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사, 맛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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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17.03.30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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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강원도 식재료

무어를 마이 멕여야지 머…
2005년에 개봉한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동막골’이라는 강원도 산골 마을이다. 동막골은 ‘아이들처럼 막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죽음의 포탄 속에서도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힘을 모아 동막골이라는 아름다운 마을을 지켜낸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영화 시작부터 너른 꽃밭에 나비가 날아다닌다.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히사이시 조(Hisaishi Joe)가 작곡한 ‘Welcome To Dongmakgol’ OST가 흐르면, 바쁘고 시끄러운 현대에서 느긋하며 조용하고 따뜻한 동막골로 훅 빨려 들어간다.
‘동막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동막골이다.
어느 날 조용한 동네에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하나씩 일어난다. 머리에 꽃을 꽂고 다니는 좀 모자라는 아가씨 여일(강혜정)은 낙오한 인민군 일행을 동막골로 안내한다. 그런데 동막골에는 이미 국군 장교 표현철(신하균) 일행과 전투기 추락으로 다친 연합군 닐 스미스 대위가 머물고 있다. 인민군과 국군은 서로의 총구를 맞댄다. 태백산맥 어느 줄기에 자리 잡은 외딴 오지마을 동막골에서는 6‧25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마을 전체는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평생 감자밭, 메밀밭만 일구며 살아온 동막골 주민들에게 총이나 수류탄은 처음 보는 물건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한 민족이 전쟁을 벌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한다. 동막골 사람들의 걱정거리라고는 멧돼지가 감자밭을 파헤친 것과 비가 오는 날 꿀을 못 따는 벌통 속의 벌들뿐이다. 국군과 인민군 병사들의 대치상황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수류탄 하나가 옥수수를 저장해 둔 곳간에 떨어지는 바람에 팝콘이 눈처럼 쏟아지는 사고가 벌어진다. 동막골 주민들의 일 년 먹을거리를 모두 날려버린 셈이다. 그때 촌장이 다가와서 한마디 건넨다.
“자자, 이제 그만하고 뭐를 좀 먹어요.”
그 일을 계기로 국군과 인민군은 서서히 화해의 길로 들어선다. 그들은 동막골 사람들의 골칫거리였던 멧돼지의 습격도 연합공동작전으로 막아낸다. 산골 마을이라 넉넉하지는 않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유심히 보아 왔던 인민군 장교 리수화(정재영)가 촌장에게 조용히 묻는다.
“뭐 그리니까네,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고 있는 거 같은데, 거 촌장 동무의 위대한 령도력은 비밀이 뭐요?”
맨 상투에 한복차림인 촌장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무어를 마이 멕여야지 머….”

음식은 맛으로만 평가하는 게 아니다
<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동막골의 아름다운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렇다고 모두 강원도에서 촬영한 것은 아니다. 500년 된 정자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동막골 세트장은 강원도 평창, 산길을 훤히 밝혀준다는 메밀꽃밭은 전북 고창, 마을 입구에 길게 놓인 호박 모양 등은 해남 대흥사 산길, 바람 불 때마다 시원한 소리를 내는 대숲은 담양 등 전국에서 대표되는 아름다운 풍경을 하나씩 모아 영화에 예쁘게 담아냈다.
누구라도 기억하며 최고로 꼽는 장면은 바로 옥수수를 저장해 둔 곳간에 수류탄이 떨어져 그 많은 옥수수가 토도독 터지면서 흩어지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팝콘이다. 수많은 팝콘이 하늘로 올라가고 마을 전체에 내리는 장면은 당시에도 명장면으로 손꼽혔다. 역시 영화는 팝콘이다. 팝콘이 빠지면 대형 스크린 영화가 혼자 누워서 보는 싱거운 비디오 영화가 되는 것이다. 접사 촬영한 한 알의 팝콘 이미지에 컴퓨터 그래픽을 덧입혔다지만 마을 전체를 팝콘이 덮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모두 어린아이의 눈처럼 반짝거리고 동막골 아이가 된 기분이다. 순간 극장 안에 고소한 향과 꽃 향이 퍼지는 듯하다.
강원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학습이 필요하다. 강원도 지형, 강원도 사람 그리고 강원도 음식까지 모두 다 말이다. 그래야 강원도를 알 수 있다. 강원도는 다른 지역과 확연히 다르다. 지형을 알아야 그곳에서 나는 옥수수, 감자, 메밀을 알 수 있고, 이로 만들어진 음식을 먹어보면 암하고불(巖下古佛)이라 불리는 강원도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강원도에서 자라 더 맛있고, 강원도 사람을 닮은 옥쌔기, 감재, 메물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식재료이며 땟거리다.
