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근대의 기억을 만나다
목포에서 근대의 기억을 만나다
  • 이종근 기자
  • 승인 2017.10.25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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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마당, 10월 도시기행
전주시 도시재생지원센터와 마당이 공동기획한 10월 도시기행이 목포를 찾아간다.
28일 오전 8시 전주종합경기장 벽계가든 건너편을 출발하는 이번 여정은 과거 슬픔과 기쁨이 무수히 교차했던 혼란스러운 시기를 확인하고 남겨진 공간의 의미와 변화를 도시재생 전문가인 강동진 교수와 함께 되짚어 본다.
목포는 1897년 10월 1일 개항을 기점으로 일본인 선박들로 미어 터졌다. 때문에 일본인 거주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한편 여러 자치기관이 설치됐다. 쌀, 면화 등 미곡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목포는 골목골목 우리 민족의 눈물과 설움이 깊이 서려 있다. 이제 식민 통치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빛바랜 근대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서러움의 시대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조선내화공장>은 1938년에 건립되었다. 지금은 폐공장으로 남아 있지만 내화물 산업사를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시설물들은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목포의 토박이 말로 따뜻한 만이라는 뜻의 <다순구미마을>. 옛 이름이 붙어있는 마을로 개항전 어부들이 살 던 원조 목포마을이다. 아직도 일제 때 지어진 적산가옥 (일본식 가옥)들이 외형이 변형된 채 일부 남아있다.
대사관 유적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구 일본영사관’은 현재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바뀌었다. 목포시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에 지어져 당시 일본이 국력 과시용으로 지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영사관 건물 뒤편에는 숨은 듯 자리한 방공호가 있다. 미군의 공습에 대비해 1944년부터 1945년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을 강제 동원해 파놓은 길이 85m의 동굴로 3개의 문이 있다.
1921년 일본이 우리나라의 토지와 농산물을 착취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 국책 회사 건물이자 일제 식민 지배의 상징인 ‘구 동양척식주식회사’. 현재 <목포근대역사관 2관>으로 <목포근대역사관 1관>과 함께 목포의 근대사와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이외에 1930년대 일본인 가옥이 운치 있는 카페로 거듭난 <구 나상수 가옥>과 전남 최초의 교회인 <목포 양동교회>, 목포 최초의 일본 석조 사찰이었던 <오거리 문화센터>를 함께 둘러본다.
70~90년대 북적였던 목포 선창과 정서를 재현한 <2017 목포항구축제>도 10월 도시답사의 목적지다.
기행 참가자는 선착순 15명을 모집한다. 참가 신청 및 문의는 마당 기획팀(273-4823~4)으로 가능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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