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주정도 교양이다-적게 마시면 약주요, 많이 마시면 망주다
술주정도 교양이다-적게 마시면 약주요, 많이 마시면 망주다
  • 송영애(전주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17.11.30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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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음식을 맛보다] ■밀정-술

술로써 술(術)을 펼치다
< 밀정>(The Age of Shadows, 2016). 밀정(密偵). 남몰래 사정을 살피거나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일명, 첩자다.
시대는 일제강점기다. 일본 경찰은 독립운동 세력의 내부에 끊임없이 밀정을 심어둔다.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도 만주에서 결성된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에 파견된 밀정이다. 이정출은 의열단인 김우진(공유)에 이끌려 중국 상해까지 쫓아간다. 우연히 의열단장 정채산(이병헌)까지 만나게 된다.
“반갑소, 의열단장 정채산이요. 꼭 한번 만나보고 싶어서 내가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영광입니다. 그러나 저를 어찌 믿고….”
“만리타향에서 동포들끼리 밥 한 끼 먹는 일입니다. 술이 없어서 쓰나, 손님을 초대해놓고선….”
장정 둘이서 큰 술통을 들고 들어온다. 정채산은 얼마 안 된다고 엄살을 피운다. 술잔에 쪼르륵 술 따르는 소리와 후루룩 마시는 소리만 계속 이어진다. 밀정 이정출은 마음이 바뀐다. 이후 이들은 한솥밥이 아닌, 한 술통을 마신 동지가 된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치밀하게 밀정 뒤에 항상 그들을 살피는 또 다른 밀정을 보낸다. 영화 보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경성으로 되돌아오는 기차의 식당 칸에서 만난 의열단과 일본 경찰은 하나인데, 같은 일본 경찰인 밀정과 밀정의 대립이 더 스릴 있다.

중국 술의 아버지, 의적(儀狄) 음식
우리의 식생활은 음(飮)과 식(食)의 구조로 되어있다. 먹을거리와 마실거리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이다. 마실거리는 알코올이 함유된 것과 함유되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모두 음료다. 오늘날 음료 중에서 차, 콜라, 커피, 술이 가장 일반적이다.
고대 중국의 음료로는 미음(漿), 술(酒), 차(茶)가 있으며, 이보다 더 일반적인 것은 당연히 물이다. 물은 자연 그대로의 것이고, 차는 물에 찻잎을 우려낸다. “술은 처음 열었을 때가 맛있고, 차는 우려낼수록 맛있다.”고 하였다.
이 중에서도 술은 우연히 발견하였지만, 기술을 더해 발명하기도 했다. 아직도 술의 기원에 대한 논쟁은 끝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국 술은 의적(儀狄)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적은 생몰 연대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의 고서에 자주 나오기 때문이다. 참고문헌과 이론적 배경을 중시하는 우리의 학문에서는 문헌이 있으면 정답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진한시대 공문서 자료의 묶음 책으로 볼 수 있는 『세본(世本)』에 의하면 “의적이 처음으로 밑술인 주료(酒醪)를 만들어 오미(五味:본래의 맛)를 변하게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전국책(戰國策)』에도 “의적이 술을 만들어, 우왕에게 바치니, 달콤하게 여겼다.”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아직도 최초로 술을 빚었다고 공인되어 온 의적이 다만 더 좋은 술을 빚었을 뿐이지 세상에서 가장 먼저 술을 빚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강하다.
우왕의 시기를 술이 최초로 양조 되었다고 보는 보수적인 관점은 술의 발명 연대를 수천 년 아래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인류 발전에 기여한 중국 역사의 자존심인 중국의 5대 발명품이 있다. 종이, 나침반, 화약, 인쇄술 그리고 누룩이다. 누룩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술이다.
『상서(尚书)』에서는 상나라 왕 무정(武丁)이 “단술을 만들려면 오직 국벽이로다.”라고 말했는데, 국벽(麴蘗)은 천연 누룩으로 자연 상태에서 곰팡이가 생긴 곡물 알갱이다.
술 한 말에 시 백 편(一斗詩百篇)이라는 이백(李白)의 시 ‘장진주(將進酒)’에는 “예로부터 성현들은 다 사라지고 없고, 오직 술 마시던 사람들 이름만 남았네. 주인장, 어찌 돈이 모자란다고 하는가, 곧바로 술을 사 와서 함께 마시세.”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국인에게 술은 음료 이상이다. 그들이 늘 이야기 하듯 “술이 없으면 연회가 안 되고, 손님을 대접할 수 없다.” 또한, 이름도 남길 수 없는 듯하다.