강원도에서는 방금 딴 옥수수의 껍질을 벗기고 큰 가마솥에 담아 물만 붓고 찐다. 다른 지역에서는 감미료를 섞기도 하지만 강원도 옥수수에서는 단맛이 충분히 나기에 이러한 일은 거의 없다. 가마솥에서 푹푹 쪄야 ‘강원도, 강냉이드래요~’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외의 것은 그냥 ‘옥수수’다. 씹으면 감미료의 단맛만 나는 물옥수수다.
강원도에서는 옥수수를 쪄서만 먹는 간식에서 벗어나 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으로도 만들어 먹었다. 올챙이묵이다(올창묵, 올챙묵)이다. 올챙이묵은 불린 옥수수를 맷돌에 여러 차례 곱게 갈고 전분을 모아 묵처럼 쑨다. 국수틀보다는 구멍이 큰 틀에 내리면 뜨거운 묵이 찬물에 떨어지면서 올챙이 모양으로 엉기게 된다. 올챙이묵은 ‘올챙이국수’라고도 부른다. 이름도 모양에서 나온 것이다. 물을 빼고 그릇에 담아 열무김치와 양념장을 올리면 올챙이묵이 완성된다. 올챙이묵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숟가락만으로 떠서 먹을 수 있는 간편한 땟거리 음식이다. 노란 올챙이묵의 모양새를 자세히 보면 이건 묵도 아니고, 국수도 아니다. 그러나 매력적인 음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음식은 만드는 이를 닮는다
감자는 비교적 한랭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강원도는 해발 600m 이상의 고랭지가 거의 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일교차가 커 감자는 강원도에 매우 적합한 작물이다. 같은 감자 품종이어도 강원도에서 자란 감자와 다른 지역에서 자란 감자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프랑스에는 포도 재배에서부터 와인이 만들어지는 자연환경을 의미하는 떼루와(terroir)라는 말이 있다. 와인에만 떼루와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감자에도 최상의 떼루와가 있다. 바로 강원도다.
강원도를 ‘감자골’이라 부르고, 강원도 사람들을 ‘감자바우’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강원도는 역시 감자다. 감자 중에서도 분이 많이 나는 품종으로 알려진 농림이나 두백을 주로 심어왔다. 갓 캔 감자를 삶아내면 가늘게 벌어진 껍질 사이로 하얗게 분이 나 있다. 뜨거운 감자를 들고, 손가락으로 껍질을 살살 벗기고, 호오~ 불어 한입 물면, 숨 가쁘게 알 수 없는 말을 건넨다. “헉헉헉, 허~억, 허~억….” 이게 바로 감자골 감자의 뜨거운 맛이다. 감자 한 알마다 감자바우를 품고 있는 게 틀림없다. 야(野)한 감자골에서 자란 더 야(冶)한 감자다.
다른 지역에서는 감자를 찌거나 튀겨서 간식으로 먹고, 볶아서 반찬으로 먹거나 국으로 끓이는 게 전부지만 강원도는 다르다. 늦가을까지 먹다 남은 감자를 포대에 담아 땅에 묻어둔다. 감자 무덤이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수분이 빠져나간다. 봄에 꺼내어 삶아 먹으면 쫄깃쫄깃한 맛을 볼 수 있다. 말려서 가루로 만들기도 한다. 언감자 가루다. 가루로 언감자국수, 감자옹심이, 감자반대기, 감자붕생이밥, 감자수제비 등을 만든다. 제각각 두껍고도 두꺼운 맛 층을 지녔다.
메밀은 7월 넘어 파종하여 90일 만에 수확할 수 있다. 곳간에서 제일 늦게 나가지만, 제일 먼저 들어오는 작물이다. 메밀은 베고 난 후에도 속이 찬다고 하였다. 따라서 정확한 시기 없이 메밀 농사를 지어도 상관은 없다.
메밀의 루틴 성분은 고혈압, 동맥경화증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구황작물이었지만, 이제는 건강한 식재료로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일찍이 강원도에서는 메밀막국수, 메밀묵밥, 메밀떡, 메밀전, 메밀전병, 메밀죽탕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왔다. ‘음식은 만드는 이를 닮는다.’고 하였다. 모두 강원도 사람들을 닮은 음식들이다. 사치스럽거나, 화려하지도 않다. 자극적인 맛도 아니다. 우리의 혀가 기억할 수도 없다. 부모님으로부터의 유전자적인 요소가 있어야 뜬금없이 생각나고, 찾을 수 있는 맛이다. 강원도 음식은 나름 묵묵한 무채색의 음식 맛을 지니고 있어 시간이 지나 빛이 바래도 같은 맛을 낸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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