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행복해지고 싶거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그대여, 행복해지고 싶거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 박제원(전주 완산고등학교 사회교사)
  • 승인 2017.11.09 18: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림, 인문학을 엿보다⑩] 앙리 마티스
▲ 마티스 부인의 초상 <1905. 유화>

선아: “정확성이 진실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진정한 화가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장미 한 송이를 그리는 일이다. 장미를 제대로 그리려면 지금껏 그렸던 모든 장미를 잊어야 하는 까닭이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으시나요?

제원: 들어본 적이 있지. 그보다는 선아가 그것을 아는 것이 멋지고 매력적이구나. 프랑스 화가이자 야수파(fauvisme, 野獸派)를 연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말이지.

선아: 겉보기에는 철학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는데 해석을 해주실 수 있나요?

채하: 내 생각으로는 사실과 진실의 관계를 말하지 않을까? 주의할 점이 두 가지 있는데 진실은 '있을 법한 일' 혹은 '있어야 할 일'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해서 반드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문학적으로는 사실과 반대되는 허구도 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

선아: 허구가 진실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진실은 반드시 사실인 줄 알았어요. 놀랍군요. 보충설명을 해주세요.

채하: 문학 이야기를 해 볼까? 문학은 경험적인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고 재창조한다. 더구나 상상의 산물이므로 거기에 나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닌 허구이다. 하지만 문학의 허구는 독자에게 사실처럼 여겨지기도 하지. 가령 디킨스(Charles Dickens)의 소설들은 연재 당시 독자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았는데 독자들은 디킨스 소설의 주인공을 실존 인물로 착각할 정도였고 주인공의 운명을 걱정한 나머지 디킨스에게 그를 불행하게 만들지 말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선아: 그렇게 보면 마티스는 “화가는 사실을 허구적으로 재구성해서라도 어떤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가치 있다.” 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가장 어려운 일은 지금껏 그린 장미가 아니라 다시 장미를 그리는 일이고요.

채하: 그럴듯한 해석이구나... 오늘의 지적 탐색은 ‘앙리 마티스’와 ‘프리드리히 니체(Nietzsche, Friedrich Wilhelm)’ 란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했지만 두 대가(大家)가 지향하려는 가치는 비슷한 점이 있다.

선아: 니체에 대해서 무척 궁금했어요. 니체는 현대철학이나 문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상가잖아요. 과장하면 현대철학은 그의 아류(亞流)라고 불리기도 하죠.

채하: 마티스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볼까? 마티스가 주목받기 전에 대다수의 화가들은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데생, 즉 선이라고 여겼다. 비유적이지만 화가들에게 데생은 이성이었고 색채는 감정이었지. 그가 살았던 20세기 초의 완숙한 근대는 여전히 이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을 갖던 시기였기에 데생을 우대하고 색채를 홀대했다.

선아: 근대를 특징지우는 몇 가지 특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체와 이성의 문제였다고 배웠어요. 근대는 주체, 이성, 진리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채하: 마티스는 이런 관점을 거부했다. 미술에서 색채를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고 데생 대신 색채로 사물을 표현했다. 다만 우리가 사실이자 진실이라고 여긴 대상의 색채를 인정하지 않았다. 가령 나무는 빨간색, 사람의 피부는 파란색, 하늘은 노란색으로 칠했다. 그것도 원색으로 칠했다. 이런 까닭에 야수파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대표작인 <마티스 부인의 초상>에는 이런 점들이 잘 나타나있다.

마티스 부인의 초상 <1905, 유화>

초상화의 모델은 마티스의 부인이었는데 그녀는 크고 화려한 모자를 쓰고, 주황색 벨트가 달린 사치스러운 드레스를 입었다. 물감을 칠한 것이라기보다는 덕지덕지 붙인 것처럼 보였고 얼굴도 살색 대신 녹색, 연보라색, 파란새을 칠했으며 목에는 빨강과 주황을 마치 낙서하듯 색칠했다. 모자 밑으로 보이는 머리카락도 한 쪽은 빨강, 다른 한 쪽은 녹색이다. 더구나 이 초상화는 당시에 여인을 우아하고 감미롭게 묘사하던 다른 초상화와는 다르게 지저분하게 보였다.

채하: 그 뿐만이 아니란다. 평론가들이 미적이라고 평가하는 입체감, 공간적 깊이, 정교한 붓질 등을 무시했고 초상화를 그릴 적에는 대상을 충실하게 묘사해야 한다는 해부학적 지식마저 저버렸다. 조화와 균형, 비례를 존중하고 강조하던 미술의 고귀한 전통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 관객은 물론이고 심지어 당사자인 아내조차도 불쾌하게 여겼다.

선아: 저도 그처럼 아내를 그린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아내는 우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묘사는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사람들도 당연하게 물어봤을 것이에요. ‘부인을 왜 아름답게 그리지 않았나?’라고요.

