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기 일기에 담긴 익산 30년의 생생한 체험
이춘기 일기에 담긴 익산 30년의 생생한 체험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7.10.24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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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이복규 교수는 익산군(현 익산시) 춘포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간 이춘기(1906〜1991)의 30년 일기(1961〜1990)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11월 18일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무형문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편집자 주]

이교수는 이 발표에서, 부인이 발병한 때부터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적은 일기를 읽고 난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하루하루를 금쪽 같이 살다 가신 분의 눈길을 따라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의 세월을 여행하고 나니, 마치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아낸 것만 같았습니다.” 맞다. 일기는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사회 속에서 겪은 일들을 매일 매일 적어 놓은 기록이다. 그 속에는 한 시대를 살아온 개인의 생각과 행동, 느낌과 해석이 고스란히 갈무리되어 있다. 일기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을 총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나 기관의 각종 공식기록과는 구별되며, 과거의 역사적 사건의 현장을 생생히 복원할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자료다. 우리는 일기를 통해, 다 살아보지 않아도 미리 그 경험을 미리 해보면서 감동을 느끼며 교훈을 얻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이춘기의 일기에 담긴 1961-1990년은 5.16이 일어나 경제개발계획이 실천됨으로써 많은 변화가 일어나,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행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일상을 다룬 일기로 그간 몇 건이 알려져 있다. 전북 임실 배경 󰡔창평일기(1969〜1980)󰡕, 경북 김천 배경 󰡔아포일기(1969〜2000)󰡕 등이 그것이다. 농촌 사람들의 일기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창평일기는 지역 토호 즉 지역 유지의 일기이고, 아포일기는 소작인의 일기라서, 소규모의 자작농을 한 이춘기의 일기는 독자성을 지니고 있어 주목된다. 유려한 필치로 적어 내려간 이 일기에 이춘기는 병든 아내가 죽기까지, 당사자와 간호하는 가족의 심리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내가 4개월 여의 투병 끝에, 목련꽃 피던 계절에 세상을 떠나자 찾아온 그리움과 남겨진 아들 양육의 부담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아들들 때문에 서두른 재혼이 실패로 끝나기까지의 과정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노년에 이르러 독거노인이 되어 지내는 어려움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어 노인을 이해하는 데 긴요하다.


30년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세시풍속의 변화상도 흥미롭다. 세배 문화, 정월대보름의 공동체 의례, 여러 교회 연합으로 가졌던 꽃주일(어린이주일)과 성탄절의 새벽송, 만경강 지역에서만 있었던 단오 무렵의 모래찜 풍습 등에 대한 기록이 그것이다, 3․1운동 및 6․25에 대한 상세한 회고담도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다. 역사적 사건 앞에서 개인이 어떻게 관련되었으며 느끼고 반응하며 해석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어 역사를 복원하는 데 긴요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가계부처럼 일기에 수입과 지출 사항을 자세히 적고 있어, 물가의 변동도 알 수 있게 하며(1962년 백미 1가마 1770원, 5:1이었던 1961년 당시 남녀 품삯의 차이, 1969년 8월 택시기본요금 60원 등), 통행금지, 완행열차, 전보와 편지에 의존하던 문화, 물 길어다 먹기, 땔나무 걱정, 양식 걱정을 하던 시절 등 지금은 거의 사라진 모습도 담겨 있다. 그런가 하면 생산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적고 유통업자들만 좋은 일 시키는 유통구조의 문제는 여전하다는 점도 알려준다.
지역 연구의 자료로도 중요하다. 전북 지역의 방언들이 담겨 있다. 찌크린다, 얼짐에, 봉창, 여의살이, 뒷서들이, 생내기 등이 그것이다. 이 지역의 속담도 나온다. 원두 첨지 3년에 문상꾼 떨어진다, 중이 장판에 가서 화나는 이치, 캐놓은 재내가 먹는 재내보다 낫다, 메기가 아가리 크다고 더 먹나? 떼 꿩에 매 놓아서 두리번거린다, 촌닭 관청에 간 것 같다, 오뉴월 보리 단술 변하듯, 천둥에 개 뛰어들듯이,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기, 쥐 소금 먹듯이, 호랑이 새끼 치게 생겼다, 처녀는 총각 구덕, 물 묻은 바가지 깨 들어붙듯 등이다.
그밖에도 이 일기에는 이춘기가 조합장으로 있을 때의 익산원예협동조합의 상황을 비롯해 여타의 정보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 30년(1961〜1990)을 콘텐츠화하는 데 아주 좋은 자료들이라 하겠다. 이춘기의 30년 일기는 학지사에서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라는 제목으로,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어 곧 출판될 예정이다./정리=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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