 성찰적 사고나 긴밀한 분석 없이 정책과 지시를 강행할 경우에 의도치 않았지만 진안교육을 ‘출구 없는 그물망’으로 몰 수 있으며, 새 제도는 신중하게 적용해야 하고, 새로움이 더 나쁜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채하: 보드리아르를 통해 그 같은 현상을 성찰해 보도록 하자. 상품의 가치는 ‘사용가치’, ‘교환가치’, ‘기호가치’가 있지. 사용가치는 실재적 유용성이고, 교환가치는 노동량에 의해서 정해지는 가격이며, 기호 가치는 상품이 자신의 고유한 취향에 맞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소스타인 베블렌이 지적한 ‘과시 소비적 가치’나 피에르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적 가치’와 유사하단다. 몇 년 전에 청소년들 사이에 노스페이스 페딩이 유행했는데 사용가치는 방한(防寒)이며, 교환가치는 노스페이스를 생산하는 사회적 평균노동시간의 화폐가격이며. 기호가치는 노스페이스가 개인적 취향을 만족하며 유행이라는 사회적 코드에 맞출 수 있는 실질적 지위나 권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아: “승용차는 승용차가 아니다. 승용차는 더 이상 사람을 태워 공간을 이동하는 사용가치적인 기계가 아니라 소유자의 부를 나타내는 기호이다. 즉 소비사회에서 주목받는 가치는 사용가치나 교환가치이기 보다 기호 가치이다. 그렇다면 상품사회에서 기호가치의 중요성은 사건, 육체, 섹스, 자연, 시간, 지위, 정책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군요.

채하: 그렇다고 봐야지. 사람들은 상품사회에서 기호를 욕망하며 기호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미지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진다고 봐야겠지. 나아가 기호체계는 현실을 구성하고 창조하기도 한단다.

선아: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의 장들이 공공선을 위해서라고 말하면서 정책의 내용보다는 귀와 눈에 솔깃한 화사한 미사여구로 국민을 속이고 있으며 미술, 클래식, 신문, 광고, 지위, 의료분야에서 알맹이도 없이 개성과 자율성만을 강조하며 차이를 드러내려는 까닭에 대해 짐작할 수 있겠어요. 바로 기호 때문이군요. 기호의 이미지와 상징을 통해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사회를 보여줌으로써 그것들을 소비하도록 유도하고 기호생산자의 권력(hegemony)을 유지하려는 것이군요. 정말 교묘한 상술이자 지배전략이라고 할 수 있군요.

채하: 이러한 전략은 보수적 지배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란다.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진보적 무늬를 띠고 있어도 속내가 가짜인 진보들도 마찬가지란다. 결국 그 무늬가 보수든, 진보든 스스로를 성찰할 수 없는 쇼윈도 앞에서 이미지(기호)의 망령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면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단다.

선아: 소비사회와 기호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채하: 시뮬라크르는 프랑스어로 ‘흉내’라는 뜻인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든 복제물이란다. 즉 가상실재이다. 시뮬라시옹은 그 과정으로 즉 실재가 가상실재인 시뮬라크르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현대사회는 시뮬라시옹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시뮬라크르들의 세계란다. 시뮬라크르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며 진짜 실재처럼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런 것들이 쏟아져 실재와 가상실재를 구분하기 힘들며 나아가 가상실재가 진짜 실재를 지배하고 대체하는 사회가 바로 현대사회란다. 더 나아가 시뮬라크르들은 더 이상 복제할 실재가 없어졌기에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느낌이 나는 것들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하이퍼리얼리티(극실재)란다. 더 이상 원본은 없고 어떤 의미에서는 원본과 모사물의 구별도 없는 것이지.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가짜인 가상실재가 오히려 우리의 실재적인 일상을 규제하는 것이지. 즉 비판적 사고를 하지 않고 무조건 시뮬라크르를 실재로 추종한다는 것이지. 가령 선아가 교사니까 ‘과정중심평가’ 정책을 들어볼까? 전북교육청이 과정중심평가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일제고사를 금지하는 것은 일종의 시뮬라시옹이며 그렇게 만들어진 복제품인 ‘모든 일제고사를 배제한 과정 중심평가’는 시뮬라크르이지. 과정중심평가의 원본과 본질은 일제고사가 아니라 객관식 선다형을 지양하는 것인데 일제고사로 모사를 함으로써 사실성을 거짓으로 재현하는 것이지. 더구나 일제 평가의 문제점만을 선전하고 정책적으로 강제함으로써 과정중심 평가의 본질을 은폐하고 우리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현실에서 살아간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하이퍼 리얼리티(극실재)를 만들어내고 살아가도록 한단다. 즉 과정중심평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교사들에게 가치 있는 것을 버리게 하고 가치 없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도록 조작한단다.
선아: 장 보드리아르가 <100개의 마릴린 초상화> 작품 이외에도 엔디 워 홀의 다른 작품들이 시뮬라크르적 현실을 보여준다고 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채하: 앤디 워 홀은 100개의 마릴린 초상화 뿐 아니라 마이클 잭슨, 재키 오나시스 등의 대중적 스타나 코카콜라 병, 켐벨 스프 통조림, 모나리자 등 일상의 소재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것들이 실재를 상실하고 오직 기호적 가치로만 소비되는 시뮬라크르라고 보았기 때문이란다. 가령 기술복제가 일상적인 소비사회에서는 대중적 각광을 받았던 팝가수인 마릴린 마저 무수하게 반복 생산되는 일회용품으로 재현됨으로써 고유한 그녀의 아우라는 지워져버리고 실체로서의 마릴린은 가상의 실체로 왜곡된다고 본 것이란다. 즉 작품의 마릴린은 실체인 마릴린과 다르며,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는 ‘가상의 마릴린((simulacre)에 불과한데 대중들은 작품의 마릴린을 실체라고 믿고 행동하는 것에 대해 대중들에게 실체는 작품의 외부에 있다는 것을 성찰하게 하려는 것이란다.

선아: 오늘 강의가 정말 좋았던 것은 유시민 작가가 강연에서 “민주주의는 국가적 제도지만 그 제도의 수준은 국민을 넘어서 시민의식의 질에 의해서 정해진다.”고 말했는데 그 의미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박제원(전주 완산고 사회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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