어명을 받들라
상나라의 마지막 군주는 주왕이다. 성품은 포악하고,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이름이 나 있다. 주왕의 ‘주지육림(酒池肉林)’이 말해준다. 술을 담아 연못을 만들고, 수천 마리의 동물을 잡아 고기를 걸어 두어 숲을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한나라의 공자(公子) 한비자는 주왕이 사치가 심해서 고기를 잡으면 너무 많아서 그릇에도 다 담지 못하고 땅 위에 내버려 두어 육포(肉圃), 즉 ‘고기 밭’을 만들었다고 했다.
술 연못에는 배를 띄워 마신 자가 300여 명이 넘었다고 한다. 300여 명이 동시에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주지가 얼마나 넓어야 하고, 술 또한 얼마나 많아야 하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주왕은 점점 술을 좋아하고 음탕함을 즐기며 여색에 빠지는데, 주지에는 남녀가 알몸으로 그 속에 들어가 놀며 술로 긴 밤을 보내기까지 한다.
결국, 주왕은 알코올 중독에 걸린다. 그러나 지금에는 알코올 중독보다는 납 중독으로 보고 있다.
상나라 때 청동으로 만든 주기(酒器)는 구리, 주석, 납의 합금이다. 초기에는 구리의 비율이 95%로 높았다. 중기로 갈수록 구리의 비율은 줄고 납과 주석의 비율이 높아진다. 납의 비율이 24%까지 올라가며, 말기에는 납이 주석을 대신하기도 한다.
주왕은 헛소리하며, 잠은 안 자고, 안절부절못하며, 소리를 지른다. 모두 납중독의 증상이다. 주왕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심장에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있다고 하며 가슴을 가르고 심장을 도려내 그 여부를 확인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상나라 주왕만이 주지를 만든 것은 아니다. 하나라 걸왕도 주왕보다 먼저 육산(肉山)과 포림(脯林)을 만들고 우음(牛飮)하였다. 우음은 절제하지 않고 양이 찰 때까지 마시기를 멈출 줄 모른다는 의미다. 심지어 술을 마시도록 권하는 별도의 관직을 두어 그가 사람들의 머리를 당겨서 주지까지 끌고 가서 술을 마시게 했다. 이로 인해 술에 취해서 주지에 빠져 죽는 이도 자주 있었다고 한다. 두 왕의 공통점은 당대의 나라 전체를 망국의 길로 빠뜨렸다는 점이다.
언제부터 주지를 만들어 술을 마셨는지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으나,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듯, 우물에 술을 붓거나 큰 못에 술을 채운 것으로 본다. 분명한 것은 ‘주지’야말로 절제할 필요가 없는 제왕의 특권이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자 공자는 엄격한 식생활 규칙을 만들어 『논어』에 실었다. 일명 식교(食敎)다. 술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술이 아무리 많더라도 지나치게 마셔서 취하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생각을 지닌 우리나라 왕도 있었다.
조선 시대 27명의 왕 중에서 재위 기간이 무려 53년으로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영조다. 영조는 금주령을 강력하게 내린 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조도 집권 초기인 즉위 3년이 되던 1729년에는 술을 금단하는 것 때문에 백성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는 신하들의 말에 다음과 같이 명한다.
“주금(酒禁)을 없애고, 술주정하는 것만 금하도록 하라.”
송년회가 많아지는 12월에 우리가 모두 깊이 새겨 들여야 할 어명이다. 나아가 시인 조지훈은 술주정도 교양이라 했다.
송영애(전주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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