채하: 물론 물어봤다. 마티스는 그에 대해 ‘나는 작품을 통해서 아름다운 부인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선아: 독특한 표현인데요. 그냥 듣기에는 ‘아내가 아름답지 않는데 아름다운 여자로 그릴 수 없다.’ 이렇게 해석되는데요?

채하: 그런 뜻은 아니다. 단지 회화에서 색채가 형태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지적탐험을 조금 깊게 하면 주체, 이성, 진리라는 범주에서 움직이는 근대적 사유방식을 부정했다고 볼 수 있지. 그는 이성보다 감정이 중요했고 색채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는 최초의 화가가 되고 싶었다.

선아: 그런데 제원 샘! 니체와 마티스가 어떤 관련이 있어요? 저도 니체가 무척 궁금했어요. 니체에 대해 아는 것은 고작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자주 외치던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carpe diem)’라는 말이 그가 한 말이고 영화에서는 전통과 규율에 도전하는 청소년들의 자유정신을 상징하는 말로 쓰였다는 정도에요. 키팅 선생은 영화에서 이 말을 통해 미래(대학입시, 좋은 직장)라는 미명하에 현재의 삶(학창시절)의 낭만과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하는 학생들에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이 무엇보다도 확실하며 중요한 순간임을 일깨워주거든요.

채하: 프리드리히 니체는 현대사상을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꼭 탐구해야 할 인물이다. 철학, 문학, 역사, 영화, 미술로부터 정치, 사회에 이르기까지 그의 입김이 머무르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이지.

선아: 이번 기회에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요. 샘도 그 동안 여러 번 니체에 대해 말했잖아요. 특히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들이 벌이는 파국의 잔치를 니체를 통해서 비판하곤 했잖아요.

채하: ‘철학을 하려거든 망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시작을 해볼까?

선아: 망치는 세차게 두드리는 공구잖아요. 어떤 대상을 부수거나 못을 박거나 그런 경우에 사용하잖아요. 건물을 부수는 것도 아닌데 철학공부에 왜 망치가 필요한 것이죠?

채하: 니체를 이해하려면 지금까지 확실한 진리라고 여겼던 도덕이나 가치가 가짜이지 않을까 의심해봐야 한다. 그 점에서 니체는 기존의 구조를 깡그리 부수는 망치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지.

선아: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겠어요. 마티스 생각이 납니다. 마티스가 회화에 대한 통념을 철저하게 부수었듯이 니체도 그랬다는 것이에요?

채하: 맞다. 니체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긴 도덕이나 가치를 비판적으로 사고한다. 도덕에 대해 성찰하려면 인간을 속박하는 것이든, 자유롭게 하는 것이든, 진리를 추구하든지간에 도덕적 가치들이 만들어지고 발전해 온 조건과 환경 및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먼저 분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선아: 특이하군요. 데카르트도 확실한 진리를 찾기 위해서 모든 걸 의심한다고 했지만 확실성을 추구하는 이유를 의심하지 않았고 칸트도 이성 그 자체에 대해 비판의 칼을 들이대었지만 이성을 당연하게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을 뿐이었어요.

채하: 그 점에서 니체의 작업은 그 이전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개념이나 가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즉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탐구대상으로 가치를 삼고 연구했는데 ‘계보학’이라고 불렀지. 다시 말하면 이제껏 철학 및 사상사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개념과 가치를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망치로 부숴갔던 것이지. 현대적 개념으로 보면 이러한 학문경향을 ‘비판적 사고’라고 할 수 있지.

선아: 마티스적이군요. 마티스가 회화에서 데생이 색채보다 우선적이어야 하는가? 라고 질문했고 채색의 주관성을 미적 창조라고 하듯이 니체도 그랬군요.

채하: 특히 도덕적 선과 악에 대한 그의 비판이 신랄하거든. 강자와 약자의 선악개념이 다르다고 보았지 강자(고귀한 자, 지배계급)는 비천하고 저급한 자를 비교해서 약자를 차별하고 지배하기 위해 자신들이 갖는 특징을 ‘좋음’이나 ‘선함’이라고 불렀다. 가령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를 하는 것은 진짜 선일까? 니체에 의하면 보편적인 선이라고 할 수 없고 가진 자들만이 할 수 있는 선이지. 즉 가난한 자들이 할 수 없는 그들만의 행동을 긍정하기 위해 기부를 선한 것이라고 불렀다는 것이지.

선아: 그러면 약자들에게 선은 무엇인가요?

채하: 약자들에게 선은 강자와 다르다. 그들에게 선의 기원은 강자에 대한 원한(怨恨)이다. 강자에 게 실제로 대적할 용기는 없으면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과 무력감으로 부터 선이 정해진다. 따라서 강자의 특징을 부정하고 정 반대편에 있는 것이 선이 된다. 쉽게 말하면 강자는 긍정적으로 도덕을 만들지만 약자는 강한 자에 반발하여 부정적으로 자신의 도덕을 만들지.

