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가 주는 사랑, 그리고 망신
토마토가 주는 사랑, 그리고 망신
  •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17.11.0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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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국가대표-토마토

1988년, 그리고 2018년
1988년은 서울에서 제24회 하계올림픽이 개최된 의미 있는 해다. 30년이 흐른 내년에는 제23회 동계올림픽을 평창에서 개최한다. 2011년, 평창은 세 번의 도전 끝에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평창올림픽은 삼수생이다. 재수에서 멈추지 않고, 삼수까지 해서 얻은 좋은 결과다.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17일간 평창뿐 아니라 강릉, 정선에서도 경기가 열린다. 15개의 종목에 102개의 금메달을 두고 선수와 관객들은 모두 긴장할 준비만 남았다.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여 메달을 따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캐나다 캘거리 동계올림픽 때부터다. 김기훈과 이준호 선수가 (시범종목)쇼트트랙 경기에서 각각 금메달을 걸었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대회까지 금 28, 은 17, 동 10의 성적도 거두었다. 모두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나온 결과다. 혹자는 이 세 경기만 보면 동계올림픽은 다 본 셈이라고 말한다.


여기에 경기 종목을 하나 더 붙이고 싶다. 스키점프다. 북유럽의 언덕이 많은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4년 제1회 프랑스 샤모니 동계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다. 스키를 타고 급경사면을 갖춘 인공 구조물에서 활강한 후 도약대로부터 허공을 날아 착지하는 스키경기의 하나다. 활강, 도약, 비행, 착지로 이어지는 불과 10초 남짓한 짧은 시간에 보는 사람을 숨죽이게 만드는 경기다. 평균 경사도가 35~40°이고, 시속 90Km가 넘는다. 활강과 비행하는 모습이 화려하고 아름다워 ‘스키 경기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선수는 최흥철, 김현기, 최서우다. 모두 무주군 출신이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22년째 국가대표다. 한국 스키점프의 자랑스러운 1세대로 불린다. 그러나 올림픽 메달을 따온 경력은 없다. 내년에는 올림픽에 여섯 번째 도전한다. 재수생, 삼수생도 오래된 말이다. 이제 육수생이다.
처음 스키점프를 할 때는 중고생이었지만 이제는 30대 후반을 지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을 ‘다크호스’로 부르고 있다. 다크호스는 ‘역량은 알 수 없으나, 뜻밖의 결과를 낼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3명의 다크호스는 올림픽 메달 하나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기에 박수받을 만하다. 100일도 남지 않은 동계올림픽을 위해 평창에 마련된 스키점프대에서 오늘도 그들은 점프한다.
2009년에는 이 선수들을 모델로 <국가대표>(Take Off, 2009) 영화가 제작되었다. 전국관객 852만 명이 넘어 스포츠 영화로서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감독은 영화의 흥행보다 우리나라에도 스키점프 대표팀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어서 더 만족스럽다고 했다.

설탕 솔솔 뿌린 토마토
< 국가대표>(Take Off, 2009) 영화는 KBS 아침마당 장면부터 시작한다. 미국으로 입양된 꼬마가 성인이 되어 친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저는 차헌태입니다. 1971년 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8살이 되던 1977년에 여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입양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기억나는 추억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죠.”
“하얀 설탕 뿌린 토마토요. 엄마가 자주 해주셔서 많이 먹었습니다.”
주인공 밥(하정우)은 한국말로 차분하게 말한다. 밥은 주니어 알파인 스키 미국 국가대표였지만, 이젠 대한민국의 국가대표로 뛰게 된다.
단체전을 위해 3명의 선수를 모으는데 선수들이 하나같이 어렵고, 어설프다. 나이트클럽 웨이터, 말썽만 피우는 고깃집 아들, 소년가장까지 예전에 스키를 조금 타봤다는 이유로 모였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각자 이유가 있다. 메달 따면 준다는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기 위해, 군대를 면제받기 위해서다. 스키점프 국가대표지만 모두 스키점프는 처음이다.
선수단을 이끄는 방 코치(성동일)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방 코치는 훈련에 앞에 칠판에 “SKY JUMP”라고 적는다. 그렇다. 코치 역시 스키의 스펠링도 모르는 생소한 경기일 뿐이다.
이들이 뭉치게 된 것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였다. 말 그대로 출전 종목의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것뿐이었다. 이들에게 실력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얌전하게 출전하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키점프 국가대표지만 지원이 있을 리가 없다. 심지어 연습할 경기장도 없고, 장비도 없다. 그러나 나름대로 연습을 한다. 나무에 사람을 매달기도 하고, 승합차 위에 스키점프 자세를 하고 시속 90Km로 달린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다. 역시 결과는 “대한민국 13위 최하위 기록”이다. 그러나 첫 출전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스키점프 경기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남겼다는 이유만으로 당당하게 귀국한다.
밥은 국가대표 선수 차에 올라 팬이 준 선물 보자기를 풀어본다. 설탕 솔솔 뿌려진 토마토다. 친엄마가 자랑스럽게 자란 아들에게 준 선물이다. 밥은 엄마와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다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토마토가 익었다
영화 속 밥과는 달리 실제 공항에서 토마토 세례를 받은 선수들도 있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대회에서 북한 팀은 이탈리아 팀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다. 평균 신장 162cm 선수들이 만든 기적이다. 북한은 아시아팀 최초로 월드컵 8강 진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이야기는 2005년 영국에서 북한 선수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영화 <천리마 축구단>(The Game Of Their Lives, 2002)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반면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탈리아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축구팬들은 어이없는 패에 화가 났다. 아주리 군단(The Azzurri, 이탈리아 대표팀의 애칭)은 밤중에 몰래 귀국했지만, 분노한 팬들은 썩은 토마토를 던져 선수들에게 망신을 줬다. 우리나라에서 가끔 일어나는 달걀 세례와 같은 의미다.
이탈리아인들은 토마토를 ‘사랑의 사과’라는 의미로 ‘포모다모레(pómo d'amore)’라고 부른다. 그러나 축구 경기의 승패 앞에서 사랑 따위는 없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에서는 1966년의 일이 똑같이 재현된다. 이탈리아는 우리나라와 16강전에서 연장 후반전 12분, 안정환의 골든골이 이어져 1:2로 역전패를 당한다. 아주리 군단은 비상이 걸렸다.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트라파토니는 “나는 토마토가 두렵지 않다.”고 발표하였다. 말과는 달리 은근히 토마토 세례가 걱정되었나 보다.
지금까지도 이탈리아 축구선수들에게 “토마토가 익었다.”는 말은 불쾌감을 주는 의미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6, 7월에는 진짜로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간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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