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이리역 폭발사고 40주년
내일 이리역 폭발사고 40주년
  • 새전북신문
  • 승인 2017.11.0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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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전쟁이 났다”고 했다. 적의 공습이 시작됐다고 믿은 것이다. 1977년 11월11일 한국과 이란의 월드컵 예선전이 치러지던 날이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빚어진 참사였다. 반경 1㎞에서만 집이 무너지고, 부서진 집이 7,000여채를 넘었다. 500m 떨어진 주택가 지붕위에 철로 레일과 기차 바퀴가 역가락처럼 휘어져 떨어졌다. 단군이래 최대의 폭발사고로 일컬어지는 이리역 폭발참사가 11일로 40주년을 맞는다.
지금은 이름도 익산역으로 바뀌어 기억하는 이들도 드물지만 40년 전 어이없는 참사로 59명이 숨지고, 1,402명이 부상을 입었다. 채의 집이 무너지고, 집을 잃은 이재민이 명에 달했다.
사고는 어이없는 인재였다. 인천에서 130여 톤의 화약을 싣고 여수로 가던 화차호송원이 촛불을 켜고 술을 마시다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가 나자 정부는 ‘새이리 건설’을 내세우며 역사를 새로 짓고, 주요 도로를 확장했다. 피해액의 두 배를 넘는 130억원이 투자됐다. 그러나 피해복구로 시민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직도 당시의 참사악몽에 시달리는 유가족과 부상시민이 많다. 익산시와 코레일, 유족회 등은 해마다 희생자 위령제와 기념식을 가진다.
올해도 위령제등 추모 행사를 한다. 하지만 참사를 기념하고 교훈을 삼을 기념관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당시의 피해를 기록한 백서조차 없다.
당시 익산시가 백서를 냈지만 박정희대통령의 시혜와 전북도나 익산시의 노력이 빛났다는 게 전부다. 기념공간을 만들고 피해시민의 생생한 기록을 지금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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