선아: 씁쓸하지만 약자에게 ‘선한 사람이란 강자와 다르게 억압하지 않는 자, 누구에게도 상처 입히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 자, 상대를 용서하고 복수는 오직 신에게 맡기는 자, 악을 피하고 인생에 욕심 부리지 않는 자, 인내심 강하고 겸손하며 공정한 자’ 이런 사람들이겠군요. 그런데 이런 것들이 지금껏 우리가 도덕적 선이라고 여기고 믿었던 것들 아니에요?

채하: 맞다. 니체는 그것을 ‘선악의 계보’, ‘도덕의 계보’라고 불렀다. 결국 우리가 선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약자가 강자에 대응하지 못하고 원한을 품고 무력감에 빠져서 스스로의 처신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것들이다. 슬프게도 약자의 자기위안이 선이 된 것이지.

선아: 기존의 도덕철학적 진리를 망치로 부숴버리는 해체, 그 이상이군요. 도덕적 선이 약자의 자기 위안에 불과하기에 기존의 도덕적 가치를 정당하다고 여기고 확립되었던 모든 사상들은 잘못되었다고 본 것이군요.

채하: 이러한 경향은 진리에 대해서도 드러난다. ‘진리의 계보학’이라고 불리는데 니체 이전의 모든 철학이 보편적 진리가 무엇인지, 어떻게 보편적 진리를 알 수 있는지에 대해 고심했다면 니체는 진리는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생겨났다고 봤다. 즉 진리는 그의 생존에 기여하는 것들이다.

선아: 그러면 보편적인 진리는 없잖아요. 각자가 처한 조건이나 상황이 다르기에 보편성을 찾을 수 없잖아요.

채하: 그래서 니체는 ‘보편적이거나 절대적인 진리는 없고 오직 진리를 향한 의지’만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진리 의지’는 오직 자신이 가진 지식만이 진리이며 그 밖의 다른 지식은 거짓이라고 생각하도록 유혹한다는 점이지. 나아가 그가 진리라고 여겼던 지식을 지키지 않으면 이 땅에서 진리가 사라진다고 생각하게 하지. 정말 위험하고 독단적인 유혹이다. 주목할 점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현실의 권력자가 이런 진리의지에 충만하면 독선적이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독재자가 된다.

선아: 치열한 이념갈등이나 계속되는 타자와의 불화도 이런 까닭이었군요. “각자가 생각하는 진리만큼이나 타자의 진리(그에게는 거짓)도 삶의 중요한 조건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평화는 없다고 봐야겠군요.” 니체와 관련해 진리의지를 이야기하다 보면 반드시 거론되는 ‘권력의지’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에 대해 설명해주시겠어요? 권력의지는 정치적 권력을 잡으려는 의지를 말하는 것인가요?

채하: 권력의지는 그 차원을 넘어서서 ‘생명체가 어떤 것이든지 생존하거나 더 나은 상태로 가려고 하는 의지’란다. 가령 정치적 권력을 잡으려는 것도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라면 권력의지이다. 연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는 것도 권력의지이다. 한마디로 권력의지는 무의식적으로 모든 것을 움직이고 활동하게 해주는 동력이다. 권력의지에는 ‘긍정적인 권력의지와 부정적 권력의지’가 있다. 긍정적 권력의지는 그의 힘을 증가시키는 권력의지이고 부정적 권력의지는 그의 힘을 감소시키는 권력의지이다. 가령 긍정적 권력의지는 어떤 일을 신나게 하도록 하는 의지이며 무력하게 하는 의지는 부정적 권력이지이다. 고귀한 자는 긍정적 권력의지를 갖는 존재이고 비천한 자는 부정적 권력의지를 갖는 자이다.

선아: 결국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지 않으면 노예군요. 미래에 더 많은 부나 지위를 얻기 위해서 지금의 고통을 참아야 하며 노력하라는 말은 거짓이거나 환상으로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말이군요.

채하: 진짜 좋은 삶은 오직 현재 그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 몰두하는 삶이지. 그래서 가장 멋진 인간은 과거의 영광과 상처를 잊고 타인의 평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지금 즐겁고 기쁘게 사는 사람이다. 니체는 그런 자를 현재를 긍정하면서 현재라는 순간을 영원처럼 여기고 사는 사람으로‘초인(넘어서는 자)’이라고 불렀다.

선아: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경우에는 설사 고통조차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 위한 전 단계이니까요.
채하: 니체를 볼 때마다 우리의 삶에서 누가 진짜로 거인(巨人)이며 멋진 인생을 사는가에 대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마티스가 그의 그림을 대중들이 이해해달라고 그리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내 인생은 나의 것’라는 것과 각자의 삶에서 고유한 무늬를 그리는 것이 행복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선아: Jea won teacher, You only live once! Seize the day. Carpe diem! I will do it too forever.


많이 본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